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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호이의 사람들] 팀 해체 후 13년, 거북이 지이의 다시한번 살아가는 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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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거북이의 빙고와 비행기를 들으며 태권도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태권도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거북이의 리더였던 터틀맨의 사망 소식에 큰 충격에 빠졌었다. 다시는 터틀맨의 모습을 볼 수 없을줄만 알았지만 지난 2020년 엠넷에서 한 AI 프로젝트 ‘다시한번’를 통해 12년만에 그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등장하자 팀원들이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고 보는 이들에게도 큰 뭉클함을 전해줬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맴버였던 금비는 한 소속사의 대표가 돼 지난해 인터뷰를 통해 만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맴버 지이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뷰 섭외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학교, 회사 등에 연락을 해서야 그와 연락이 닿았다.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 거북이의 전 맴버 지이와 다시한번 살아가는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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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A. 아이 키우고 있고요. 시국이 이렇다 보니까, 수업을 듣는 것도 집에서 하고 일하는 것도 집에서 하고, 아이와 토닥토닥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Q. 거북이는 어쩌다가 함께하게 됐나요?

A. 아주 어렸을 때인데 터틀맨 오빠는 이미 팀을 꾸리고 있었는데, 터틀맨 오빠의 맴버 언니가 제 친구한테 연락을 하고 친구가 저한테 연락을 해서 데모작업을 도와달라고 해서 보컬로 갔었죠.

Q. 터틀맨과 그때 함께 했던 언니도 거북이 멤버였던 건가요?

A. 저희 거북이 멤버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세명이 아니었어요. 다섯명에 오빠, 언니도 있었어요. 그리고 제 또래들도 있었고, 되게 많았었어요. 그러다가 나중까지 남아서 추려진 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거북이가 된 거죠.

Q. 잘 알려진 연예인 중에서 당시 함께 활동했던 연예인들이 누가있나요?

A. 그때가 2001년도 였으니까, 채연 언니 있었고, 지금도 활동 열심히 하고 계시는 장영란 언니, 비 씨도 계셨고요.

Q. 해체 후 지금까지도 거북이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해체 이후 태어난 사람들도 거북이 노래를 알고 있어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A. 정말 신기했어요. 저는 엠넷에서 한 AI 프로젝트 ‘다시한번’에 출연한 게 터닝포인트 였다고 생각해요. 아니었으면 세상 밖으로 아예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무서워서 댓글 같은 거 보지 못하고, 그때 저희는 악플도 없는 무플이었어요. 언제나 있을 것 같은 옆집언니, 이모, 누나였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고 계속 되새김질 해주시는 거예요. 너무 영광이었고, 그때부터 댓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유튜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유튜브를 보면서도 거북이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저희 노래를 찾아 듣지도 않았고요. 거북이에 대한 콘텐츠를 활용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작년에 엠넷에서 한 ‘다시한번’의 PD님이 말씀해주셨어요. 반응이 좋다는 걸 그때 그분들한테 듣고 용기 내서 나가게 된 거에요.

Q. 그러면 거리를 다니면서 거북이 노래가 나오면 어떻게 하셨나요?

A. 작년 12월달 전 후로 나눠질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마트에서 노래가 나오면 뒤돌아 서서 나왔어요. 듣지 않았거든요. 거북이가 아닌 채로 살려고 했었어요.

Q. 왜 이렇게 벽을 쌓고 살아 온 거였나요?

A. 거북이를 회상하는 것 조차가 저한테는 아픔이었어요. 그렇게 좋은 한때를 재밌게 살았는데 이제는 아니니까, 그때만 회상하면서 살 수 없잖아요. 미련 떨면서 살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 기억을 지우고자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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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거북이가 언제부터 인기가 많아졌던 건가요?

A.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고, 많은 분들이 편하게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편하게 느껴주시고, 편하게 생각을 해주시고. 노래 자체가 어렵지 않잖아요. 그래서 많이 들어주시면서 근처에서 맴도는 노래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정말 큰 관심을 받았을 때가 ‘비행기’ 때 였어요. 비행기 때 처음 1위를 했고요. 터틀맨 오빠가 처음에 쓰러지고 병원에서 수술 들어가기 전에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았었데요. 그래서 그 멜로디를 기억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나서 앨범을 내게 된 거죠.

