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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원순 유족 역공에… “가해자 죽어도 끝까지 수사를” 요구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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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작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사건을 접수하고도 박 전 시장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수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 1년여 시간이 흐른 최근, 박 전 시장 유족 측이 반격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추진하고, “우리나라의 그 어떤 남성도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젠더감수성을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러한 역공이 ‘극단적 선택을 이유로 제때에 제대로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성폭력 가해자가 사망했더라도 끝까지 수사해 진실을 파헤칠 것을 촉구하는 움직임과 목소리가 최근 서울과 울산에서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수사기관 입증 안해주면 2차 피해에 속수무책”

지난 5월 서울의 한 로펌 대표 변호사 A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작년 3~6월 자기 로펌 소속 여성 변호사 B씨를 총 10회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된 상태였고,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경찰은 ‘공소권 없음’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이 사건 속 피해자 B씨의 변호를 맡은 이은의 변호사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관행을 때렸다. 경찰의 사건 처리 결과에 대해, 검찰에 ‘이의절차’를 제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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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변호사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본인의 법률사무소에서 로펌 대표변호사의 초임변호사 성폭행 사건 피의자 사망에 따른 경찰 측 불송치 결정문과 관련해 피해자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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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 피의자가 숨졌을 때 성범죄 피해가 존재했음을 수사기관에서 확인해주지 않는 현 상황에선 피해자들이 일상에서 2차 피해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 사실이 수사기관을 통해입증되지 않으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공격이 난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수사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피해자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전제”라고 했다.

비슷한 사건은 울산에서도 있었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 장애인 학교장 C씨가 장애 학생을 1년여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 의뢰됐지만, C씨의 극단적 선택과 함께 수사가 중단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피해 사실이 없는지를 투명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면밀히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울산시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는 “이번 사건으로 울산의 발달장애인 인권 상황과 수준에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감출 수 없다”며 “해당 학교장과 특수관계 및 단체를 배제해 투명하고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전수 조사를 맡아 진상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울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명망있는 활동을 했던 활동가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라 더욱 충격이 크고 비참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해 밝혀지면 피해자에 대한 오해·편견 해소”

이러한 요구의 배경에 최근 벌어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과 그 지지자들의 역공이 있다. 유족 측은 최근 일부 언론을 상대로 사자명예훼손 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인권위를 상대로도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박 전 시장이 성희롱을 했다고 판단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였다. 박 전 시장을 ‘국내에서 젠더 감수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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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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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대표 성폭행 사건의 이 변호사도 ‘박 전 시장 극단선택 이후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가 벌어지는 상황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조선닷컴 질문에 “그 사건과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고의로 사망을 선택한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2차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수사기관이 결과를 밝혀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경찰수사규칙 제108조를 보면,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고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하게 돼 있다. 검찰도 조사받던 피의자가 숨지면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5조에 따라 불기소 결정한다. 공소권 없음은 불기소 처분 중 하나다.

현재 국회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법안이 올라와 있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 등은 박 전 시장 사건 이후인 작년 7월 14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고소가 있은 후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가 자살 등을 원인으로 사망했을 때, 공소권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고소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고소사건이 처리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양 의원 등은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고소했음에도 피의자가 자살해 사건이 종결되면, 성범죄 사건의 진실이 묻힐 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의혹제기 등 2차 가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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