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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서초포럼] 언론중재법 개정안 재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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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최근 국회 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정치적 논쟁 대신 개정안의 법리적 문제점을 살펴보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우선 징벌적손해배상 문제. 영미법계에서 판례를 통해 인정되는 징벌적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은 우리나라에서는 민법상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배상형태다. 우리 법원은 "가해자에게 특히 고의 등의 주관적인 악(惡)사정이 있는 경우에 보상적 손해배상에 덧붙여 위법행위에 대한 징벌과 동종 행위의 억지를 주목적으로 하여 과하여지는 손해배상으로서 보통법(common law)상 인정되고 있는 구제 방법의 일종"이라면서 "이는 불법행위의 효과로 손해의 전보만을 인정하는 우리의 민사법 체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하는 형벌적 성질을 갖는 배상형태"라고 풀이한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형사처벌하는 우리나라에서 형벌적 성격을 갖는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나 다름없다. 언론 관련 소송에서 개별법을 통해 징벌적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것 역시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는 게 국회입법조사처의 의견이다.

미국에서도 과도한 손해배상액 등에 대한 통제 등 징벌적손해배상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하다. 미국의 언론 전문가들은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언론 상대 소송에서 징벌적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주도 있다. 거액의 손해배상 가능성은 활발한 공적 토론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는 만큼 반론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언론 자유와 조화를 이루는 방안이라는 의견도 참고할 만하다.

손해배상액 산정 시 언론사의 매출액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도 소득에 따른 차등벌금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체계와 조화되지 않는다. 고의나 중과실 여부 등 행위의 중대성, 피해의 정도, 사과 혹은 정정 보도를 비롯한 보도 후 정황 등은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액 산정 시 고려요소가 될 수 있어도 언론사의 매출액은 아무 관련이 없다.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추정 역시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입증책임의 대원칙을 무시하는 조항이다. 가짜뉴스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은 정당하지만 수단은 그 목적 달성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법의 일반적 체계를 무시하고 언론을 손봐주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입법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특히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한 경우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이 추정되도록 한 규정은 유치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최근 아무 관련 없는 기사에서 조국 전 장관 가족을 연상케 하는 그래픽을 사용한 특정 언론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법률상으로도 고의·중과실 여부가 인정될 수 있는 사안을 개정법에 넣은 것은 보편·타당한 입법권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 언론사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커도 마찬가지다.

법률은 개정할 수 있고, 법률이 터 잡은 사회환경이 변하면 법률도 바꾸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개정을 추진하는 세력의 정치적 명분이 부합하는 가운데 법리적 적합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필요성과 명분이 아무리 중요해도 조악한 법을 만들면 법 개정 필요성과 명분도 훼손되기 마련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하려는 여당의 정치적 명분과 숨은 의도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 의견이 개진된 바 있다. 앞서 본 대로 법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개정안이다. 국회는 입법자로 불린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재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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