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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못하고 부른..." 용기있는 고백... 쉽게 풀어 쓴 판소리 책, 프랑스에서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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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천의 대표 소리꾼, 김경아 명창

"판소리는 뛰어난 천재가 만들어 어느 날 세상에 내어놓은 예술이 아니다. 판소리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집단 창작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판소리는 우리 민초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들고, 가락 또한 정제되어 왔으며, 수많은 검증 속에서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판소리는 아직도 완성을 향해 가는 입고출신(入古出新), 더늠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내게 된 <춘향가> 창본(唱本) 역시 이전 명창의 소리를 이어받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판소리 전통의 한 마디다."|<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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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아 명창이 편저술한 창본들 ⓒ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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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김경아 명창은 두 권의 책을 펴냈다.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 누대에 걸쳐 소리꾼들에게 전수돼온 판소리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설(辭說)'의 오류를 바로 잡고, 수많은 한시와 고사성어 등 어려운 이야기를 가급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 책이다. 때로는 사라진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내느라 몇 개월 동안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5년에 걸친 고단한 작업이었다.

김 명창의 이같은 노력은 들인 품에 비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는 '앞으로 판소리(창)를 배울 후배들에게 좀더 쉽고 정확한 창본을 건넸다'는 데 의미를 뒀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면 더 좋겠지만,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그게 이 사설을 처음 시작한 조선후기 8대 명창의 한 사람인 김세종 명창의 뜻을 더욱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김 명창의 이러한 노력을 프랑스에서 알아봤다. 어느 날 모르는 이가 카카오톡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프랑스에서 판소리를 공부하는 사람인데, 김 명창의 책을 프랑스에서 번역·출간하고 싶다고. 출판사는 2019년 '한불문화상'을 받은, 30종이 넘는 한국문화 시리즈 책을 펴낸 '이마고(Editions Imago)'였다. 지난해 12월 <강산제 심청가> 출판 계약을 맺었고, 현재 번역중이다. 이어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도 펴내기로 했다.

김 명창은 어릴 때부터 노래에 타고난 소질을 보였지만, 판소리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운 '늦깎이'다. 서울국악예술고와 단국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만난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故 성우향 명창이 그의 스승이다. 동편제에 속하는 '김세종제 춘향가'도 스승인 성우향 명창의 맥을 이은 것이다. 이전에도 많은 상을 받았지만, 2016년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명창' 반열에 올랐다.

대학 졸업 후 인천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에게 인천은 제2의 고향이다.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와 (사)우리소리를 설립하고, 20년 이상 인천에서 판소리를 알리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천의 대표적인 소리꾼인 김 명창은 지난 6월에는 인천학산소극장에서 '판소리 인문학, 춘향가 완청(完聽)' 공연을 가졌다. 7월 1일에는 인천시 주최로 열린 '인천 독립 40주년 기념식'에 초대돼 세계속의 인천이란 의미에서 '배 띄워라' 노래를 불렀다.

"제2의 고향인 인천에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작은 언플러그드(unplugged) 극장을 만들어서 자주 공연을 하고 싶다는 거다. 일본에 가면 1년 내내 가부키 하는 극장이 있지 않나. 중국에 가도 1년 내내 경극을 하는 극장이 있고. 인천은 국제적인 허브도시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이곳에 소극장을 만들어서 매일 우리 전통문화 공연을 해보는 게 내 소망이다."

김경아 명창과의 인터뷰는 7월 2일 오후 인천에 있는 (사)우리소리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김 명창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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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리소리에서 소리 연습을 하고 있는 김경아 명창.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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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라고 하는데, '소리'와 '노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소리가 노래보다 큰 개념이다. 노래는 소리의 일부다. 판소리는 창(소리), 아니리, 발림으로 구성돼 있다. '창'은 일정한 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것, '아니리'는 판소리 사설에서 음률이나 장단에 따르지 않고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것, '발림'은 창을 하는 이가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손·발·온몸을 움직여 소리나 이야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을 뜻한다. '창'에서는 노래 뿐만이 아니라 새 소리나 호랑이 소리 등도 낸다."

-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운 건 서울국악예고에 들어가면서부터라고 들었는데.

"제가 어릴 적 아버지가 월부로 전축을 사와서 이미자의 노래나 판소리를 즐겨 들으셨다. 그걸 듣고 자라다보니 어릴 때부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따라 불렀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르다보니, 노래에 소질이 있다며 동네 가수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선생님들은 제가 '트로트 가수'가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거의 매일 교실과 교무실에 불려다니면서 김연자의 '수은등',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다녔으니까."

- 판소리는 대개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데, 중3 때면 많이 늦지 않았나.

