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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불법촬영' 학교·법인 처벌, 법은 있는데…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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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처벌법 개정 오류로 양벌규정 무용지물

2013년부터 10년 가까이 법무·검찰 '수수방관'

학교·회사서 불법촬영, 구조적 책임은 못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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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기숙사와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해 학생과 직원 116명을 불법촬영한 교사'
'남녀공용 탈의실을 1년 6개월간 불법촬영한 맥도날드 직원'
'여자화장실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을 한 구청 직원'

학생, 직원 등을 대상으로 업무·생활 공간에서의 불법촬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학교와 법인 등에는 현행법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은 있는데 법개정 오류로 현재는 적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로 지적된다.

4일 CBS노컷뉴스 취재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7년간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책임이 있는 법인 처벌은 0건으로 나타났다. 매년 해당 죄로 검거되는 개인은 5000~7000명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2014년과 2016년, 2017년에 법인 책임이 적발된 사례가 있었지만 모두 '죄가 없음' 처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고 종결됐다. 법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한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51조의 양벌규정이 법개정 과정에서의 문제로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성폭력처벌법은 2010년 제정 당시부터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발생했을 때 범죄자 개인 뿐 아니라 법인이나 그 대표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었다.

제정 당시 제44조에 있었던 양벌규정은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제13조 또는 제43조의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科)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제13조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이고 제43조는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을 누설한 범죄 등에 대한 벌칙규정이었다. 해당 범죄들이 특정 법인의 업무와 관련해 벌어졌을 때, 법인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2013년 성폭력처벌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제14조로 변경됐고 제43조 벌칙조항은 제50조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양벌규정엔 그대로 '제13조 또는 제43조'로 남았다. 양벌규정 조항만 제44조에서 제51조로 자리를 바꾸고 내용은 손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현행법에서 문제의 양벌규정은 엉뚱하게도 통신매체이용음란죄(제13조)와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정보제출의무(제43조)에 대해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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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문제는 이같은 '법의 오류'가 한철 해프닝이 아니라 2013년 법개정 이후 현재까지 9년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사과정에서 법인 책임을 발견하고도 기소하지 못한 검사나 형사법제와 관련한 책임이 있는 법무부 모두 수수방관한 셈이다.

법무부는 2019년 말 국회에서 이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선을 위해 직접 나서진 않고 있다.

CBS노컷뉴스 취재에 대해 법무부는 "법률 개정으로 일부 조문의 위치가 변경됐으나 양벌규정을 종전과 동일한 조문번호로 규정해 일부 입법상 오류가 발견된다"면서도 "다만 현행 제13조(통신매체이용음란죄)에 대한 양벌규정은 법체계상 입법이 가능해 오류와는 무관하게 문언 그대로 현행 제13조에 대한 양벌규정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13조(통신매체이용음란죄)에 대해 수사기관이 법인의 책임을 물어 검거한 사건 역시 아직까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양벌규정이 제대로 있었다면 불법촬영 문제를 제대로 주의·감독하지 않은 학교법인이나 회사, 공공기관 등에도 구조적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입법 오류가 방치되면서 10년 가까이 개인 비위로만 다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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