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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재벌총수에 돌아간 상금 1억…‘공정’ 논란 불 지핀 예술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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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회장 수상 도마 위에

미술계 “자격·업적 있는지 의문”

문단서도 “젊은 문인 지원 없어”

‘그들만의 리그’ 개혁·폐지 요구


한겨레

대한민국예술원 누리집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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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원로 예술가 지원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의 역할에 대해 문학계에서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문체부가 지난달 9일 상금 1억원을 주는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 수상자로 한미약품그룹 회장 송영숙씨를 선정한 것을 두고 미술계에서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창작자로서 수상할 만한 자격과 업적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지난달 9일 수상자 보도자료를 내면서 이력 소개란에서 그가 ‘1969년부터 작가로 작업하면서 52년간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왔으며 한국 최초 사진전문 미술관 관장으로서 사진예술의 대중화 및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송 회장은 지난해 남편 임성기 전 회장이 별세한 뒤 그룹 회장을 이어받았다. 지난 2003년 한미사진미술관을 세워 지금까지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사진계에 입지를 쌓았으며 제도권 사진가들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문체부는 보도자료에서 1969년 첫 개인전을 연 뒤로 올해 2월 신작전까지 국내외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취재한 미술계와 사진계 전문가들은 모두 송 회장이 52년간 전업작가로 일한 것이 아니며 사진계에 작업의 성취도, 양식 등의 측면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거나 지명도를 쌓았다고 볼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술평론가 ㅇ씨는 허탈감을 참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선정된 분이 사진작가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는 평을 들은 적도 없고 그를 모르는 미술인들도 많아요. 생계 못 잇는 청년 예술가들이 수두룩한데 어떻게 이런 심사를….” 익명을 요구한 한 사진사 연구자는 “송 회장이 60년대 후반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작업한 것은 사실이지만, 작업을 쉰 기간도 길었기 때문에 프로 전업작가로 보기 어렵다. 그동안 창작작가에게만 시상해온 예술원상 수상자로는 부적절하다”고 잘라 말했다. 1955년부터 지난해까지의 미술 분야 수상자들은 모두 화가나 공예가, 조각가 등의 창작작가들이었다. 소전 손재형(62년 7회), 월전 장우성(71년 16회), 천경자(79년 24회), 김기창(82년 27회), 서세옥(2007년 52회), 김창열(2017년 62회) 등이 역대 수상자들이다.

한미사진미술관 쪽은 “예술원 누리집에는 ‘국내 문화예술계 인사 중 예술에 관하여 우수한 연구, 작품제작 또는 현저한 공로가 있는 자에게 시상’한다는 내용이 있어 수상자격을 벗어나는 건 아니다. 예술원 회원에 사진가들이 없는 실정에서 저평가된 사진예술이 인정받은 결과로 본다”고 주장했다.

예술원 개혁 문제가 수면에 떠오른 건 소설가 이기호가 문예지 <악스트> 7·8월호에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보고서 형식을 띤 이 작품에서 이기호는 예술원 문학 분과 회원들이 대부분 대학교수 출신으로 연금을 받는 이들인데 월 180만원씩 정액수당을 받는 반면 젊은 문인들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며, 신입 회원 선출 과정에서 기존 회원들의 동의와 투표를 거쳐야 하는 구조 때문에 친소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문학 발전이나 청년 문인 지원을 위해 예술원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없다는 등의 비판을 제기했다. 이기호는 예술원 개혁과 예술원법 개정 등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직접 나서며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문단 동료들 역시 공감을 표하며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설가 이순원은 지난달 28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의욕을 꺾는” 예술원을 이참에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최근 예술원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소설가 김원우가 선정된 것과 관련해서도 비판 의견이 나왔다. 김원우의 친형인 소설가 김원일이 상을 선정하는 예술원 문학 분과 회원이라는 점 때문이다. 소설가 김도언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표로서 귀감이 되어야 할 문단 원로들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을 일을 아무렇게나 벌인다”고 개탄했다.

최근의 예술원 개혁 여론과 관련해 예술원 회장인 이근배 시인은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예술원은 예술원법에 규정된 국가 기관인 만큼 소속 회원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관을 비롯해 모든 사항을 국회에서 결정할 사항”이라며 “합리적인 문제 제기라면 환영하겠지만, 예술원이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예술계에서는 예술원상의 심사 과정을 전면 개혁하거나 아예 폐지해 청장년 예술가 지원을 위한 지원시상제도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후보자 선정 기준과 연령대, 자격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추천 과정과 심사 과정에 외부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노형석 최재봉 선임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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