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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훈련 2주 앞두고... 北 김여정에 또 발목 잡힌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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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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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또 ‘김여정 하명’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1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한미훈련) 취소를 압박하는 담화를 내면서 1년 전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제정 당시와 비슷한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한미훈련 수위를 낮추자니 보수세력의 비판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강행하자니 통신선 복구로 모처럼 조성된 남북 대화 국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2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관계 부처들은 이달 중순 예정된 한미훈련의 절충점을 찾고 있다. 일단 ‘16일부터 9일간 훈련을 실시한다’는 얼개에 한미 군 당국이 합의한 만큼, 일정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정부는 훈련 규모와 범위를 대폭 축소해 남북관계 개선의 불씨를 이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예정대로 훈련을 실시하면 한미동맹 강화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명분’도 덩달아 챙길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 와서 훈련을 연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훈련도 실기동이 아닌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시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규모 축소가 적당한 타협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미훈련 규모를 조정한 전례가 없진 않다. 2018년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미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유예했고, 해병대 연합훈련도 미뤘다. 또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에이스를 연기하는 등 다수 훈련이 중단ㆍ축소된 형태로 진행됐다. 당연히 남북관계는 급진전했고, ‘한반도의 봄’을 맞았다는 평이 쏟아졌다.

문제는 시점이다. “한미훈련은 북남(남북)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는 김 부부장의 담화는 훈련을 불과 2주 남겨 놓고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훈련에 변화를 줄 경우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 더 거칠게 말하면 “김여정 하명을 이행하는 꼴”이란 비판에 직면할 게 뻔하다. 정부로선 지난해 6월 김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정부가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을 추진하자 ‘김여정 하명법’이란 집중포화에 시달렸던 아픈 기억도 있다.

한미훈련은 이미 정치권 논쟁으로 번졌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남북ㆍ북미관계 개선 이유를 들어 ‘훈련 연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훈련 연기나 축소를 묵과하지 않을 태세다. 태영호 의원은 “김정은 남매의 협박에 굴복해선 안된다”고 했고,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한미훈련을 (북한과의) 대화 금단 현상을 해소할 칩 정도로 여겨선 곤란하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정부 부처 간 갈등 조짐도 엿보인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훈련이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선 안된다”며 ‘유연한 대처’를 주문했다. 지난달 30일 “연기가 바람직하다”는 통일부 고위당국자의 발언과 궤를 같이한 것이다. 반면 국방부는 “(훈련은) 한미 당국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한미훈련의 운명은 청와대 결단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일단 국방부 의견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2018년 한미훈련 연기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어냈던 것처럼 미국을 설득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뜻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연합훈련을 중단하면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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