Q. 거북이 당시를 떠올리면 기분이 어떤가요?

A. 지금 떠올리는 것과 그때 그 생각, 그 느낌을 다른텐데 그냥 너무 재밌었어요. 방송하는 것도 재밌었고, 셋이 숙소에서 알콩달콩 하는 것도 재밌었고 그땐 그냥 즐겁게만 살았어요.

Q. 거북이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1위 했을 때예요. 그때만큼 기뻤던 순간이 없었으니까. 그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최고의 순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남매처럼 지냈으니까, 토닥토닥한 세월도 있었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그게 다 행복이었었어요.

Q. 금비와는 어떻게 지내세요?

A. 연락 안하고 살아요. 따로따로 자기 인생 걸으면서 살게 된 거죠. 옛날 같은 관계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일도 같이 했었고, 같이 살았으니까, 형제처럼 지냈는데 그동안 안 본 세월이 너무 길어요. 그래서 어디서 뭘 하던 잘 살겠지 라는 믿음으로 있는 거죠.

Q. 지이는 거북이에서 어떤 맴버였나요?

A. 존재감 없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동생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Q. 거북이 노래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는 뭔가요?

A. 비행기는 더할 나위 없이 너무 소중했던 곡이고요. 래퍼들은 누구나 가사를 쓰는데, 내 이야기를 가사에 담는다는 게 영광이에요. 그래서 부모님의 이야기도 쓰고 소소한 이야기를 쓰는 재미가 있는데 ‘10년 전으로’라는 곡이 저한테는 그랬었어요.

Q. 터틀맨의 사망 이후, 거북이 팀 해체 이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2011년 금비랑 마지막 앨범을 냈어요. 이강이라는 랩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터틀맨 오빠의 대타가 아니었어요. 터틀맨, 지이, 금비 그리고 이강. 제 4의 맴버로서 함께 했었어요. 그 친구와 셋이 2011년도에 마지막 앨범을 냈죠. 앨범을 내고 저는 DJ 활동도 했어요. 가요를 듣지 않았어요. 혼자서 DJ를 하면서 거북이 노래를 리메이크 해서 박자감을 다르게 바꿔서 혼자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어요. 근데 제가 아예 음악을 끊고 살아온 건 임신 4개월 때까지는 DJ도 하다가 그 후로는 아예 음악을 안했어요. 하기 싫었거든요. 인생을 다 놔버리고, 아이에게 올인했어요. 제가 음악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DJ였고 그게 너무 즐거웠는데, 어느순간 아이한테 미안해지더라고요. 아이를 낳은 후에도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땜에. 제 인생에 1순위가 아이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때 아이를 가르치던 것도 놔버리고, 제가 하던 공부도 놔버리고, 다 놔버리고 아이만 봤어요.

Q. 다른 활동들을 하면서 거북이라는 타이틀이 계속 따라오지 않았었나요?

A. 따라오죠. 그게 부담이었어요. 저도 아이 키우다 보면 싸움도 있게 되고, 서운한 일도 생기는데 그런 거 하나하나가 거북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거북이 쟤 있잖아, 쟤가 이랬어”가 되거든요. 제 1순위가 아이 이기 때문에 아이가 어떤 경로로든 엄마의 욕을 듣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더 숨었던 것 같아요.

Q. 거북이 해체 이후 깨달은 건 뭔가요?

A. 거북이 였으니까, 많은 분들이 거북이 해체 이후를 궁금해 하시는데 이제는 아이가 있고, 없고로 바뀌었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개과천선 했다고 생각해요. 말하는 것 하나도 조심스럽고 걸어다니는 것 조차 무섭고, 내가 했던 것들이 아이한테 가면 안 되니까, 잘살고 예쁘게 살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그 심정 말도 못하게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A. 말도 못하죠. 그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죠. 그날도 스케줄 준비를 하고 있었었어요. 스케줄 준비를 다 했는데 오빠가 안 오니까, 이상했던 거고 중간에 매니저랑 통화하면서 ‘오빠 왜 안와?’했더니 경찰이 와야 된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도둑이 들거나 사고가 난 줄 알았어요. 근데 이유도 말을 안 해주고 사무실에 데려다 놓더라고요. 사무실에 와서 인터넷으로 오빠의 비보를 접했어요.

