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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수만 쳐도 벌금, 교도소는 ‘포화’…올림픽으로 재조명된 벨라루스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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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림픽은 각국이 국력을 선전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숨기려 하는 치부를 드러낼 때도 있다. 올해 도쿄올림픽에서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 벨라루스의 실태가 폭로됐다. 육상선수 크리스티나 치마누스카야의 망명 사건으로 알레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의 비상식적인 인권 탄압이 드러난 것이다. 벨라루스 시민단체들과 외신들에 따르면 벨라루스 현지에서는 반정부 인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체포가 이어지며 교도소가 포화 상태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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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참가했다가 망명을 신청한 벨라루스의 여성 육상선수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왼쪽)가 4일(현지시간) 일본 도쿄를 떠나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국제공항에 도착해 마그누스 브루너(오른쪽) 오스트리아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빈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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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까지 금지한 비상식적 탄압

지난해 6선 연임에 성공하며 27년째 집권 중인 루카셴코는 집권 전까지는 범죄 척결로 대중들의 호감을 산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뒤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강화되며 권위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3선 금지를 철폐하고 장기 집권 야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루카셴코가 당선된 선거에서는 늘 부정선거 의혹이 뒤따랐다. 정부 관계자들이 루카셴코가 승리하도록 개표 결과를 조작하도록 지시했다거나, 타 후보를 찍은 표가 루카셴코의 표로 집계됐다는 투표소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온 것이다.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서자 정권은 폭력적으로 저지했다. 지난해 8월 대선 뒤 발생한 대선불복 시위에선 3만5000명이 연행됐다. 10대 청소년이 끌려가 의문사하고 구치소에서 고문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시위를 주도한 이들 중 한 명인 마리아 콜레스니코바에 대한 재판은 지난 4일(현지시간) 수도 민스크 법원에서 비공개로 시작됐다.

그의 탄압은 상식을 벗어났다. 2006년 시위대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말없이 박수를 치는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벌이는 깜짝 행사) 형식의 시위를 벌이자 루카셴코는 “참전용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공개석상에서 박수치는 것을 금한다”고 선언했다. 법적 근거가 없었으나 경찰은 그의 지시대로 박수를 친 이들에게 200달러(약 22만8360원)의 벌금을 물게 했다. 이에 시위대는 휴대전화 벨소리 울리기, 아이스크림 먹기 등의 시위를 벌였다. 2012년에는 비행기로 비판 메시지와 함께 테디베어 인형을 살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날이 갈수록 루카셴코가 잡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지며 교도소는 포화 상태를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이날 “벨라루스 정부가 소비에트 시절 미사일 저장시설 부지에 반체제 인사들을 가두기 위한 강제수용소를 건설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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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당시 공개됐던 테디베어 시위 사진 |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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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탄압은 ‘후폭풍’으로

스포츠 스타들도 루카셴코 탄압의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10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시위대에 대한 고문을 금지하고 새로운 선거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그러자 95명의 선수들을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금하고 그중 7명은 기소했다.

체육계 탄압은 후폭풍을 불렀다. 실력있는 선수가 축출된 자리를 억지로 메꾸려다 보니 국제대회 성적이 떨어진 것이다. 벨라루스는 2016년 리우올림픽 때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4개를 땄지만 도쿄올림픽에선 이날까지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치마누스카야의 망명 사건이 벌어지며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커졌다.

루카셴코는 최근 정부 인사들과의 회동에서 올림픽 성적과 관련해 “선수들이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고 현지매체 ‘BELTA’는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메달에 대한 보상이 적은 일부 국가에 비해 벨라루스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데도 선수들의 절박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실패에 대한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대표팀 일부 코치진이 이번 올림픽이 끝난 뒤 귀국을 회피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루카셴코 정권의 인권 탄압이 계속되자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최근 벨라루스 관리들과 관련 단체들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루카셴코는 올해 러시아와의 정상회담만 4차례 개최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가 인근 국가들의 반러시아 전선 확대를 막기 위해 벨라루스 독재 정권을 이용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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