"그래서 많이 고생했다. 변성기 전에 (판소리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판소리 목이 되는데 변성기 후에 하면 굉장히 어렵다. 저는 변성기가 지나고나서 시작했다. 국악예고에 입학하고 기가 많이 죽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동네 가수였고, 학교에서 노래로 1등을 했는데, 여기 와보니 조무래기였다. 그래서 고교와 대학교 다닐 때 '연습벌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 격차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언제 들었나.

"고등학생 때 소리를 배우러 갔을 때 선생님(故 성우향 명창,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께서 '쓰것다'라고 하셨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 잘 소화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저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풍부했다. 악기는 타고 났고, 성실하게 연습했기에 자신이 있었다."

- 대학(단국대 음대 국악과)을 졸업한 뒤에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고 들었는데.

"대학생 때 인천민예총 풍물팀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그 인연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에 인천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 비해서 방값도 쌌고. 그 이후 인천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살다보니 어느새 24년쯤 됐다. 지금은 인천이 내 고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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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26일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24회 임방울국악제 전국대회 본선 시상’에서 판소리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을 김경아씨에게 시상하고 있다. ⓒ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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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공(獨功). 판소리 가객들이 득음(得音)을 하기 위해 토굴 또는 폭포 앞에서 하는 발성 훈련을 뜻한다. 김 명창은 '산(山)공부'라고 부른다. 스승 성우향 명창이 살아계셨을 때 그는 매년 여름 한 달 가량 스승을 따라 산공부에 나섰다. 세상 소식과 단절된 공간에 머물며 새벽 5시에 일어나 목 풀고, 밥 먹고, 소리 하고, 밤 늦게까지 이를 반복하다 잠 들고. 스승이 돌아가신 뒤에는 몇 년 동안 혼자 산공부를 하러 다녔다는 그는 "산공부에 중독됐다"고 말한다.

- 소리는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텐데.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3시간27분에 주파했다는 건 사실인가.

"저는 어느 하나에 빠지면 몰두하는 성격이다. 10차례 이상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상도 받았다. 보스턴마라톤 참가 자격을 얻으려면 30대 여자는 3시간30분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데, 그 기준 안에 든 거죠. 가보진 못했지만, 기록상으로는 출전 자격을 얻었다. 마라톤을 4, 5년 정도 했는데 제게는 과격한 운동이라서 그만 뒀다.

그 후로 요가를 시작해 지금까지 13년째 하고 있다. 30대 초반에 몸이 붓는 병을 앓았다. 한 달에 2kg씩 몇 달 새 10kg이 찌니까 외출하려고 신발을 신어도 안 들어가고, 공연하려고 하면 한복이 안 맞았다.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직업인데, 내가 나를 보면 짜증만 났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고. 신체 리듬이 깨지니까 정신도 같이 무너지더라. 우을증도 찾아왔고, 죽을 생각만 할 정도로 비관했다."

- 어떻게 건강을 회복했나.

"2년쯤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처음에는 운동량을 늘려보기도 했는데 더 나빠졌다. 누가 요가를 추천해줘서 다녔다. 치료 목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남과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극복해나가는 거였고, 일종의 수련이다보니 나한테 맞았다. '딱 1년만 하루도 빠지지 말고 해보자'고 결심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됐다. 13년째 하다보니 완전히 몸에 뱄다. 예전에 비하면 건강이 많이 좋아졌지만, 완전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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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인천 독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세계 속의 인천이란 의미에서 '배 띄워라'를 부른 김경아 명창.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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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인천 독립 40주년 기념식' 때 세계 속의 인천이란 의미에서 '배 띄워라'를 독창했고, 이연성 성악가와 콜라보로 '아름다운 나라'를 불렀는데. 직접 노래를 골랐나.

"제가 노래를 골랐다. 인천 앞바다 서해는 북한과 바다로 맞닿아 있다. 가사를 보면,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강 건너에 있는 벗님도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같이 가자는 내용이다. '띄운다'는 건, 또 다른 출발을 뜻하기도 하고."
배 띄워라 /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동서남북 바람 불제 / 언제나 기다리나 / 술 익고 달이 뜨니 / 이때가 아니 드냐 // 배 띄워라 /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바람이 안 불면 노를 젓고 / 바람이 불면 돛을 올려라 / 강 건너 벗님네들 / 앉아서 기다리랴 / 그립고 / 서럽다고 울지를 마랴 / 얼씨구 // 배 띄워라 /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배 띄워라 / 배 띄워라|<배 띄워라> 가사

"판소리는 전승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혹은 소리꾼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섬진강 줄기를 기준으로 동쪽 지방에서 불린 동편제(東便制)와 서쪽 지방에서 불린 서편제(西便制)로 대별된다. 동편제가 대마디 대장단의 선이 굵은 소리라면, 서편제는 섬세함과 기교를 갖춘 소리로 특징을 짓기도 한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크게 보아 동편제에 속하는 소리로 볼 수 있는데, 조선 후기 8대 명창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김세종에 의해 전승돼 온 소리다.

