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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월클 리더십!...김연경, 주심 성향 따라 밀당하는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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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터키와 8강전 끝난 뒤 텅 빈 경기장 남아
레드카드 꺼낸 알루시 심판에 먼저 다가가 인사
두 사람 웃으며 이야기 주고 받고 악수해
누리꾼들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 덕목 갖춰"
한국일보

김연경이 4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에서 터키에 승리한 뒤 자신에게 레드카드를 줬던 하미드 알루시 심판에게 다가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SBS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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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경기장.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인 한국과 터키의 경기가 끝난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몇몇 경기장 관리 스태프와 자원봉사자, 심판진이 남아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국의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이 홀로 경기장에 남아 있었다. 후배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빠져나갈 때까지 어쩐 일인지 경기장을 지켰다. 김연경의 발길은 심판진이 모여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날 한국과 터키 경기의 주심인 하미드 알루시 심판이 서 있었다. 김연경은 그에게 다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9년 만에 한국 여자 배구를 올림픽 4강에 올린 주역 김연경이 남다른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려 신경전을 벌였던 심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풀어주는 '월클(월드클래스)' 매너를 보여줘서다. 한국팀 주장으로서 끝까지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줘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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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하미드 알루시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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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이날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며 각을 세웠다. 알루시 주심은 승부처였던 3세트, 한국이 24-23으로 앞서가는 상황에서 양효진(32·현대건설)에게 '포히트(한쪽 진영에서 공을 네 번 터치하는 것)' 범실을 선언했다. 그러자 김연경은 네트를 흔들며 항의했고, 알루시 주심은 옐로카드를 꺼냈다.

김연경은 옐로카드도 개의치 않아 보였다. 4세트 초반 터키의 '더블 콘택트(한 선수가 연속해서 2회 이상 공을 터치하는 것)'를 주장하며 심판과 맞섰다. 알루시 주심은 강하게 항의하는 김연경에게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레드카드를 받을 경우 상대팀에 1점을 내주고 서브권도 넘어간다.

김연경은 그동안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을 만큼 격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작정한 듯 주심에게 강한 어필을 해보였다.

경기를 승리로 이끈 김연경은 이에 대한 내막을 털어놓았다. 그는 "1세트 때부터 심판 판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서 "항의하면 그 뒤에 보상 판정을 하더라. 항의가 통하는 심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력한 항의가 결국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레드카드 꺼낸 주심 찾아가 웃으며 어깨 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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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하미드 알루시 주심이 판정에 항의하는 김연경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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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판의 레드카드는 아팠나 보다. 김연경은 "레드카드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좋게 마무리됐다"고 웃어 보였다.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심판의 불리한 판정에 한국팀 주장으로서 김연경의 항의는 정당한 것이었다. 만약 그 판정으로 인해 승패가 갈리는 상황이라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가뜩이나 상대하는 팀마다 전력이 월등하다 보니 김연경은 주장이자 대표팀 맏언니로서 특유의 카리스마로 팀을 지탱하고 있었다. 매 경기 때마다 "해보자" "괜찮아" 등 후배들을 격려하며 정신력을 무장해 버티는 중이다. 그런데 심판 판정 하나로 팀 사기가 떨어지면 그대로 무너질 수 있었다.

