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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고 조비오 신부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회고록에 전두환 인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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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자 민정기씨 법정 증언
한국일보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두환(90)씨에 대한 항소심 4번째 재판이 열린 3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법원 입구 앞에서 조영대 신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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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4차 공판 시작을 기다리던 방청객들의 표정에선 긴장감이 묻어났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민정기(79)씨가 이날 '전두환 회고록' 대필자로서, '피고인 전두환' 측 증인으로 출석해 피고인의 책임을 희석시킬 증언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터였다.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한 대목을 두고 민씨가 "내가 임의대로 쓴 것"이라고 총대를 멜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민씨는 공판에서 "피고인 전두환의 인식과 관련 없는 내용이 회고록에 담길 수 없다"며 사실상 전 전 대통령이 쓴 것임을 강조했다. '피고인 전두환'의 사자명예훼손 고의성이 없음을 입증하려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의 재판 전략이 다소 어그러지는 듯했다.

이날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재근)심리로 열린 공판은 증인으로 채택된 민씨에 대한 정 변호사 신문으로 시작됐다. 역시나 정 변호사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점을 민씨로부터 확인받으려고 애썼다. 민씨도 "전 전 대통령의 구술 녹취록을 근거로 회고록을 썼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것도 각종 수사·재판기록 등을 인용해 썼다"고 했다. 정 변호사의 기대에 호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민씨는 회고록에서 조 신부를 비판하면서 쓴 '과한 표현(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이 고의가 아님을 입증하려던 정 변호사 계획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민씨는 정 변호사가 "조 신부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한 것인데, 이게 너무 지나쳐 유족들에게 상처를 준 점 송구스럽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걸 보다 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것을)안 믿을 것"이라며 "조 신부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해서 받은 명예훼손과 상처보다 양민을 학살한 군인이라는 게 더 치명적 명예훼손"이라고 발끈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온 듯 정 변호사의 얼굴은 잠시 굳어지기도 했다.

이어 검사 측 반대 신문이 시작되자 민씨의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 검사가 "무슨 근거로 조 신부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몰아붙이자 민씨는 왈칵했다. 민씨는 "5·18 당시 헬기조종사 등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데 목격자들 진술은 '봤다' '드르륵 소리를 들었다'였다. 객관적으로 어느쪽 말을 신뢰하겠냐"고도 했다. 검사는 "그건 증인 생각이 아니냐"고 말을 자르자, 민씨는 "내 생각이고 판단이다. 전 전 대통령도 그렇고"라고 말했다.

검사는 시종일관 공격적이었다. 검사는 "증인이 회고록을 쓰면서 5·18 헬기 사격을 주장한 조 신부가 헬기조종사들로부터 명예훼손을 고소당했다가 무혐의 결정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적 있느냐", "5·18 당시 군 기록 등을 확인했냐"고 혼내듯 따졌다. 민씨가 피고인에 유리하게 '선택적 증언'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민씨는 "법을 모르니까 검토한 적 없다", "기억 안 난다"며 답변을 피했다.

재판장도 보충질문으로 가세했다. 김 부장판사는 "회고록에서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쓴 부분은 증인이 작성한 게 아니고 피고인의 말을 옮긴 것이냐"고 물었다. 민씨는 이에 "피고인이 거짓말쟁이라는 다섯 글자를 사용한 기억은 없지만 성직자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며 헬기 사격을 주장하느냐, 그 이유가 뭐냐는 말은 했다"며 "그런 취지는 맞는데 100% 워딩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씨는 앞서 "피고인이 (회고록을 집필하는 나에게)'내 머리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했다"고도 했다.

조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피고인 전두환 측이 일반인에게도 함부로 안 쓰는 '파렴치'란 단어를 쓰고, 근거도 없는 자료를 들이대며 자기들 판단에 따라 성직자를 모독한 것은 성직자들에게 엄청난 명예훼손이고 치명적인 것"이라며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보다 파렴치라는 단어를 쓴 게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다음 공판은 9월 2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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