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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쥴리 벽화'는 여당을 때렸고…'안산 숏컷'은 야당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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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페미니즘과 남녀 갈등 이슈가 부각하고 있다. 여야 양쪽에서 쏘아 올린 ‘쥴리 벽화’ 논쟁과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에 대한 ‘여혐 논란’이 일주일 째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관련 논쟁을 촉발한 이들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반작용의 폭발'현상, 두 사건이 그런 점에서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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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에 '쥴리의 남자들'로 불리는 그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 비방 내용의 벽화)이 그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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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쥴리 벽화’ 논란은 여권 지지층이 촉발했다. 당초 열린공감TV 등 여권 성향 온라인 매체에서 산발적으로 제기하던 의혹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한 서점의 벽화로 등장하면서 오프라인 논쟁으로 옮겨붙었다. 이 과정에서 여권 정치인들은 “대선 후보라면 주변이 깨끗해야 한다”(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람들이 ‘쥴리’를 찾아 삼천리를 떠돌 것”(정청래 민주당 의원) 등 관련 의혹을 꾸준히 재생산했다. 일부 지지층의 도 넘은 인신공격을 여권이 사실상 묵인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쥴리’ 논란을 두고 여성계에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자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개탄스러운 행위”(한국여성단체협의회)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당 내부에서도 “명백한 인권침해”(김상희 국회부의장)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윤 전 총장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가 여권에 부메랑이 되는 모양새다. 2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6주 만에 상승 반전해 35.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1.5%포인트 하락한 민주당(33.6%)을 다시 앞섰는데, ‘쥴리’ 논란에 염증을 느낀 여성 지지층 유입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주(7월 3주차) 대비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4.6%포인트 하락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3.5%포인트 상승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도 최근 젠더갈등의 중심에 섰다. 20대 남성인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이 지난 달 30일 양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향한 온라인 폭력에 대해 “논란의 핵심은 (안 선수의) ‘남혐(남성 혐오) 용어 사용’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안 선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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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가 '여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안 선수가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안 선수는 혼성단체전, 여자단체전에 이어 개인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하며 사상 첫 올림픽 여자 양궁 3관왕이 됐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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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페미 논란'의 출발점은 여대를 다니는 안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숏컷'이란 이유였다. 이후 안 선수가 과거 SNS에 ‘웅앵웅(웅얼웅얼 말하는 소리)’, ‘오조오억(숫자가 많다는 뜻)’ 등의 표현을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해당 용어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온라인상이나 예능 등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폭넓게 쓰는 것들이다. 이런 표현들을 '여초 커뮤니티에서 쓰는 남성비하 용어'로 인식하는 일각의 일방적인 주장을 양 대변인이 정치권으로 끌어온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 안팎에선 “매카시즘의 ‘공산주의자 몰이’와 닮았다”(장혜영 정의당 의원), “이준석 대표가 시킨 건가. 대형사고”(진중권)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대선을 앞두고 젠더 문제가 뇌관으로 부상하는 건 이례적이다. 2017년 대선 때만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문재인 민주당 후보), “나도 상당히 페미니스트”(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느슨한 ‘페미니즘 지지’가 오히려 젊은 층 공략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것이 최근에는 페미니즘 지지 여부가 후보에 대해 좋고 싫음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철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특히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역차별’에 대한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젠더갈등이 심화했고, 자연스레 정치권에서 ‘이남자’와 ‘이여자’를 분리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대남’ 정서를 대변해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1위를 하면서 20대 남성의 정치적 목소리가 덩달아 커졌고, 이는 곧 정치권이 젠더갈등을 전면에서 다루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최근 이준석ㆍ하태경ㆍ유승민 등의 야권 정치인은 분노한 20대 남성에게 정책적ㆍ정서적으로 접근했다”며 “20대 남성을 견인하기 위한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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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자가 6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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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은 어설프게 논쟁에 뛰어들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2일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인 ‘명불허전 보수다’에 참석해 “페미니즘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을 놓고선 곧장 “젠더 감수성을 1도 찾아볼 수 없는 경악스러운 후보”(정세균 전 국무총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추미애 전 장관 역시 지난 6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길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20년 전 인터뷰 기사인 줄 알았다”(심상정 정의당 의원)라는 비판을 받았다. 장성호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장은 “근본적으로 어떤 한 시각으로 재단할 수 없는 문제를 서툴게 재단하려고 하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젠더 문제는 성평등을 논제로 논쟁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지, 최근 정치권의 모습처럼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진행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윤정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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