김연경은 마지막 5세트에서 3점이나 뒤지면서도 후배들의 사기를 복돋았다. 그는 연이은 실점에 "차분하게, 괜찮아, 딱 하나, 오케이, 하나"라고 분위기를 풀어주는가 하면, 상대의 서브가 넘어올 때는 "긴장하지 마!"라며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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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4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에서 터키에 승리한 뒤 자신에게 레드카드를 줬던 하미드 알루시 주심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있다. SBS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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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연경의 리더십은 경기 때에만 발휘되는 게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알루시 심판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경기 때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때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알루시 심판의 기분을 풀어줬다.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심판과 직접 대화해 풀어냈던 것이다. 이는 앞으로 남은 경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같은 심판진을 또 만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김연경의 탁월한 리더십은 SBS의 '직캠(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공개됐다. SBS는 이번 올림픽에서 경기 중인 우리 선수들을 직접 촬영해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vmg)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이날도 김연경을 직캠한 것을 경기 종료 후 vmg에 공개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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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4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에서 터키에 승리한 뒤 자신에게 레드카드를 줬던 하미드 알루시 주심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SBS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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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5일 오후 4시 현재 9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찍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김연경의 리더십에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이들은 "리더십에 인성까지 완벽하다(갈**)", "김연경은 지금 이 사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리더의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다(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심판 챙겨주고 대화로 풀어주고, 진짜 어마무시하다(사*****)", "리더십, 실력, 인품까지 우리나라 배구에 김연경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유**)", "심판에게 악수를 먼저 청하는 갓연경, 도대체 그릇이 얼마나 넓은 건가(메******)", "레드카드 준 심판 찾아가서 대화 나누고 악수하고 대단하다. 스포츠 정신 등 인간으로서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겨*)" 등의 글을 올렸다.

김연경, 오심 주심에 항의하다 코믹 표정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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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케냐의 2차전 경기에서 심판을 맡은 일본의 스미에 묘이 주심. 방송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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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강한 항의 전략은 앞서 케냐와 A조 조별리그 2차전 경기 영향일 수도 있다. 지난달 27일 케냐와의 경기는 일본인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이 논란이 됐다.

일본의 스미에 묘이 주심은 비디오 판독으로 확인된 내용도 무시해 한국팀을 당황스럽게 했다.

스미에 주심은 2세트에서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의 푸시 공격 성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케냐에 1점을 줬다. 한국 선수들이 깜짝 놀라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그 결과 박정아의 공격은 아무런 문제없이 깔끔하게 성공했다. 그러나 스미에 주심은 원심을 번복하지 않고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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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맨 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조별리그 한국-케냐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을 한 스미에 묘이 주심에게 항의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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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같은 상황은 3세트에서도 이어졌다. 한국이 15-12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케냐 선수의 공이 네트를 넘기지 못하고 라인 밖으로 넘어갔다. 당연히 한국의 득점이었다. 그러나 스미에 주심의 판단은 달랐다. 네트 앞에 있던 김연경의 손을 맞고 터치아웃됐다는 것. 케냐에 또 점수를 줬다.

그러자 김연경이 스미에 주심에게 다가가 항의했다. 자신의 손에 맞지 않았고, 한국의 득점이라고 어필했다. 이번에도 통하지 않자 라바리니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스미에 주심은 이번에도 인정하지 않았다. 판독 결과 김연경의 손에는 닿지도 않았는데 고집을 부리며 원심을 유지했다. 한국 선수들이 강하게 어필하면 "노노노(NO NO NO)"라고 말하며, 검지손가락을 들고 좌우로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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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박정아, 오지영 등이 지난달 27일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조별리그 한국-케냐 경기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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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심판의 오심에 하마터면 3세트를 내줄 뻔했다. 케냐에 21-22로 역전까지 당한 것. 오심 때문에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한국은 듀스까지 끌고가 결국 오심을 할 수 없는 완벽한 공격을 성공시켜 26-24로, 세트 스코어 3-0 승리를 거뒀다.

김연경은 스미에 주심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에도 번복되지 않자 스스로 이마를 치며 웃어 보였다. 다른 선수들도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을 웃어 넘겼다. 눈을 가리고 보려고 하지 않으니 강한 어필보다 웃어 넘기며 정신력을 가다듬은 셈이다.

김연경은 일본 주심을 거치면서 이번 올림픽에서는 심판과도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심판의 성향을 빨리 찾아내 적절하게 항의하는 전략을 세웠을 것이라는 해석들이 나왔다. 남은 두 경기서도 심판에 대한 전략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 대표팀은 6일 오후 9시 브라질과 4강전에서 만난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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