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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네거티브만 키운 '검증단'···"與 보면 2007년 한나라당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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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대선 예비후보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원팀' 협약식에서 '원팀' 배지 모양 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길 대표, 추미애,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김두관, 이재명 후보, 이상민 선거관리위원장.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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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더불어민주당 경선을 보면 2007년 한나라당이 떠오른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당 차원의 후보 검증단 설치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자, 당 관계자가 4일 한 말이다. 전날 이재명 경기지사의 음주운전 재범 의혹이 제기되자 6명의 후보 중 4명은 검증단 설치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번 기회에 논란을 털고 가자”(김두관 의원)는 취지이지만, 당 안팎에선 검증기구가 되레 네거티브를 부추겼던 과거 사례를 떠올리며 우려를 나타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정세균 측 “검증기구 설치, 국민에 대한 예의”



이날 정세균 전 국무총리 캠프 장경태 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내 ‘클린 검증단’ 설치를 재차 요구했다. 장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얼굴이 될 대통령 선거에서 당 차원 검증 기구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흑색선전과 가짜뉴스를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후보 검증을 강화하는 방안은 당내 검증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후보 검증단 마련을 공개 요구한 이후 꾸준히 당에 검증단 설치를 촉구해왔다.

이같은 정 전 총리의 제안은 그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전날(3일) 이 지사의 음주운전 전력이 도마에 오르자 다른 후보들이 동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김두관 의원이 먼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에서는 후보 검증단까지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는 여론조사 지지율에 취해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다. 100만원 이하 모든 범죄기록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뒤이어 다른 후보들도 “지금처럼 장외에서의 의혹 제기는 국민께 피로감을 드리는 공방으로 흐르기 쉽다”(이낙연 전 대표), “당 차원의 검증은 당연하다”(박용진 의원) 등 검증기구 설치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반면 최근 각종 의혹 제기에 직면한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과기록을 이미 당에 다 제출했다. 본인(다들 후보)들도 다 냈을 텐데 그런 말씀을 하시니 이해하기 어렵다”며 검증단 요구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검증단은) 당헌·당규에 있지도 않은데 또 만들어서 티격태격하는 것은 국민들이 짜증나시지 않을까 싶다”고 반대 뜻을 피력했다.

후보들 간 의견이 갈리자 당 지도부는 논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만난 기자들에게 검증단 관련, “이미 레이스가 시작돼가는 중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검증단 설치)이 후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본다”며 “이걸 주제로 삼아 논의하기에 쉽지 않아 별도의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연상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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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7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후보 선출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이명박, 박근혜 후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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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당내 검증단 설치 제안이 선뜻 환영받지 못하는 건 과거 유사한 기구가 의혹을 해소하기보다는 되레 네거티브를 과열시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검증 공방이 뜨거워지자 당내 검증위원회를 꾸려 자체 청문회까지 열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BBK 주가 조작, 도곡동 땅 투기 의혹(이명박),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영남대 비리 의혹(박근혜) 등은 훗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두 사람의 발목을 잡는 논란으로 남았다.

검증단 설치에 반대하는 후보 측 관계자는 “과거 한나라당 경선 사례를 보면, 온갖 살벌한 내용들이 나와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해가 되지 않았느냐”며 “본선에서의 승리와 경선 이후 ‘원팀’을 생각한다면, 당 차원의 검증단 요구는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검증기구가 마련되면 의혹이 잦아들 것이란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오히려 온 언론이 네거티브로 도배될 게 뻔하다”며 “일부 후보들이 선거를 진흙탕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당 차원의 검증기구는 실질적인 검증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검증단 설치 명분엔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2007년 한나라당 사례에서 보듯 막상 설치되면 과거 회귀적인 네거티브 공방이 아예 ‘공식적’으로 오가게 하는 역할만 할 가능성이 크다”며 “과거 논란보다 미래 정책 비전을 두고 더 치열한 후보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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