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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목표 과도" "국가간 협력 절실"···산업계가 본 탄소중립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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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최석환 기자, 최민경 기자, 오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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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초안을 공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경제계가 우려를 쏟아냈다.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 업계도 스스로 노력 중이지만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현재의 시장이나 기술개발 수준을 감안할 때 달성하기 매우 어렵단 지적이다. 보다 현실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제언들이 잇따랐고, 향후 2개월 간 정부가 업계와 얼마나 활발히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느냐에 따라 정책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판재류 만들지 말란 이야기? 당혹스런 철강업계

5일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면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50년까지 2540만톤으로 줄이는 1안 △1870만톤으로 줄이는 2안 △제로로 줄이는 3안이다. 우리나라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이 7억2760만톤, 순배출량은 6억8630만톤이었다. 순배출량 기준 최소 97% 줄인다는 계획이다. 세 가지 안 중 반드시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정부 계획을 큰 틀을 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2018년 산업 분야에서만 2억6050만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기에 정부가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려면 산업 분야 협력이 절실하다. 그 중에서도 다탄소 배출 업종으로 꼽히는 철강, 정유 및 석유화학 업종의 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꼽힌다.

업계는 큰 틀에서 취지와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정부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우려했다. 당장 1억120만톤에서 460만톤으로 95% 감축안을 제시받은 철강업계는 난감한 표정이다. 정부가 감축 방안으로 고로를 모두 전기로로 전환하는 방안,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100% 도입해 유연탄 대신 수소를 쓰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업계 실정을 감안한 방법인지에 의구심이 제기됐다.

우선 전기로는 고로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약 4분의 1수준으로 친환경적인 방식인 것은 맞지만 공정에서 철스크랩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순물이 함유될 가능성이 높다. 생산품목도 다르다. 고로는 철광석을 원료로 후판, 열연, 냉연 등 판재류를 만든다. 조선 후판, 자동차 강판 등에 쓰이는 고급강재다. 전기로는 스크랩을 원료로 봉형강류나 철근 등을 만든다. 이 때문에 고로 중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전기로로 전환시 현재 생산하는 판재류 대부분을 생산할 수 없다.

공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제로'인 것으로 알려진 수소환원제출 기술은 이제 막 기술 개발을 시작한 단계여서 상용화 시점을 언급하기 이르다.

정유·석유화학 업계 역시 비슷한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정부는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E-Fuel(내연기관 대체연료) 등 방법론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제시했지만 상당수 기술이 아직 기술 검토 초기 단계란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안이 보다 업계에 유리한 시나리오로 보여지나 이마저도 2018년 기준 약 97% 이상 감축해야 하는 것으로 도전적인 목표"라며 "정부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많은 가정들을 전제로 수립된 것이기에 추후 기술 발전 속도나 추이에 따라 실제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와 실제 운영 사이에 격차가 발생할 때 정부 대안이 있는지 의문이고 자칫 국가 경쟁력 급속한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탄소중립' 자체만 볼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발전해 나가야 하는 기업의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국내 최대 화학사인 LG화학은 2050년 탄소 배출량을 2019년과 같은 수준인 1000만톤으로 억제한다고 밝혔었다. 감축 노력 없이 예상되는 탄소배출량은 2050년 4000만톤인데 여기서 3000만톤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기업이란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획기적인 감축량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가 정유·화학업계에 제시한 탄소 배출 제한 목표치가 1690만톤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 절반 이상을 LG화학 한 곳이 차지하는 셈이 된다.


정책·세제·인센티브·인프라…정부, 획기적 지원책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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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실질 의견들을 내놨다.

우선 이미 자체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하고 전략을 이행중인 기업들에 대해 획기적 정책 및 세제 지원이 담보돼야 하며 인프라 구축도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E-Fuel의 경우 국내 기존 정유사들이 사업 전환을 검토할 수 있는 안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부의 현 녹색분류체계에서는 녹색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술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수소 산업으로 가려면 관련 법 제정을 통해 수소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공공부문 수요 창출과 함께 민간부문에서도 수소 사용 촉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밖에 현재 생산 전력에서 10% 미만인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각 기업 공장들에서 늘리려면 전력 인프라, 기존 에너지원 대비 낮은 효율문제 등도 국가 차원에서 해결돼야 하는 문제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중요한 또 한 축은 수송 분야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친환경차 전환 가속화를 위한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R&D(연구개발) 및 보조금 개선 등을 통한 차량가격 인하 △금융·보증프로그램 신설, 투자 인센티브 및 노사관계 개선 등을 통한 생산비용 저감 △환경 규제비용 과부담 완화 △친환경차 운행 혜택 확대 △충전인프라 확충 등 다양한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특히 Δ친환경차 전환 투자유인을 위한 제도개선 Δ하이브리드 개소세·취득세 일몰연장 Δ사업재편을 위한 R&D 등이 시급하다고 건의했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탄소감축 기술 개발에 힘쓰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간 협력 수반돼야···치솟는 전기 수요, 원전·LNG도 감안해야"

단일 기업은 물론 한 국가만이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유럽 국가들은 탄소 중립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여도 역내 시장 규모나 역내 각종 지원책을 통해 이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유럽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부수적 목적으로 관세 성격의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을 위해 정부가 내건 방법론들은 모두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신사업들"이라며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개별 기업이 선뜻 나서기 어렵고, 시장 창출을 위해 한 국가를 넘어 유럽이나 북미 처럼 '아시아'와 큰 틀에서의 역내 탄소중립 관련 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국가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기술 개발에만 약 10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조단위를 쏟아부어도 시장이 담보되지 않다면 훗날 기업들에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다.

정부가 탈탄소 방법론으로 제시한 CCUS와 관련해서도 한 업계 관계자는 "탄소를 저장할 충분한 장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통상 해외 자원부국의 폐유전이나 폐가스전이 적합한 장소로 거론되는데 이같은 장소를 마련하려면 국가간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수소환원제철에 투입되는 수소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그린수소'인만큼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자원이 저렴한 해외에서 들여오게 될가능성이 높다. 향후 호주와 중동 등의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 참여 및 파트너사 발굴의 중요성도 점차 높아지는데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한편 간헐성이나 가격 측면에서의 재생에너지의 '약점'도 정부가 충분히 인지해 LNG(액화천연가스)나 원자력과 같은 에너지원 사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원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미국과 일본, 영국, 중국 등 주요국들도 탄소중립 실현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전환 부문 계획에 원전 확대 방안을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최석환 기자 neokism@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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