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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4단계 장기화… "더는 버틸 수 없다" 옆집은 휴업, 앞집은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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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상권 곳곳에 '휴업·임대' 안내문 즐비
신촌·홍대·명동 등 자고 나면 임대 간판
"대출 갚을 길 없어… 폐업도 못 해요"
한국일보

코로나 19 4차 대유행에 따른 영업제한 강화로 자영업자의 생계 터전인 서울 주요 상권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가 건물 1층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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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후 7시쯤 식당 문을 닫았는데 명동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요. 집에 가는 길이 무서울 정도였어요."(명동 식당 운영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이 4주째로 접어들면서 서울 도심 상권에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1년 반째 이어지는 집합금지 및 영업제한 조치에 깊은 내상을 입은 자영업자들에게 지난달 시행된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는 버틸 의지를 꺾는 결정타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당초 이달 8일까지로 예정됐던 거리 두기 4단계 조치의 재연장이 확실시되면서 상권 붕괴가 한층 가속화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3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먹자골목. 직장인들이 몰리는 다른 상권과 달리 학생과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과 카페가 많아 낮 장사가 제법 되는 곳이지만, 거리는 '임대 문의' 문구나 폐업 안내문을 붙인 채 문을 닫은 가게들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건물 전체를 통째로 임대 내놓은 곳도 드물지 않았다.

폐업까진 아니더라도 운영시간을 대폭 줄이거나 휴업을 선택한 가게도 부쩍 늘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고민 끝에 운영시간을 조정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버티듯 장사해왔는데, 거리 두기 4단계 이후로는 저녁 손님이 완전히 끊겨 영업하는 게 큰 의미가 없더라"며 "4단계가 풀릴 때까지라도 문을 닫을까 했다가 (해제) 시기를 장담할 수 없어 그냥 가게 문을 계속 여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무너지는 도심 자영업 상권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도 건물당 최소 한 곳엔 임대를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임대 문의처가 적힌 안내지들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듯 빛이 바래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전철역 인근 유명 프랜차이즈 가게도 영업을 중단한 지 오래였다. 미술학원, 화방, 소규모 상점들이 모여 있던 골목들도 문을 닫았거나 문을 닫으려 철거 중인 점포들로 어수선했다.

홍익대 앞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성훈(31)씨는 "밤 10시까지 영업하고 있지만 많아야 두세 테이블 수준"이라며 "홀에서 식사하는 경우보다 배달 수요가 훨씬 많아 배달을 시작했는데 수수료와 포장비, 부가세 나가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최대 상권인 명동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매출 부진이 수개월째 이어지던 와중에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명동 메인 거리에 위치한 상점 200여 곳 가운데 이날 문을 연 곳은 50곳이 채 되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숙(61)씨는 "주변 매장이 죄다 문을 닫고, 문을 연 가게들도 영업시간을 줄이다 보니 손님 발길이 끊겼다"며 "코로나 전에는 100명도 넘던 점심 손님이 오늘은 10명이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명동의 부동산 중개업자는 "명동 상권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전 건물 공실률은 10%가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심한 경우 70%에 이른다"며 "이곳 부동산들이 하나둘 철수하는 분위기인데 이는 다른 가게들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본격적인 휴가철이 이어진 3일 서울 도심 곳곳 상점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로 인해 휴가 안내문이 아닌 휴업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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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권리금 생각하면… 폐업도 사치


코로나발 자영업계 위기는 업종을 가리지 않는 분위기다. 식당이나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휴대폰 판매점, 네일숍 등 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매장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더구나 10년 이상 운영해온 점포들도 임대료, 인건비 등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휴·폐업 도미노에 휩쓸리고 있다.

박대원 상가관리연구소장은 "이른바 '장수 업장'들까지 코로나 위기에 떠밀려 매물로 나오는 상황"이라며 "이런 가게들까지 무너지면서 공실률이 급격하게 늘었고, 이제는 오프라인 상권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8.9%로 직전 분기(8.8%)보다 높아졌다. 가장 높은 공실률을 보인 곳은 명동 상권으로 38.4%에 달한다.

자영업자 사이에선 "폐업도 사치"라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연합회 사무처장은 "폐업을 하려면 금융권 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데 자영업자들이 지난해부터 대출을 많이 받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와 신촌 등지에서 파티룸을 운영 중인 김모(35)씨는 "업장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매출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일단 두 곳을 폐업했다"며 "폐업을 하고 싶어도 계약기간과 권리금 문제가 걸려 있는 터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폐업 계획을 묻는 질문에 "점포를 원상 복구해놓을 비용이 없어서 폐업을 못 한다"고 자조적인 대답을 내놨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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