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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코치와 여섯 소녀가 만든 기적, 이게 실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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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고 정인영 코치의 기적 영화화한 <킹콩을 들다>

지난 7월 23일 개막한 도쿄 올림픽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평생에 한 번 밟아보고 싶은 '꿈의 무대'다. 올림픽 금메달만 23개를 보유하고 있는 마이클 펠프스 같은 선수도 있지만 평생 운동에 매진하고도 은퇴할 때까지 올림픽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도 부지기수다.

각 체급에서 가장 큰 무게를 들어올리는 사람을 가리는 역도는 1896년 초대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었을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역사가 깊은 종목이다. 한국에서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작은 거인' 전병관이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던 '여제' 장미란, 앞으로 넘어지는 순간까지 바벨을 놓지 않았던 '투혼의 상징' 이배영 등 뛰어난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역도는 여전히 부상위험도 크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면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도 힘들다. 저변도 그리넓지 못한 편인데 그럼에도 선수들은 목표를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린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지난 2009년 학생 역도 선수들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꿈을 담은 역도 영화가 개봉돼 주목을 받았다. 배우 이범수가 코치 역할로 출연했던 영화 <킹콩을 들다>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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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콩을 들다>는 할리우드 대작들 사이에서 1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 (주)NEW



2개의 남우주연상 받은 이범수의 대표작

이범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속편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를 시작으로 많은 영화와 드라마, 시트콤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꽤 오랜 무명시절을 보냈다. <태양은 없다>에서 이정재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사채업자 역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이범수는 유재석이 MC로 유명해진 프로그램 <목표달성 토요일-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각인시켰다.

당시 <동거동락>에는 박경림, 강현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UN, 박지윤 등 당시 잘나가던 신예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는데 이범수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최후의 2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이범수는 뛰어난 언변과 언어유희 개그로 MC 유재석과 함께 <동거동락>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했다.

<동거동락>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바짝 끌어올린 이범수는 <정글쥬스>, <일단 뛰어>, <몽정기>, <싱글즈> 등의 영화에서 잇따라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다. <오!브라더스>에서는 <태양은 없다>에 함께 출연했던 이정재와 형제로 호흡을 맞추며 전국 3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후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힌 이범수는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와 2008년 <온 에어>를 통해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이범수는 2009년 <킹콩을 들다>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 출신의 시골 중학교 역도부 코치를 연기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코믹한 이미지를 깨고 진중한 역할에 도전한 이범수는 <킹콩을 들다>에서 호연을 펼치며 황금촬영상 시상식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킹콩을 들다>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해리포터와 혼혈왕자> 같은 대작들의 공세 속에서도 전국 1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킹콩을 들다> 이후 드라마 <자이언트>와 <샐러리맨 초한지>를 연속 히트시킨 이범수는 <신의 한 수>,<뷰티 인사이드>,<인천상륙작전>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2019년 제작 책임자로 나섰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전국 17만 관객에 그치며 참패했고 이범수도 슬럼프에 빠졌다. <엄복동> 이후 한 동안 활동이 뜸했던 이범수는 최근 라미란, 송새벽 등과 함께 신작 <컴백홈> 촬영을 마쳤다.

몰락한 코치와 소녀들이 만든 큰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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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수는 <킹콩을 들다>를 통해 2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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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 이지봉(이범수 분)은 팔꿈치 부상 치료 도중 발견된 확장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옛 스승의 도움으로 간신히 신설된 보성여중 역도부 코치로 부임했지만 지봉은 부원모집 브리핑에서 역도의 힘들고 고된 점만 잔뜩 열거하며 어렵게 모인 학부형들을 쫓아냈다(그럼에도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진 부원들이 하나, 둘 모여 역도부가 출범했다).

지봉은 합숙소와 취사시설 마련을 위해 교육감(변희봉 분)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습만 시키고 교장(박준금 분)은 지봉과 상의 없이 대회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다(대회 참가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 이범수와 박준금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이 볼만 하다). 하지만 기본기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은 대회에서 차마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실수를 저지르며 망신을 당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합숙소에 모여 지봉과 함께 결의를 다진다.

지봉은 부원들을 취미반과 선수반으로 분류해 훈련시키고 3학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합동 훈련을 통해 기량을 향상시킨다. 지봉의 지도를 받은 아이들은 각각 중등부와 고등부 대회를 휩쓸고 보성여중은 표창을 받는다. 하지만 현역시절 지봉과의 경쟁에서 밀렸던 고교 코치(김산 분)는 지봉이 지도했던 아이들을 데려가 모진 구박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영자(조안 분)의 보금자리였던 합숙소까지 폐쇄되면서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심근경색이 악화된 지봉은 아이들에게 줄 편지를 손에 쥔 채 길에서 쓰러지며 숨을 거둔다. 대회장에서 지봉의 죽음을 알게 된 아이들은 새 코치의 구타에도 가슴에 이지봉의 이름을 새기고 대회에 출전한다. 한국신기록을 세운 영자는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 지봉이 좋아하는 가수였던 '양희은'을 외치며 울음을 터트린다. 세월이 흘러 올림픽에 출전한 영자는 지봉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세계 신기록에 도전한다.

시골 소녀들이 전국대회 우승을 휩쓴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킹콩을 들다>는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고 정인영 코치는 영화 속 이지봉처럼 시골 학교의 역도 코치를 역임하며 2000년 부산 전국체전에서 여자 중·고등부에 걸린 15개의 금메달 중 14개를 휩쓰는 기적을 만들었다. '올림픽 영웅' 전병관의 은사이기도 한 정인영 코치는 2001년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킹콩을 들어올린 순수한 여섯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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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안은 <킹콩을 들다>에서 역도 선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7kg을 증량하는 열의를 보였다.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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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범수는 조연으로 나왔거나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 중에는 꽤 많은 히트작이 있지만 단독주연을 맡은 영화 중에는 확실한 대표작이 없었다. 단독주연 영화 중에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킹콩을 들다>가 이범수에게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킹콩을 들다>가 이범수에게만 의존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킹콩을 들다>의 작은 성공은 보성여중 역도부의 여섯 소녀를 비롯한 조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훗날 국가대표로 성장해 올림픽까지 출전하는 박영자 역은 <여고괴담3-여우계단>, <홀리데이>, <언니가 간다> 등에 출연했던 배우 조안이 맡았다. 조안은 <킹콩을 들다>에서 역도에 타고난 신체조건을 가진 영자 역을 야무지게 소화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조안은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 중 유일하게 얼굴이 알려졌음에도 망가지는 연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역도 선수에 어울리는 체형을 만들기 위해 몸무게를 7kg이나 늘리기도 했다.

힘 쓰는 일이 천성인 보영 역의 김민영은 2011년 영화 <써니>에서 쌍커풀에 집착하는 장미의 아역을 연기해 강한은 인상을 남겼고 역도복에 반해 역도부에 가입하는 송민희 역의 이윤회는 1200만을 모은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까칠한 보육원 교사로 출연한 바 있다. 아픈 엄마를 위해 역도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며 역도부에 입부한 여순을 연기한 배우는 무려 2017년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역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희서다.

남다른 애교심으로 역도부를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교장 선생님 역의 박준금과 매사 불만인 이지봉을 어르고 달래 역도부가 자리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교감 선생님 역의 우현도 <킹콩을 들다>의 숨은 주역들이다. 이 밖에 유명 역도인 전병관과 이배영도 흔치 않은 역도영화의 성공을 위해 헤드코치와 협회관계자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양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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