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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금융당국 새 수장된 고승범·정은보, 가계부채·가상자산·관계개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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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수장을 모두 바꾸었다. 금융위는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금감원은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대사가 각각 내정됐다. 금융위는 지난 6월 개각 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청와대는 오랫동안 은성수 현 위원장의 후임자를 찾아왔다. 금감원은 지난 5월 윤석헌 전 원장 임기가 끝났지만 세 달 넘게 김근익 수석부원장의 대행 체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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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5일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금융위원회 위원장 내정자(왼쪽부터)로,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대사를 금융감독원장 내정자로 각각 내정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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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모두 행시 28회 동기다. 능력을 인정받아온 금융 관료로 금융위 요직을 맡아 왔다. 가령 정은보 금감원장 내정자가 금융정책국장을,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금융서비스국장(현 금융산업국장)을 맡는 식이었다. 홍남기 부총리(행시 29회)의 1년 선배이기도 하다.

이번 인사에 대해 금융업계에서는 임기를 10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금융정책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가계부채과 가상자산이라는 양 대 현안에서 기존 정책 방향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정책 처방 위주로 대응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고 내정자는 금통위원으로 원래 ‘비둘기’ 성향으로 분류되어왔던 인사이지만, 최근에는 가계부채 위험성을 강조하며 금리 인상에 찬성하는 ‘매파’로 기울어졌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 개선도 일각에서는 점친다. 윤석헌 전 원장 시절 금융위와 금감원은 여러 현안을 놓고 적잖은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은 위원장과 윤 전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 연임, 사모펀드 사태 원인과 해결 방안, 금감원 예산 편성 권한을 놓고 서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금융위 산하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와 금감원 관계 실무 부서 간의 관계가 악화돼 업무 처리가 장기간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두 사람이 금융 관료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지라 업무 처리에서 협조 관계를 구축할 것이란 얘기다.

◇고승범 “가계부채, 자산가격 변동 등 위험요인 철저 관리”

고 내정자는 청와대의 인사 발표 2시간 뒤 금융위를 통해 내정 소감을 발표했다. 그는 “가계부채, 자산가격 변동 등 경제·금융 위험요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대책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거론한 것이다.

이어 “한국판 뉴딜 추진, 금융산업 혁신과 디지털화 등 미래 먹거리 발굴을 통해 선도형 경제·금융으로의 전환을 적극 뒷받침해 나가겠다”며 “금융소비자 보호를 한층 더 두텁게 하는 데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한국은행, 기재부 등과의 밀접한 업무 협조도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과도 더욱 긴밀하게 소통·협력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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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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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내정자는 지난 7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또 5월 여신금융협회 강연회에서는 민간부채와 부동산금융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데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으며, 저축은행과 카드사를 비롯한 비은행권 가계 신용대출 급증에도 우려를 보였다.

가상자산 제도화도 주요한 현안이다. 9월 24일까지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은행에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한다. 바이낸스 같은 해외 거래소도 마찬가지다. 발급을 받지 않은 곳은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에 따라 9월 25일부터 불법 거래소가 된다. 대규모 폐업 가능성이 높다. 또 실물자산과 연계돼 거래되는 증권화 토큰 등 다른 가상자산에 대한 제도화도 과제다. 국회에 이와 관련한 여러 법안이 상정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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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 내정자는 5월 강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K자형' 경기회복이 가계부채 위험 등 신용리스크를 키울 것으로 우려했다.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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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내정자는 1962년생으로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8회다.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감독정책과장·기획행정실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금융정책국장·사무처장·상임위원을 각각 역임했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 처리를 주도했다.

2016년부터는 금통위원을 지냈으며 지난해 4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한은법이 개정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사례다. 인간적으로는 온화하고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다. 고 내정자와 여러 번 손발을 맞춰온 한 전직 금융위 관료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일처리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김영삼 정부 때 건설부 장관을 지낸 고병우(88)씨다.

◇공석 3개월 만에 자리 채운 금감원장

정은보 금감원장 내정자는 “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은 만큼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기관과 협력하며 리스크 요인들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5일 밝혔다. 또 “현 시점에서 금융감독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재정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정 내정자는 ▲내용적인 측면은 물론 절차적 측면도 함께 노력하는 ‘법과 원칙에 기반한 금융감독’ ▲선제적 지도 등 ‘사전적 감독’까지 아우른 조화로운 운영 ▲금융소비자 보호 노력 지속을 강조했다.

정 내정자는 당초 윤 전 원장에 이은 차기 금감원장 후보로 가장 유력했었다. 정 내정자는 금융위 금융정책국의 전신(前身)인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에서 금융정책과장, 보험제도과장 등을 역임했으며 이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과 사무처장, 기재부 차관보 등 기재부 금융위의 금융정책 부서를 고루 경험했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한 전 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험은 짧지만, 민주당 쪽 네트워크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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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서울 본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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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장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있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좁은 인재 풀(pool)을 가지고 경제 부처 개각 퍼즐을 맞추다보니 금감원장이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6월 개각 당시 기획재정부, 금융위도 함께 대상에 올랐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자연스레 금감원장 인사도 후순위로 밀렸다. 두 번째는 비(非)관료 출신을 고집하다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교수 출신 등을 선호하는 분위기였지만, 여러 인물들이 자리를 고사하거나 최종 낙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는 임기가 10개월에 불과한 자리라는 것이다. 자연스레 하마평에 오를만 한 인물들은 차기 대통령 선거 캠프에 관여하는 등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 내정자는 꼼꼼한 일처리와 뛰어난 업무 장악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금융위 출신(행시 34회)인 김근익 수석부원장 등 금감원 간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금감원장으로 정 내정자의 과제 중 하나는 조직 관리다. 금감원은 심각한 인사 적체와 승진 등을 둘러싼 불만 누적으로 내홍을 겪어왔다. 지난 2월 부국장과 팀장급 이하 직원들에 대한 정기인사에서 과거 채용 비리를 저지른 것이 2017년 감사원으로부터 적발됐던 C팀장(3급)과 D수석조사역(4급)을 각각 부국장과 팀장으로 승진한 것에 대해 직원들이 격렬하게 불만을 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급기야 김근익 수석부원장 등 부원장 4명이 공동으로 “최근 정기인사 이후 직원들 간 조직 및 경영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부 전산망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다.

고 내정자와 함께 금융위와 금감원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금융회사에 대한 각종 제재 절차 등을 완료하는 것도 현안 중 하나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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