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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모가디슈’ 남북 동반탈출 진짜 주인공 “실제론 북 외교관도 태극기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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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성 전 소말리아 대사

“91년 내전때 한국관저서 함께 생활

탈출 도중 북 직원 1명 총 맞아 숨져

영화와 달리 전향 권유는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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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에서 한신성 대사를 연기한 김윤석(왼쪽 둘째). 강신성 전 소말리아 대사가 모델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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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도 모가디슈에서 극적으로 동반 탈출한 남북 외교관들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이들의 극적인 동반 탈출 비화는 1991년 1월 24일자 중앙일보의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강신성(84·사진) 전 주(駐) 소말리아 대사는 영화에서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한신성 대사’의 실제 모델이다. 강 전 대사는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30년 전을 생생히 기억했다.

1991년 1월 9일, 강 전 대사는 대사관 직원을 이끌고 모가디슈 공항으로 향했다. 구조기를 타고 소말리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모가디슈는 쑥대밭이었다. 하지만 구조기는 다른 나라 난민을 태우고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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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건을 특종 보도한 1991년 1월 24일자 중앙일보. [사진 중앙포토]


“그렇게 허탕을 치고 나서 우리 관저로 돌아가려다 생각하니까,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려나 궁금하더라고요. 물어봤더니 자기들은 공관에 못 돌아간대요. 무장강도가 벌써 8번이나 들이닥쳐서 돌아가봤자 죽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무작정 구조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더라고요.” 하지만 당시 모가디슈 공항은 정부군과 반군이 무력 충돌을 불사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내가 먼저 ‘우리 집(한국 대사관저)에 가자. 경찰 여섯 명이 지켜주고 있어서 안전하다’며 데려왔어요.”

강 전 대사는 남북이 함께 모여 먹었던 식사도 떠올렸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 관저로 오면서 자기들 공관 마당에 묻어놓았던 쌀, 채소 같은 부식을 다 들고 왔더라고요. ‘이걸로 한 끼 같이 먹자’면서. 그걸로 같이 저녁밥을 지어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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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남북이 각기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북측 인원을 거두는 게 두렵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며 “그냥 두면 죽지 않나. 어떻게든 함께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움을 청했다. ‘이틀 뒤 군용기가 올 예정이니 한국 측 공관원 7~8명만 먼저 타고 빠져나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강 대사는 다시 간청했다. “‘어떻게 내가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다 데려다 놓고 우리만 쏙 빠져나가냐.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죽으나 사나 같이 나가겠다고…. 안 되면 우리는 공관에 돌아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추가로 비행기를 확보해줬어요.”

다음 미션은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공관에서 남북 사람들이 6대 승용차에 나눠 탔다. 차로 10분 거리였지만, 남북 공관원이 탄 차량 행렬을 반군으로 오인한 정부군이 집중 사격을 했다. 운전을 하던 북측 직원 한 명이 가슴에 총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피를 흘리면서도 운전대를 놓지 않고 대사관까지 차를 몰았고, 도착 직후 숨을 거뒀다. 영화 속에서도 해당 장면이 그대로 재연됐다. 극적으로 왔지만 이번엔 이탈리아 대사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필사적으로 태극기를 흔들었죠. 북한 외교관들도 같이 태극기를 흔들었어요. 북한 사람 손에 태극기가 들린 거에요. 이념을 초월해서 서로 살아나가자는 것이죠.”(※영화에서 이 장면은 ‘백기’를 흔드는 것으로 처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을 실은 구조기는 모가디슈 공항에서 이륙, 2시간 만에 케냐 몸바사 공항에 도착했다. 긴박했던 3박 4일이었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북한 대사가 내게 왔어요. ‘너무나 고마웠다. 이제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케냐에 숙소도 있다고 했지만, 북측은 거절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요. 이들이 소말리아를 떠나서도 한국에 신세를 지면 평양에 돌아가서 아주 혼이 나겠구나. 그래서 나도 작별인사를 했죠.”

다만 강 전 대사는 영화가 일부 사실을 왜곡하는 등 과도한 각색이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태극기를 백기로 바꾼 것이나, 북측이 한국 측에 도움을 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장면 등이다. 강 전 대사는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건 한국이었다고 했다. 또 전향서를 위조하는 등 영화에선 안기부 등이 북측의 전향을 집요하게 압박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강 전 대사는 “전향 요구는 전혀 없었으며, 3박 4일 동안 이념 문제로 충돌하지 않았다”고 했다.

강 전 대사는 1997년 퇴직 후 동반 탈출기를 그린 소설 『탈출』을 펴냈다. 그는 “남북 관계가 좋아서 왕래가 허가됐으면, 벌써 평양 가서 찾아봤을 거예요”라고 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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