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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애국가 부르면 전체주의? …국가(國歌), 그 끊이지 않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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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전 감사원장 '애국가 완창' 전통 두고 논란 불거져

"나라 사랑하는 마음 당연" vs "지나친 애국심" 갑론을박

선진국서도 국가 논란 끊이지 않아

美 국가 의례 중 무릎 꿇은 운동선수 향해 비난 쏟아지기도

전문가 "세대에 따라 국가 받아들이는 자세 다를 수 있어"

"개인 자유 최대한 존중하는 배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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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5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故(고) 한주호 준위 동상 인근에서 해군 모자를 선물 받은 후 거수경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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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최근 대권 도전을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가족 모임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한다"고 밝히면서 '전체주의' 논란이 불거졌다. 최 전 원장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참여라며 선을 그은 뒤 "전체주의가 아니다"라며 해명했지만, 지나친 국수주의 강요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민족을 단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가(國歌·national anthem)'는 사실 먼 과거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한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라는 옹호가 있는 반면, 국가에 대한 강압적인 충성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국가를 도입한 미국·유럽 선진국에서도 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애국가 4절 완창' 두고 전체주의 논란

이른바 '애국가 완창 논란'은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최근 최 전 원장 측은 명절 가족모임 사진을 공개했는데, 며느리부터 어린 손녀까지 가족 구성원이 전부 모여 국민의례에 참여하고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는 게 '집안 전통'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지나친 전체주의 강요 아니냐'라는 비판이 불거지자, 최 전 원장은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전체주의와 다른 말'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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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 원장이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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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최 전 원장은 "아버님(고 최영섭 전 해군대령)께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끝까지 다 부르자고 하셔서 (가족 전통을) 시작하게 됐다"라며 "저희 집안 며느리들은 기꺼이 참석하고, 같은 마음으로 애국가를 열창했다"라고 강조했다.

일가 며느리들 또한 반박에 나섰다. 이들은 최 전 원장 선거캠프를 통해 발표한 가족 성명에서 "어떤 분들은 '전체주의', '파시스트' 표현까지 쓰고 조롱한다"며 "애국가 제창이 왜 비난받아야 하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가족 강제가 아니냐고 비판하지만 아니다"라며 "저희는 나라가 잘 된다면 천 번, 만 번이라도 애국가를 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전 원장 측의 해명에도 일각에서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당 대권주자인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애국가 4절 완창은) 좋게 해석이 안 된다. 국가주의 냄새가 난다"라고 꼬집었다.

獨, 美 등 선진국서도 '국가'는 민감한 주제

한 나라의 대표적 상징인 국가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비단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국가를 도입한 서구 선진국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를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일례로 나치 독일이라는 전체주의의 역사를 간직한 독일은 자국 국가인 '독일의 노래'에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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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 하원 내부 모습 / 사진=연합뉴스


독일의 노래는 19세기 독일 시인 호프만이 만든 노래로, 당시 유럽에서 들불처럼 끓어오르던 민족주의를 고취시킬 목적으로 제작됐다. 나치 독일 집권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 모든 것 위에 있는 독일'이라는 제목으로 개사되기도 했다.

이 노래의 1·2절은 독일의 영토 팽창을 부추기고 독일인의 성실함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았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독일", "방어와 공격을 할 때 형제처럼 함께 서있네" 등 가사들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팽창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1990년대 서독과 동독이 통일한 이후부터는 화합과 평화를 강조한 내용을 쓴 3절만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 국가를 중요한 상징으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국가 때문에 나라 전체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2016년, 미국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 출신인 콜린 캐퍼닉은 경기에 앞서 미국 국가 '성조기'가 울려퍼질 때 손을 가슴에 얹는 대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이 잇따라 사망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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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0월 콜린 캐퍼닉(가운데)과 동료들이 소수 인종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처사에 항의하며 국가 연주 때 일어서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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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한 연설에서 "NFL 구단주가 국기와 국가에 존경을 표하지 않는 선수에게 '지금 당장 저런 XXX를 경기장에서 쫓아내라'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나"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쪽 무릎 꿇기' 포즈는 이후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인권운동가들에 의해 꾸준히 재현되고 있다.

"칭찬 받아야 마땅" vs "숨 막힐 듯" 시민들 갑론을박

국내에서도 애국가 완창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젊은이들이 본 받아야 할 일이라며 옹호가 나오는가 하면 '숨막힐 것 같다'는 거부감 섞인 반응도 나왔다.

50대 주부 A 씨는 "요즘처럼 애국가 1절도 제대로 못 외우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저런 정치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라며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자기 나라를 소중히 아껴야 하지 않나. 욕할 게 아니라 칭찬해야 할 일이다"라고 옹호했다.

반면 거부감을 느낀다는 반응도 나왔다. 20대 직장인 A 씨는 "애국가를 부르건 말건 개인 자유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저런 집안에서 살면 개인적으로 숨 막힐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B(33) 씨는 "1~2절 정도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4절 완창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애국심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과도한 애국심이나 '국뽕'으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시대에 따라 국가를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자세가 변화해 왔으며, 이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국내에서도 과거에는 영화관 상영 전 애국가를 의무적으로 트는 등, 국가를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누군가는 애국가를 소중히 여기고 부르고 싶어해도, 구성원 중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세대에 따라 국가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크게 다를 수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어떤 자세가 더 낫다 할 것 없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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