김세종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가 고창에서 소리꾼들을 모아 교육할 때 소리 선생으로 판소리를 지도한 소리꾼이자 이론가였으며, 최초의 여성 소리꾼 진채선을 경회루 낙성연에서 출연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김세종의 춘향가는 흥선대원군이 특별히 총애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전에서 펼쳐지는 춘향가는 정제된 선율과 표현, 문학적 우수성으로 인하여 양반들조차 애호하고 향유할 정도의 예술적 깊이를 갖는 판소리로 꼽힌다. 이러한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찬업, 정응민을 거쳐 나의 스승 성우향으로 이어져 왔다."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서문)

- 2년 전인 2019년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를 범우사에서 펴냈는데.

"김세종제 판소리는 정통 동편제다. 이에 반해 동초제(東超制)는 동초 김연수 명창(1907∼1974)께서 만든 건데, 관객들이 좀더 쉽게 이해하고 들을 수 있도록 풀어서 썼다. 그러다보니 판소리 시간은 더 길어졌다."

김 명창은 예전 언론 인터뷰에서 "소리꾼으로 살아오면서도 제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른 적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판소리 사설이라는 게 본시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을 훗날 누군가 받아 써 창본(唱本·노래 책)으로 엮어진 것들이라, 오·탈자는 차치하고 역사적 사실관계가 아예 틀린 것도 부지기수거든요. 그것이 오랜 세월 굳어지고 정형화되어 스승의 입을 통해 축자적(逐字的)으로 대물림되어 왔던 거죠.

대개의 구전이 문자화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사본들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판소리도 그 대표적 특성 중 하나인 '더늠'(制, 판소리 명창들에 의해 노랫말과 소리가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다듬어져 이뤄진 판소리 대목)으로 인해 지역적 특성과 정서가 새로이 가미되고, 그것을 전수받은 소리꾼의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사설과 장단이 부분부분 윤색되고 변형되면서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판본'들이 파생되곤 했지요." (<유사랑의 인천인 列傳> 중에서, 2000년 12월 6일)

- 판소리 사설(辭說)의 오류를 찾아서 바로 잡는 과정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저는 숟가락만 얹었다. 제가 (판소리 사설을) 처음부터 쓴 게 아니지 않나. 확인해보니 잘못 쓰여진 부분이 적지 않았다. <강산제 심청가> 뒷부분에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를 썼다. 유관순의 오빠 이름도 틀리고, 역사적인 날짜 기록도 틀리고, 앞뒤가 뒤죽박죽인 경우도 있었다. 창피한 일이다. 그걸 그대로 부르는 게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책 작업을 하게 됐다.)

물론 제가 정리한 내용 가운데서도 또 틀린 게 나올 거다.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문학적인 가치도 뛰어나다. 그래서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하다보니 의미가 다르게 부르게 된다. 뜻을 알게 되면 내용 전달을 훨씬 잘할 수 있다.

어려운 한자라고 해도 내가 뜻을 정확히 알면 공연할 때 몸짓으로도 보여줄 수 있다. 저도 틀리게 배운 대목을 지금까지 수만 번 불러왔는데, 이걸 고치려면 또 그만큼 불러서 입에 자연스럽게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 책을 출판한 뒤 완창을 해야 하는데,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아 미치는 줄 알았다. 몰입해야 하는데 몰입이 잘 안 되는. 그래서 제가 고쳐놓고도 가끔씩은 옛날 걸로 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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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아의 강산제 심청가 포스터 ⓒ 김경아



- 명창 선생님께 배운 내용과는 달라지는 부분이 많아졌을텐데.

"심청이가 팔려 나갈 때 '해당화가 떨어져서 옛날에 한무제 때 수양공주가 치장하려고 꽃을 올렸었는데' 그런 표현이 사설 안에 있는데, 확인해보니 그게 한무제가 아니라 송나라 때 일인 거였다. 선생님께는 차마 말씀을 못 드렸다. 선생님 앞에서는 한무제라고 하고, 밖에서는 송무제라고 하기도 했다. 내용 수정을 못 마땅해하신 선생님도 계셔서 난처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확인된 사실관계는 바로 잡고, 한자는 한글로 순화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 책을 펴낸 뒤 <춘향가>와 <심청가>의 내용이 훨씬 깊게 다가오지 않았나.

