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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반역자""국가망신"…은메달 따고도 눈물 사죄한 中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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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팀을 망쳤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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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도쿄올림픽 탁구 혼합복식에서 일본에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건 쉬신 선수(왼쪽)와 리우 시웬 선수.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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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도쿄올림픽 탁구 혼합복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중국의 류스원(30) 선수가 시상식 후 전한 소감이다. 그는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에 머문 것을 자책하며 눈물로 사과했다. 그가 일본 선수에게 진 것을 두고 일부 중국 네티즌은 “국가에 먹칠을 했다” “배신자”라는 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2일(현지시간) BBC 방송은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중국 선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우승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과잉 애국주의’를 조명했다. 이에 따르면 일부 중국 네티즌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자국선수들을 ‘반 애국자’로 치부하며 거센 공격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일본 미즈타니 준(水谷隼) 선수에게도 “죽어라”, “꺼져버려”등의 악플을 쏟아낸다.

승패만이 문제가 아니다. 사격 선수 양첸(21)은 금메달을 따고도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불매 운동 중인 나이키 제품 사진을 SNS에 올렸던 일이 다시 문제가 됐다. 나이키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문제삼아 신장 지역 면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네티즌들은 중국을 대표하는 운동 선수로서 나이키 불매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양첸에게 훈계했다. 이 밖에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진 배드민턴 남자 복식팀,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결선 진출에 실패한 왕루야오(23)도 공격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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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10m 공기소총 결선에서 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중국 양첸이 극적인 승리에 놀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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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심각해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올림픽위원회(JOC)은 선수에 대한 비방·악플 사례에 대해 법적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시진핑의 '중화패권'이 부채질한 '소분홍 세대'



BBC는 “과잉 민족주의 열풍이 중국 전역을 휩쓸면서 올림픽 메달은 스포츠인의 영광 그 이상이 됐다”면서 “이런 분노의 중심에 ‘소분홍 (小粉紅, little pink) 세대’가 있다”고 전했다. 소분홍 세대는 중화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2030 젊은 과잉 민족주의자를 일컫는다. 고학력자가 많고 한류에도 익숙한 이들은 국가와 민족에 팬덤 성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이들에게 올림픽 메달을 놓치는 것은 ‘반역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아시아센터 소장인 플로리안 슈나이더 박사는 “이 사람들에게 올림픽 메달 순위는 국가의 자존심이자 실시간 국가 순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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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과 거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즐겨 입던 인민복 차림으로 연설하고 있다. [호주 ABC NEW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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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달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에서 ‘중화 패권 사상’을 피력하는 등 중국 당국이 소분홍 세대를 부추긴다는 시각도 있다. 슈나이더 박사는 “공산당이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중들은 국가의 성공에만 눈이 멀었고, 도쿄올림픽 출전 선수들도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과잉 애국주의가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선 자국 선수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지만 이에 대해 ‘비합리적’이라는 반성이 나오는 등 과열된 애국주의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주립대학의 조나단 하시드 정치학 박사는“공산당은 중화 패권을 위해 과잉 애국주의를 이용했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면 오히려 국가 통제가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민족주의 정서를 악용하는 것은 호랑이를 타는 것과 같다. 한 번 타면 통제하기도 어렵고 내리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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