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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불법파견 노동자 자회사 채용’ 현대제철, 하청업체 15곳 계약 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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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 기다리던 노동자들 고용 불안 내몰려

전문가 “현대제철, 2심 판결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해”


한겨레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현대제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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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불법 파견했다가 2심 재판부에 의해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받고 자회사를 만들어 이들을 고용하기로 한 현대제철이 이 노동자들이 일하던 하청업체 15곳과의 계약을 이달 말까지 해지하기로 했다. 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자회사 고용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당장 다음달부터 직무전환 배치 등으로 인한 고용 불안에 처하게 됐다.

현대제철은 인천·포항·순천·당진공장과 도급계약을 맺고 있는 하청업체를 오는 9월까지 단계적으로 현대제철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계획에 따라 15개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오는 31일부로 종료한다고 3일 밝혔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하청업체 직원 상당수가 현대제철 자회사 채용에 지원해 현대제철이 이들 업체와 계약을 더 지속할 이유가 없다”며 “자회사에 지원하지 않은 하청업체 직원들은 다른 하청업체에 고용될 수 있도록 사업주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이 도급계약을 맺은 32개 업체 가운데 아직 현대제철 자회사로 편입되지 않은 17개 하청업체에 전환 배치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 10여년 동안 사내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을 파견 인력처럼 사용하다가 이들 3500여명이 사업장별로 청구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고용의사표시소송) 여러 건에 휘말렸다. 파견법은 사용자가 노동자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파견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허용 업종을 엄격히 제한하는데, 현대제철과 같은 제조업은 파견 금지 업종이다. 불법파견 사실이 적발된 사용자는 파견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

가장 먼저 소송을 진행한 현대제철 순천공장 비정규직 109명이 2019년 광주고등법원에서 현대제철의 직접고용 의무를 인정받았고 또 다른 순천공장 노동자 400여명과 당진공장 노동자 3000여명이 같은 취지의 소송을 각각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패소를 우려한 현대제철은 지난달 자회사를 세워 소송 취하자에 한해서만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회사 고용이 직접고용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노무 관리도 용이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꼼수’다.

이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던 노동자들은 파견법상 고용 의무를 끝까지 요구할지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 채용을 택할지 갈림길에 섰다. 자회사 직원이 되면 정규직 임금의 80%를 받는 대신 파견 노동자 지위를 포기해야 해 더 이상 본사에 고용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게다가 자회사라고 해도 여전히 본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는 하청업체인 만큼 본사의 계약 해지 결정에 따라 일감이 줄어들 위험도 있다.

반면 자회사 채용에 응하지 않는 이들은 소속 회사가 없어지면서 직무 전환 배치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아 고용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예를 들어 현대제철이 냉연 공정을 맡긴 사내 하청업체는 6개인데, 이 가운데 5개 업체가 새로 설립되는 자회사에 편입돼 실체가 없어진다. 냉연 공정 노동자가 자회사에 지원하지 않으면 나머지 1개 업체에 소속돼야 하는데 남은 인원이 모두 수용될지 불투명하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냉연 공정 노동자의 경우 관련 공정이 자회사로 편입되면 노동자가 자회사에 지원하지 않는 이상 그 공정에 계속 근무할 수 없다”며 “당진공장 내 다른 협력사로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게 업체 사업주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제철은 이 노동자들을 다른 지역의 사업장으로 전배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당진공장에서 계속 일하려면 직무를 바꿔야 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이강근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은 “지난해 현대제철이 열연 공정을 폐쇄하면서 다른 업체로 비정규직 100여명을 전환 배치했는데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수개월씩 대기하거나 새로 받은 직무에 적응을 못해 또다시 전환 배치되는 이들이 상당했다”며 “현장 노동자가 익숙지 않은 공정에 갑자기 투입되다 보니 현장에서 다칠 뻔한 일들이 있었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조합원이 고소 작업에 투입돼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지금은 공정이 폐쇄된 상황이 아니니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장(변호사)는 “현대제철이 내건 자회사 규모가 7천명에 달하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다른 업체들도 폐업할 것”이라며 전환 배치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비정규직 문제를 연구해 온 박은정 인제대 교수(공공인재학부)는 “2심 판결이 보여주듯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용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데 현대제철이 이를 어떻게든 피하려는 의지만 보이는 점이 안타깝다”며 “직접고용을 하되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정규직 노조와 적극적으로 논의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현대 계열 기업이 불법파견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따로 법인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현대위아도 지분 30%를 투자한 법인을 세워 하청 직원들에게 지원하도록 한 뒤 이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평택 공장에서 울산 공장으로 전보 보냈다. 지난 5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했다. 현대위아 노동자들은 지난달 ‘현대위아에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현대위아 쪽이 고용 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아직까지 출근을 못한 상태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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