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잠자는 여우·개·고양이·사람·호저 표적…단열과 포식자 퇴치 목적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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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을 뽑기 위해 잠자는 여우 등에 내려앉은 댕기박새. 털 훔치기는 새들의 알려지지 않은 행동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텍사스 뒷마당의 야생동물’ 유튜브 영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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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는 둥지를 만들 때 주변에서 쓸만한 재료가 눈에 띄면 플라스틱 끈이든 담배꽁초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박새류는 한 걸음 나아가 여우와 너구리는 물론 사람이나 호저 등 포유류의 털을 뽑아 둥지의 마감재로 쓰는 것으로 밝혀졌다.
댄 밸러드와 제인 헌터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2만㎡ 넓이의 숲이 딸린 집에 사는 아마추어 야생동물 애호가다. 그는 이 거대한 ‘뒷마당’에 50대의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야생동물의 다양한 모습을
‘텍사스 뒷마당의 야생동물’이란 이름으로 유튜브에 공개한다.
지난 3월 밸러드의 카메라에는 흥미로운 광경이 찍혔다. 굴 밖에 나온 여우 한 마리가 봄볕을 쬐며 졸고 있는데 미국 특산 박새류인 댕기박새 한 마리가 등이나 배를 쪼며 괴롭히는 모습이었다. 여우는 그때마다 새를 쫓아냈지만 박새는 끈질기게 다가와 쪼아댔다.
밸러드는 “박새는 마치 ‘여름이 오면 필요 없게 될 털 좀 나눠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얘기가 통했는지 조금 지나자 여우도 새를 내버려 두었고 박새는 여우 털 한 움큼 입에 물고 사라졌다. 밸러드는 “박새는 이후 매일 여우굴에 와 털을 뜯어 갔는데 둥지의 단열성을 높이기 위한 마감재로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생물학자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고 연구에 나섰다. 이 대학 마크 하우버 교수(진화·생태·행동학)는 “포유류 털을 가져와 둥지를 짓는 새들은 죽은 동물이나 떨어진 털을 주워 오는 것으로 흔히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우리가 본 것은 댕기박새가 살아있는 미국너구리의 털을 잡아뽑는 모습이었고 너구리는 개의치 않고 잠을 계속 잤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우리가 몰랐던 새들의 새로운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자료조사에 나섰다. 9건의 기존 연구결과가 있었지만 놀랍게도 탐조가들이 이런 행동을 담은 영상은 훨씬 많았다.
털 훔치기 행동의 주인공은 대부분 댕기박새나 검은머리박새였고 그 대상은 고양이, 개, 사람, 미국너구리 그리고 호저 등 다양했으며 자는 동안 털을 뜯기는 일이 많았지만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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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고유종인 댕기박새. 포유류 털 훔치는 행동을 자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슬린 앤더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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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댕기박새는 왜 수많은 재료 가운데 유독 포유류의 털에 집착하는 걸까. 털을 훔치다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털에 무슨 중요한 기능이라고 있는 걸까.
헨리 폴록 이 대학 박사과정생은 “털의 기능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온대기후 지역에 서식하는 새들에 이런 행동이 흔한 것으로 보아 둥지의 보온이 주목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털을 얻을 때 겪는 위험보다 새끼를 잘 길러내는 이득이 커 진화한 행동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이득이 있을 수도 있다. 포유류의 냄새가 나는 털로 둥지를 마감하면 뱀이나 다른 새 등 천적을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제프리 브라운 교수는 “댕기박새와 마찬가지로 나무구멍 등에 둥지를 트는 큰뿔솔딱새도 천적을 막기 위해 둥지에 뱀의 허물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멍 둥지의 취약점인 기생충을 막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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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 서식하는 검은머리박새. 나무구멍 등에 둥지를 박새류에서 포유류 털을 훔치는 행동이 나타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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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록은 “이번 연구는 동물의 행동 가운데 흥미롭지만 종종 간과된 것들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며 “그런 점에서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아마추어 자연연구자들이 생태계를 비밀을 밝히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생태학’ 최근호에 실렸다.
인용 논문: Ecology, DOI: 10.1002/ecy.350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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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여우·개·고양이·사람·호저 표적…단열과 포식자 퇴치 목적인 듯
박새는 둥지를 만들 때 주변에서 쓸만한 재료가 눈에 띄면 플라스틱 끈이든 담배꽁초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박새류는 한 걸음 나아가 여우와 너구리는 물론 사람이나 호저 등 포유류의 털을 뽑아 둥지의 마감재로 쓰는 것으로 밝혀졌다.
댄 밸러드와 제인 헌터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2만㎡ 넓이의 숲이 딸린 집에 사는 아마추어 야생동물 애호가다. 그는 이 거대한 ‘뒷마당’에 50대의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야생동물의 다양한 모습을
‘텍사스 뒷마당의 야생동물’이란 이름으로 유튜브에 공개한다.
지난 3월 밸러드의 카메라에는 흥미로운 광경이 찍혔다. 굴 밖에 나온 여우 한 마리가 봄볕을 쬐며 졸고 있는데 미국 특산 박새류인 댕기박새 한 마리가 등이나 배를 쪼며 괴롭히는 모습이었다. 여우는 그때마다 새를 쫓아냈지만 박새는 끈질기게 다가와 쪼아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