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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렬한 우클릭' 최재형의 위험한 역사인식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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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이승만이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켰다고?

오마이뉴스

▲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지난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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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의 대선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전 감사원장)는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에 '정치한 지 얼마 안 돼 준비가 부족하니 다음에 더 좋은 답변을 드리겠다'는 발언을 많이 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그랬다. 급기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출마한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받았다.

그러나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에 관한 한, '평소 실력'으로 술술 답변을 했다. 그런데 술술 나온 그 답변들은 그가 '위험한' 역사인식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갖게 할 만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도 그랬다. 44분쯤 경과했을 때 "역대 대통령 중에서 헌법 가치의 측면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분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은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 저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에서 건국의 기초를 놓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물론 공과가 있고 여러 말이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갈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상식적 발언

이승만의 대통령 12년 재임이 어떤 성적으로 귀결됐는지는 1960년 4.19 혁명과 5.29 하와이 망명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그가 시민혁명을 자초한 것은 '결정적인 것'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헌법 가치'였다.

1954년 개정되고 4.19 당시 시행된 헌법의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이다. 우리 헌법의 가장 핵심적 가치인 바로 이 헌법 제1조를 이승만은 너무도 노골적으로 위반했다. 대한민국이 마치 개인 소유물인양 민국이 아닌 군주국처럼 운영해서 '민주'의 이념을 위반했다. 여론을 업신여기고 협의의 가치를 무시함으로써 '공화'의 이념 역시 위반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민주공화국의 적'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그가 '민주'의 파생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노라고 최재형 예비후보는 평가했다. 이승만보다도 최재형에 대해 더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답변이었다.

'인간 이승만'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대통령 이승만'을 좋아하고 아니고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이 이승만식 정치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3년 이후 역대 헌법은 전문(서문)에서 4.19 이념에 대한 계승 의식을 천명했다. 이승만식 정치를 배격한 사건인 4.19 이념을 떠받든다는 것은 우리 헌법이 이승만의 정치를 배척하고 있음을 뜻한다. "법관으로 감사원장으로 살아오면서 법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음을 자부한다면 그의 발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을 추켜세우는 이들은 대부분 극우 성향이거나 극우 세력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재형 예비후보 역시 '더욱 강렬한 우클릭' 경향을 보인다.

다른 답변도 문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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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기 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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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대중이 이뤄가는 역사적 흐름에 대한 최재형의 태도는 다른 답변들에도 묻어났다. '윤석열이 아닌 최재형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답변할 때도 그랬다. 그는 "윤석열 후보가 잘하고 있는데 뭐 하러 나왔냐는 질문이신 것 같은데"라면서 자신과 윤석열의 차이점 중 하나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거의 내전적 정치적 분열 상태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또 이 분열 상태에 관련된 여러 분들이 정치계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열 상태를 야기했던 여러 가지 과거의 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정치적 부채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윤석열과 비교하는 대목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내전적·정치적 분열 상태'로 규정한 뒤 자신은 이런 상태를 야기한 과거의 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평했다. 아마도 보수진영이 말하는 내전적·정치적 분열 상태는 2016년 촛불혁명 이후의 정치 상황일 것이다.

'나는 자유롭다'는 최재형의 발언에서 윤석열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관련해 박근혜 정권과 충돌한 데 이어 2016년에 박영수 특검팀의 일원으로 국정농단 수사에 참여했다. 최재형이 말한 '정치적 부채'는 윤석열이 촛불혁명 흐름을 타고 국정농단 수사에 가담한 사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은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으므로 보수 진영에 대해 빚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비슷한 발언을 되풀이했다.

이런 답변들에서 묻어나는 것은 촛불혁명에 대한 시각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평가했다면, 박근혜 정권을 단죄하는 데 가담한 검사 윤석열의 행위를 은근히 비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4.19 뿐 아니라 촛불혁명에 대해서도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질문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식민지배 청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수의 대중이 만들어가는 역사적 흐름에 대한 태도는 외교문제에 대한 답변에도 묻어났다. 그는 "집권을 한다면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 건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 판결, 그대로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라고 한 직후, 이와 상충되는 발언을 이어갔다.

"양국 간의 협정이나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해결되는 방안. 그리고 우리 정부가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징용 보상에 관한 법률을 시행한 바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런 기조에 따라 정부 간에 대화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답변의 핵심은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한다'가 아니라 '한일협정이나 국제적 기준에 따라 해결돼야 하며, 이미 두 차례나 보상 법률이 시행됐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과 전범기업들이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양국간의 협정이나 국제적인 기준'을 거론했다. 소송에 의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한일협정과 국제적 기준을 근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한 것이 지난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김양호 부장판사)의 판결이다. 이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청구권협정 어디에도 강제징용 피해에 관한 것이 없고, 비엔나 협약 제27조 역시 이와 무관하다. 제27조는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을 뿐이다.

만약 한일간에 강제징용에 관한 협약이 있는데도 한국이 이를 무시했다면 제27조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협약 자체가 없으므로 제27조를 운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런 법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판사들이 그 같은 판결을 내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재형 역시 법관 출신이다. 그 역시 그런 법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6월 7일자 강제징용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커녕 되레 그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이는 식민지 한국의 서민 대중들이 당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1990년대 이래로 한국의 국민 대중들이 만들어가는 식민지배 청산 흐름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궁금케 한다.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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