"맞다. 모르거나 이상한 건 제가 직접 찾아보면서 틀린 내용을 바로 잡았다.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건 심지어 중국 사전까지 찾아서 확인하려고 했다. 책을 펴내면서 내용이 더 명확하게 다가오니까 완창이나 소리 공연할 때 더 디테일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긴 공연일 경우에는 예전에 소리 공부한 게 각인돼 있어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 앞으로 판소리를 할 사람들은 처음부터 수정된 내용으로 배우면 헷갈리지 않겠다.

"그것 때문에 책을 펴낸 거다. 제 제자들은 수정된 내용으로 배우니 저처럼 헷갈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 스승인 성우향 선생님께 배운 제자 분들에게는 바른 내용으로 소리를 해보자고 책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 김 명창이 펴낸 <춘향가>와 <심청가>를 프랑스에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난해 12월에 <강산제 심청가>는 출판 계약을 했다. 지금 번역 중이다. 출판사는 이마고(IMAGO). <강산제 심청가>를 먼저 출간하고, 그 다음에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를 내기로 했다."

- 프랑스에서의 출간 제의는 어떻게 받았나.

"어느 날 카카오톡 전화로 프랑스에서 연락이 왔다. 제 전화번호를 어렵게 찾았다면서 '프랑스에서 판소리를 공부하는 사람인데, 여러가지 책(창본)을 많이 봤는데 김 선생님 책이 가장 정확하다. 프랑스에서 번역·출간하고 싶은데 진행을 허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국 여자 분이었다. 저로서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이마고 출판사(Editions Imago)'는 지난 2019년 6월 13일 프랑스에 한국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데 공헌한 사람과 기관에 주는 '한불문화상'을 받았다. 이마고는 2004년 한국문학 번역총서 '한국의 장면'을 프랑스에서 발간한 뒤 30종이 넘는 한국문학 시리즈를 펴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마고 출판사는 소설가 이상의 작품집, 현길언의 <비정한 도시>,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김지하의 <똥딱기 똥딱> 등 근현대 작품은 물론 <숙영낭자전>, <금오신화> 등 고전소설과 무속신앙 관련서적을 번역 출간하면서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려왔다. 2010년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판소리 <사천가>의 대본 불어 완역집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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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아 명창이 받은 프랑스 출판사 '이마고(Editions Imago)'의 계약서. ⓒ 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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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초창기에 너무 오만해서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건 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을텐데(웃음). 무슨 일이건 간에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서. 초기에는 후회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태어나서 가장 잘 선택한 게 소리였다고 생각한다. 소리는 제 인생이다. 저(의 소리) 때문에 행복해하고 감동 받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제가 더 고맙죠."

- 현재 가장 주력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난해에 비해서는 활동이 좀더 많아졌다. 몇 년 전부터 퓨전과 크로스오버(crossover)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고가 만나서 함께 하면 크로스오버가 되는 것이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나서 하면 퓨전인데 저는 아직까지 전통을 뛰어넘는 퓨전은 본 적이 없다. 크로스오버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더 훌륭한 음악이 나올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가 영상으로 만든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에 등장한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는 소리와 춤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이전에는 이희문이 주도하는 '씽씽밴드'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둘 다 국악 베이스인데, 이런 시도를 어떻게 보는가.

"아주 좋다. 그게 왜 훌륭하고 좋으냐 하면 판소리가 그만큼 열려있다는 걸 보여주니까. 표현력도 강하고. 그래서 판소리에 수영복을 입혀도 어울리고, 서양 드레스를 입혀도 예쁘고, 한복을 입혀도 예쁘다. 새롭게 만든 게 아니다. 판소리는 판소리대로 불렀을 뿐이고, 프로듀싱을 그렇게 한 거다. 뭘 입혀도 다 어울리니까 프로듀싱에서도 성공하는 거다. 저는 요즘 재즈랑 크로스오버하려고 연습하고 있다."

- 앞으로 이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나 소망이 있다면.

"인천은 제게 제2의 고향이다. 그런데 공연을 하려고 해도 극장이 없다. 수천 석 짜리 인천아트센터가 있어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큰 극장을 만들면서 옆에다 150석짜리 언플러그드 극장을 왜 하나 못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도 작은 극장이 많아져야 한다.

인천에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작은 언플러그드(unplugged) 극장을 만들어서 자주 공연을 하고 싶다는 거다. 일본에 가면 1년 내내 가부키 하는 극장이 있지 않나. 중국에 가도 1년 내내 경극을 하는 극장이 있고. 인천은 국제적인 허브도시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이곳에 소극장을 만들어서 매일 우리 전통문화 공연을 해보는 게 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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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인천 독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세계 속의 인천이란 의미에서 '배 띄워라'를 부른 김경아 명창.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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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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