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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사람 오세요... '수상한 흥신소'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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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흥신소] 프롤로그

사건 사고가 많은 한국 사회. 그중 인권과 헌법에 반하는 사건이 유독 많습니다. 국가권력이 저질렀거나 외면했거나 왜곡한 반인권·반헌법 사건의 피해자를 도우려고 '수상한 흥신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기자말>

"에이~ 세상 억울한 사람 다 도와줄 수는 없잖아."

국가폭력피해자 지원단체인 '지금여기에'라는 단체의 사무국 일을 정리할 때 주위 사람들은 매번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억울한 사건은 매일 매일 뉴스로 올라왔다.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기구가 여럿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나 각종 시민단체 등 실질적 법률 지원을 해주는 곳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사건이 어렵고', '오래되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들여다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세상 억울한 사람을 다 도와줄 수 없다. 도와줄 수는 없어도 들어줄 수는 있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수상한 흥신소'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변호인도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억울하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분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확인해 주는 것까지다. 그 이후의 법률적 구제는 다른 이, 즉 변호인의 영역이다.

억울한 피해자의 호소를 제한 없이 듣고, 법률적으로 돕고, 살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사무실도 없고, 후원자도 없는 일을 하자고 할 때 선뜻 응낙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였다. 세상 억울한 사람을 제한 없이 돕는 단체를 만들자고 하자 최정규 변호사는 흔쾌히 동의했다.

원곡법률사무소는 이미 전남 신안에서 노예처럼 일했던 소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이나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 사건, 김홍영 검사 자살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를 위해 변론했다. 또 선유도 납북 귀환 어부 간첩 사건의 재심을 맡아왔다. 최 변호사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이 차별받는 현장에 뛰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야전 변호사'였다.

최 변호사는 우리 일에 뜻을 함께할 훌륭한 변호사가 있다고 소개했다. 바로 정진아 변호사였다. 관악구노동복지센터에서 무료 노동 법률 상담을 해주고, 노동·여성과 관련한 법률 지원 활동을 하던, 한마디로 '억울함'을 쫓아다니는 변호사다.

정 변호사는 대학 졸업 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여행 경비를 벌러 갔다가 임금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노동청에 찾아가 호주 노동법에 대해 설명을 듣는 순간 '아, 변호사다' 하고 진로를 정해 버렸다고 한다(신고를 통해 체불 임금은 잘 받았다). 세월호가족협의회, 선체조사위원회 등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법률사무소 '생명'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상 억울하다는 사람 다 돌아볼 수 있을까

우리는 1년에 3건 이상의 사건은 맡지 않기로 했다. 인원이 고작 3명뿐이라 들어온 사건을 다 처리할 수 없고, 적은 인원으로 많은 사건을 맡을 경우 제대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뢰인이나 피해자에게 어떤 비용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무실 임대료, 운영비, 활동비, 재판에 드는 비용 모두 갹출한다.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건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자유로울 수 있다.

임시로 창덕궁 옆 정진아 변호사의 사무실이 있는 법률사무소 생명 사무실 1층을 임대해 사용하기로 했다. 월 40만 원의 월세를 내고 간판도 없는 사무실을 개소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15일 '수상한 흥신소'라는 단체를 등록했다.
오마이뉴스

▲ 수상한 흥신소의 최정규(맨 앞), 정진아, 변상철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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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을 개소하자마자 수상한 흥신소의 도움이 필요한 사건이 곧바로 일어났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알선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직장 내 괴롭힘과 차별을 당한 사건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인고용공단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당 기업에 내용증명을 보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다행히 최근 해당 기업이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사건은 원만히 해결되었다.

거의 동시에 과거 제주에서 벌어진 김녕중학교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이미 과거사위원회인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곳에 진실규명을 신청하는 한편 당시 관련자 등의 진술을 들으며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장기수의 삶을 다룬 소설 <완전한 만남>이라는 소설의 원작자인 김하기(본명 김영)씨가 군복무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받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도 돕고 있다. 단순 탈영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둔갑한 이 사건은 군 보안부대 수사관의 고문으로 인해 조작된 대표적인 고문사건 중 하나였다.

이 밖에도 서해안 납북 귀환 어부 인권 침해 사건, 월북 조작 사건, 제주 4.3 국가배상 사건,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밀려들어오는 사건 앞에 다시금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세상 억울하다는 사람 다 돌아볼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볼 수 있는 것은 돌아볼 것이다. 수상한 흥신소만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돌아본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번 연재 역시 수상한 흥신소의 역할을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누고 함께 응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의지할 수 있는 '내 편'이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변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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