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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당근마켓의 성공, 평판의 힘 [박희준의 플랫포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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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펴보고, 플랫폼 기반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본다.

한국일보

당근마켓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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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에 지하철역 개표구 주변에서 쇼핑백을 들고 멋쩍은 표정으로 서성이는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성이던 이들은 누군가를 만나 쇼핑백을 건네주고 현금을 건네받고는 간단한 눈인사만 나눈 채 사라진다. 영화에서 접했던 마약 거래의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실은 가족들이 당근마켓에서 판매하거나 구매한 물건을 퇴근길에 건네주고 건네받기 위한 직장인들이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와 거래를 하다 보니 남성들이 주로 가족과 지인을 대신해서 물건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당근마켓은 지역 기반의 중고물품 직거래 플랫폼이다. 사용자들은 위성항법시스템으로 거주지의 위치를 인증받고 회원 가입을 한 후에, 등록한 거주지로부터 6킬로미터 반경 이내에서 중고물품을 직거래할 수 있다. 재화의 유휴 기간을 최소화하고 잔존 가치가 소멸한 재화의 수명을 연장시킴으로써 소유 경제의 비효율성을 낮추고자 하는 협력적 소비의 노력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삶과 어우러지면서 당근마켓의 주간 이용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유휴 자원의 활용도를 높여 불경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현상은 상품 시장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직장인은 퇴근길에 스마트폰을 들고 귀가 동선을 고민하다가 한 음식점에 들렀다. 퇴근 후 지인들과의 식사 약속 때문이 아니다. 귀갓길에 음식 배달을 위해 음식을 픽업하려고 들른 것이다. 음식배달업체 쿠팡이츠에 배달파트너로 등록된 라이더들은 오토바이가 아닌 개인 차량, 자전거 또는 킥보드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여가 시간을 이용해 음식을 배달하며 부수입을 얻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풍속도다. 일부는 건강을 위해 도보로 퇴근하며 음식을 배달하기도 한다. 운동과 함께 수입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당근마켓 사용자들이 거래 이후 앱에 남기는 그들의 경험은 다른 사용자들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상품 상태가 설명과 같은지, 가격은 저렴한지, 거래 과정에서의 응대는 신속하고 친절했는지, 약속 시간은 잘 지켰는지 등 판매자와 구매자의 태도는 상대에 의해 평가되고 점수화되어 사용자의 평판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구매 전에 판매자의 판매 이력과 함께 평판을 살펴본다. 물론 평판시스템에도 오류는 존재한다. 2016년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평소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유지했던 40대 후반의 우버 기사가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해 총으로 6명을 살해하고 2명을 중태에 빠뜨리면서 평판시스템의 신뢰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이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외울 수 있는 대상은 500명 정도지만, 의미 있는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대상은 150명을 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물리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제한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 간의 직접 경험을 통해 삶을 영위했던 시대와는 달리,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장과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관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상호 간의 직접 경험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플랫폼 시대의 화폐는 평판이 될지도 모른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만들어진 이력과 그 이력에 대한 대중의 견해가 기록된 평판카드는 신용카드의 역할 일부를 대체할 것이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디지털 공간에 남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높은 수준의 긴장 상태를 늘 유지하면서 평판 관리에 힘써야 한다.

한국일보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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