Q. 누군지도 못 알아 볼 정도로 눈이 퉁퉁 부어있는 사진을 봤거든요.

A. 아무도 저를 못 알아봤어요. 제가 옆에 있는데, “지이는 어디갔어”하는 소리들이 들렸었어요.

Q. 한 순간에 인생이 바뀌어 버린 거잖아요.

A.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어요. 오빠가 가셨을 때 제 휴대폰에 남아있는 연락처도 우리 매니저 밖에 없었어요. 연예인 친구도 몇 없었고, 제 앞길을 어떻게 이끌어가자고 끌어주신 분이 없었거든요, 정말 막막했어요. 저희는 터틀맨 오빠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 ‘네’하고 따랐을 뿐이니까. 그랬던 꼬맹이가 그런 큰 아픔과 상황을 맞이하게 됐을 때 해결능력 조차 없었어요. 오빠가 다 해줬기 때문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거든요.

Q. 인생의 반을 함께한 터틀맨을 AI로 다시 봤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A. 제작진들이 오빠 목소리를 사전에 저희한테 들려주지 않았었어요. 무대에 올라갔는데 오빠 목소리가 들리니까, 제가 노래하고 춤을 춰야 되는데 울컥해서 버퍼링이 생겼었거든요. 그러고서 내려왔을 때 누군가가 찍어준 영상을 보고, 옆에 터틀맨 오빠가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무대에 있을 때는 오빠가 안 보였거든요.

Q. ‘다시한번' 섭외 과정과 뒷 이야기가 궁금해요.

A. 모든 게 다 결정이 된 후에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섭외가 됐다고 알고 있어요. 제 연락처를 찾는 것 조차 많이 힘드셨대요. 그래서 숨어 있다고 생각했대요. 저는 숨어 있던 게 아니라 SNS를 안 했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활동을 안 하니까, 연결이 닿지 않았을텐데 터틀맨 오빠가 계실 때 마지막으로 매니저 했던 분이 방송국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연결이 돼서 제 연락처를 받으셨대요. 몇 번 연락이 왔어요. 안 받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전화 안 주셔도 돼요, 저 방송 안 합니다’라고 전화를 했는데 터틀맨 오빠에 대해 여쭤볼게 있으니까, 인터뷰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정도면 할 수 있어요’라고 해서 만나 뵌 거예요. 그 분들이 기획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반신반의 했죠. 저는 한국 기술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웃음).

Q. 터틀맨은 어떤 리더였나요?

A. 믿음직한 리더다운 리더였어요. 뭐든지 알아서 이끌어주시고, 아버지 같은 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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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Mnet ‘다시한번’ 이후 지이의 삶에 어떤 전환점이 됐나요?

A. 저는 SNS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펭수였어요. 히트곡 메들리 무대를 펭수가 함께 해줬는데, 펭수의 EBS 연습생 시절부터 아이가 좋아해서 TV로 봤어요. 거대한 뽀로로를 이기는 펭귄이 나왔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펭수가 그렇게 인기가 많을 줄 몰랐고 끼도 많고 말도 잘하는 재주꾼이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펭수가 “거북이가 나를 키웠줬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탁이니까, SNS 하면 안 되냐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말에 SNS를 만들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하고, 내가 SNS라도 하면 내 소식을 관심 있게 봐주실 분들이 있다는 걸 꺠달았어요.

Q. AI가 아닌 실제 터틀맨까지 거북이 셋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뭘 하고 싶나요?

A. 금비가 라면을 끓여요. 매운 걸 좋아하는 우리가 그 안에 청양고추를 10개씩도 넣고 그랬는데, 그걸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셋이서. 그리고 그때는 드라이브하는 게 낙이었어요. 숙소에서 같이 밥 해먹고.

