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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연합훈련 명분으로 美서 백신까지 받아놓고… 훈련 말자는 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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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예정된 컴퓨터 연합훈련까지… 與圈서 잇단 연기·취소론

더불어민주당 설훈·진성준, 무소속 윤미향 의원 등 범여(汎與) 의원 74명은 5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이달 중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일 담화에서 남북 통신선 복원의 대가로 연합 훈련 취소를 요구한 지 나흘 만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는 “한미 간 합의된 훈련은 시행이 불가피하다” “한미 간 신뢰를 기조로 남북 관계를 풀어야 한다”며 취소 요구와 거리를 뒀다. 그러나 김여정 담화 이후 컴퓨터 모의 훈련을 두고도 여권에서 이견이 노출되면서 지난 5월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정상이 ‘동맹 관계의 복원’을 공언한 지 석 달 만에 한미 동맹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미국은 “한미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할 문제”라며 훈련 취소나 연기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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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조건부 연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서영석, 무소속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이병훈, 설훈, 유기홍, 윤영덕, 진성준 의원/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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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다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며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데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들은 “훈련 연기를 북한의 상응 조치를 끌어내는 협상 카드로 사용해 모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평화 협상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다. 성명에는 민주당(61명)을 비롯해 정의당(6명)·열린민주당(3명)·기본소득당(1명) 전원, 무소속(3명) 의원들이 이름을 올렸다.

한미 군 당국은 10~13일 사전 연습 성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 16~26일 연합지휘소 훈련(CCPT)을 각각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남북 통신선 복원과 김여정 담화 이후 여권에선 훈련 연기·보류를 시사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3일 국회에 출석해 정보 수장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연합 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음 날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연합 훈련 관련,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 협의해라”고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여당 의원 70여 명이 연판장을 돌려 훈련 연기를 공개 촉구하면서 연합 훈련이 보류 또는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야당은 “정치적 고려 때문에 전시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까지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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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연합훈련 주시’ 담화 후 갈라진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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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인사들의 이 같은 주장은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지지부진한 남북 관계를 반전시킬 첫 단추로 연합 훈련 연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지난 1일 연합 훈련을 놓고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할 수 있다”며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적대시 정책 폐기의 상징적 조치로 연합 훈련 중단을 지속 요구해왔으므로 이번 요구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며 “미국과 협상을 다시 해서라도 훈련을 연기하는 게 지혜로운 대처”라고 했다. 대선 주자인 김두관 의원도 조건부 연기를 주장했다.

여권에선 최근 ‘남북 관계 정상화 시나리오’가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남북이 16개월 만에 통신선을 복원하고, 통일부가 인도적 협력 물품 반출을 승인한 것도 이 일환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남북 관계 개선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호재로 작용하고, 문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공들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레거시(유산·legacy)로 남아 정권 심판론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과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이달 초 뉴욕에 나흘간 머문 것도 확인됐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청와대가 9월 유엔총회 때 남북 간 ‘빅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올해는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訪北)을 매개로 한 남북 정상 간 만남도 꾸준히 거론되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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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함께 걸어내려오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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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국이 연합 훈련 연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제 훈련이 연기될지는 미지수다.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정기적인 대규모 훈련은 연합 방위 태세 구축에 필수적”이라고 했었다. 외교 소식통은 “5월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예비군·민방위에 얀센 백신 100만명분을 제공한 것도 한미 동맹의 가치를 인정해 우리나라를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며 “무리하게 연합 훈련을 연기·축소하면 동맹 악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한미 양국은 미국의 얀센 백신 제공을 두고 “철통같은 한미 동맹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훈련 연기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송영길 대표는 라디오에서 “북미 간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지고 남북 간 협상이 완전히 재개되는 경우라면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가 있겠지만 지금 시간이 촉박해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송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서명 의원 숫자가 민주당 전체 의원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며 “훈련은 예정대로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연합 훈련 관련, “한미는 각종 여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시기나 규모,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연합 훈련 연기나 취소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신중히 협의하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코로나 상황”이라며 “연기나 취소보다는 코로나 때문에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합 훈련이 기존의 대규모 기동훈련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축소된 상황에서 다시 규모를 축소할 경우, 훈련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형해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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