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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프레시백 회수 1개 100원, 내가 알바 쓰고싶다" 쿠친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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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꾸러기 된 쿠팡의 '프레시백'

중앙일보

쿠팡의 프레시백이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방치돼 있다. 사진=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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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배송 포장재 사용을 줄이겠다며 도입한 프레시백이 제 때 수거되지 않자 배송 기사(쿠친)들에게 평가에 반영하거나 면담을 실시하겠다며 수거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쿠친들은 프레시백의 수거는 물론 안에 들어있는 아이스팩 등을 분리하는 것은 촘촘히 짜여진 배송 일정 탓에 쉽지 않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본지가 ‘“제발 좀 가져가세요” 쿠팡 프레시백이 골칫거리 된 사연’ 기사를 보도한 이후 쿠팡 측은 쿠친들에게 '긴급입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를 띄웠다. '배송가서 프레시백이 있는 데 안가져온다? 그러면 데이터에 그대로 꽂힙니다. 회수율이 떨어지면 해당 인원들에 대해 면담 및 평가에 큰 영향이 미칠듯 싶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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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에서 지난 2일 쿠팡 배송기사인 쿠팡친구에게 긴급공지한 내용. [자료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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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대해 쿠친들은 본지에 이메일을 보내 본인들이 게을러서 프레시백을 수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4일 쿠친들의 e메일을 분석해보니 "프레시백을 수거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배송일정이 빡빡해 프레시백 수거가 쉽지 않다. 회사가 프레시백제도를 개선할 생각은 않고 쿠친만 압박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프레시백은 쿠팡이 친환경 배송을 하겠다며 도입한 것으로 신선제품 배송 서비스인 ‘로켓프레시’를 배송할 때 사용한다. 프레시백은 제품을 받은 후 60일 안에 반납해야 하고 60일이 지나면 8000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프레시백이 제 때 수거되지 않아 아파트 현관문 앞 등에 쌓여있다보니 청소할 때 불편하거나 미관을 헤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 용인 지역의 한 쿠친이 본지 기사가 나간 이후 보내온 e메일을 소개한다.

■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경기 용인의 한 쿠친이 보내 온 e-메일

“라면 박스 크기의 프레시백이 고객들의 문 앞에 놓여있는 게 뻔히 보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회수하기 싫어서 두고 오는 게 아닙니다. 특히 새 상품을 배송하러 간 집 앞에 떡 하니 놓여있는 프레시백을 왜 회수하지 않겠습니까. 프레시백을 집는 순간부터 일어날 일이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직 쿠친입니다. 야간 근무조입니다. 오후 9시 30분에 출근합니다. 오후 9시 40~50분에 관리자가 제가 배송해야할 지역을 알려줍니다. 배송 지역이 늘 같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배송 지역이 정해지면 제 키만한 철제 적재함인 롤테이너 1~2곳에 실려 있는 짐을 제 배송차인 쿠팡카로 싣습니다. 30분~40분 정도 걸립니다. 이후 10시 10~20분에는 출발합니다. 배송 현장에 도착해서 짐을 뒤지느냐, 바로 꺼내느냐는 배송 시간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싣습니다.

첫 배송지에 도착하면 대략 10시 40분 정도 됩니다. 이때부터 빠르게 배송을 시작합니다. 본사는 분기별로 안전교육을 시행합니다. 안전교육의 주요 내용은 안전밸트를 꼭 매라, 배송 시 쿠팡차 시동을 꺼라, 차 문을 잠그고 배송을 해라, 배송 시 뛰지 말고 걸어라, 한 번에 많은 짐을 들지 마라, 같은 내용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이런 지침을 지키면 한 집 배송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요. 본사에서는 한 가구당 배송 시간을 3분이라고 정합니다. 이 기준으로 다음날 오전 2시 30분까지 대략 4시간 동안 80곳, 많게는 120곳에 배송합니다. 저도 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차 문도 잠그고 짐도 4개씩만 들어봤습니다. 적어도 한 가구당 5분 걸립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배송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본사에서는 쿠친을 위하는 다양한 제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쿠팡케어’입니다. 혈압‧혈당 등 건강 지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쿠친을 대상으로 4주 동안 배송 업무를 멈추고 건강관리에만 집중하라는 건강증진 프로그램입니다.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근무 환경을 개선할 수는 없는 걸까요. 현장에서는 요식행위라는 생각만 듭니다.

근무시간 중에 주어지는 한 시간의 휴식시간도 그렇습니다. 야간 배송은 2회로 나눠서 진행됩니다. 2시 30분까지 1차 배송이 이뤄지고 나면 본사에서는 한 시간의 휴식 후에 2차 배송을 진행하라고 합니다. 2시 30분까지 겨우 1차 배송을 마치고 해당 캠프로 이동하는 데 20분이 걸립니다. 캠프에 도착하면 2차 배송 물량을 싣는데 20~30분이 걸립니다. 오전 3시 30분부터 배송을 시작하려면 짐을 싣고 바로 20분간 배송지로 이동합니다. 사실상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시백 수거는 어렵습니다. 새 상품을 배송하는 집 앞에 놓은 프레시백은 가져갈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레시백을 집어 드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선 쿠팡차에 배송 물량을 가득 싣고 배송을 시작했는데 프레시백이 있으면 차량에 적재 공간이 부족합니다. 접어서 실으면 되지 않으냐고요. 앞서 말했듯이 한 가구당 3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접을 시간이 없습니다.

더구나 프레시백 안에는 아이스백도 있습니다. 아이스백이 녹으면서 흐르는 물이나 혹시 아이스백이 터지기라도 하면 배송 물량이 오염됩니다. 배송(회수)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와서도 프레시백은 골칫거리입니다. 녹초가 되어 퇴근하고 싶어도 프레시백 정리에만 30분이 넘게 걸립니다. 프레시백을 전부 펼쳐서 접어야 하고 아이스백을 분리해야 합니다. 본사에서는 비닐 아이스백을 재활용한다고 프레시백에 넣어두라고 합니다. 실상은 저희가 가위로 잘라서 냉매를 제거하고 폐기해야 합니다. 비몽사몽 간에 아이스팩을 가위로 자르다가 손을 다친 적도 있습니다.

본사에서는 프레시백 한 개에 100~200원을 준다고 합니다. 제가 프레시백 알바를 고용하고 싶습니다. 300원까지 줄 생각이 있습니다. 고객들께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수거하기 싫어서,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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