Q. 대학교수이자, 한 회사에 본부장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A. 회사에서는 회사가 시작할 단계에 일본에서 활동을 많이 했던 유명한 연예인을 연결시켜 줬던 적이 있어요. 그걸 통해서 회사가 나아갈 수 있어서 그 직책을 맡게 됐어요. 내근보다 외근이 많고, 재택이 많거든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음반제작 실기, 실습, A&R을 가르치고 있고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제가 배웠던 부분에서 나눠주는 거니까.

Q. 실전에서 일을 해보셨으니까, 학생들에게도 더 생생하게 가르칠 것 같아요.

A. 다 가르쳐주는데 얘네가 다 안 들어요. 의지만 있으면 학교 안다녀도 돼요. 다만 관심은 있는데, 의지가 약해서 실천하지 못할 때 끌어주기 위해서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해요. 제가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치고,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조금 더 잘 따라와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다시한번’ 방송 이후로는 아이들이 저를 조금 더 반짝반짝 쳐다보면서 집중하고 있어요(웃음).

Q. 사회생활 하면서 거북이 지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A. 거북이 지이라고 얘기를 하면 “그래서 너 앞으로 뭐해” “앨범 언제 나와”라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그게 저한테는 부담이었어요. 거북이로서 아무것도 안 할 건데 물어보시니까, 그게 부담이었고 아픔이었어요.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말 한마다가 소중하고, 조심스러워요. 그 한마디가 잘못 전해지고 와전이 돼서 우리 아이에게 돌아갈까 겁이 나서 조심하면서 살고 있어요.

Q. 마케팅 회사도 다니고 DJ도 하고, 교수도 했습니다. 거북이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나요?

A. 제가 깜짝 놀란 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거예요. 돈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두려웠죠. 매니저도 없고, 같이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조차 없었거든요.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이게 될까 하고 무섭고 떨리는데 마음 굳게 먹고 오디션 봐서 뮤지컬도 했었거든요. 오디션 보니까, 되더라고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했는데 일이 들어오는 거예요. DJ를 할 수 있을까 했는데, 홍대에서도 하고 신촌에서도 했어요. 그때 ‘내가 마음먹으면 되는구나’, ‘의지만 있으면 되는구나’, ‘100번 자빠져도 101번째는 되는구나’라는 걸 그때 꺠달았어요. 마음 먹기가 힘든 거예요. 마음먹으면 되더라고요. 마음 먹고 기다리기만 하면 안돼요. 정말 집요해야 되고, 집중해야 되고 그 하나를 위해서 미친 듯이 파고드니까, 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하고 싶다고 결심을 하면 그때부터 집요하게 열심히 뛰어갔었던 건 같아요. 그래서 이걷저걷 열심히 했는데 그 여러개 중에 진정한 내 것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살았어요, 그 옛날에는 앨범활동을 하고, 거북이 활동을 하는 것 하나였거든요.

Q. 지이의 꿈은 뭔가요?

A. 박사과정 수료를 했으니까,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겠죠. 진정한 교수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뛰는 거고요. 그리고 제 아이가 예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내 아이가 내 인생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편안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예쁘게 키우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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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터틀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다음 생에 만난다면 착한 동생 되어 줄 테니까, 또 한번 만나자

Q,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정말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아요. 부산 4인방이라는 친구들을 비롯해 앞에 나서서 해주셨던 분들이 있어요. 아직까지도 좋아해주시면 너무 영광이죠. 그리고 제가 몰랐지만 저희를 좋아해주셨던 분들께도 감사하고 싶고요. 그 분들이 계셔서 방송에 나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돼서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세상 구경 다시 할 수 있게 됐어요. 너무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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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오랜 공백기를 깨고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그 공백기가 왜 생겼는지를 본인이 파악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게 나의 개인적인 아픔이었는지, 뭔가의 도전과 실패로 인한 어려움이었는지 파악하시면 다시한번 일어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 역시 그랬듯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한번은 있을 거예요. 그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는 것도 있지만 본인이 만들어나가는 것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들이 만드실 수 있다면 터닝포인트와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한번 도전하는 새로운 인생을 펼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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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coby1@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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