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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트랜스젠더 역도선수는 기합을 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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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머니투데이

(도쿄=뉴스1) 송원영 기자 = 뉴질랜드 여성 역도대표팀 로렐 허버드가 2일 저녁 일본 도쿄 국제 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87kg급 인상 3차 시기에서 바벨을 들어올리지 못해 아쉬워 하며 인사하고 있다. 로렐 허버드는 올림픽에 출전한 첫 트랜스젠더 선수로 8년 전 성전환 수술을 받기 전까지 남자 역도선수로 활동해 왔다. 2021.8.2/뉴스1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87kg급 결승. 인상에서만 140kg을 들어올리며 일찌감치 금메달을 예약한 중국의 리원원, 인상·용상 합계 277kg을 들어올려 4위에 오른 우리나라 이선미가 시선을 집중시켰다. 결국 금메달은 신기록을 연거푸 새로 쓴 리원원이, 은메달은 영국 선수가 따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다.

43세의 뉴질랜드 여성 역도 국가대표 로렐 허버드는 트랜스젠더다. 남성이었지만 2012년께 여성으로 성전환했다. 남자였던 시절 105kg급 역도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허버드는 올림픽 사상 첫 트랜스젠더 선수로 기록됐다.

허버드의 올림픽 출전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2004년 '성전환 수술 2년이 경과했을 경우 성전환 선수 올림픽 참가를 인정'하는 규정을 만들면서 가능해졌다. 여성의 경우 여기에 더해 테스토스테론 혈중농도가 기준을 충족하면 출전할 수 있다.

허버드는 수차례 호르몬 검사에서 기준을 충족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받아들었다. 2017년 뉴질랜드 국가대표가 됐고 세계역도선수권에서 2위를 기록하며 사상 첫 트랜스젠더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요약하면 간단한 경력이지만 허버드가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왔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룰 앞에 공정한게 스포츠지만 스포츠만큼 보수적인 영역도 없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출전자격 박탈 논란이 일었고 도쿄올림픽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 역도선수였던 허버드가 성전환수술을 했다 해서 여자 대회에 나섰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만약 메달을 획득했다면, 허버드의 적격 논란이 어디까지 퍼져나갔을지 알 수 없다.

'넘사벽' 수준의 무게를 연이어 들어올린 중국의 리원원은 매번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떠나갈 듯 기합을 질러댔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기합은 필수다. 리원원의 코칭스태프가 함께 목소리를 높여 선수의 긴장을 풀고 집중력을 고조시켰다.

한국의 이선미가 외친 귀여운 기합도 마찬가지다. 역도처럼 단시간에 강한 힘을 내야 하는 종목에서는 기합이 더 중요하다. 장미란의 짧고 힘있는 기합을 기억하는 역도팬들이 아직 많다.

허버드는 달랐다. 시종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목표한 무게를 들어올리고 환호성을 지르려다가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상 첫 트랜스젠더 올림피언 허바드는 인상 막판 세 차례 실격으로 경기가 모두 마무리될때까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허버드의 올림픽 참전은 이전에 많은 소수자들이 걸어갔던 고난의 길과 같다. 성 전환은 본인의 판단이고 이에 따른 불이익이 있다면 역시 허버드의 몫일 것이다. 허버드의 올림픽 출전이 합당하냐 그렇지 않으냐의 판단도 그를 지켜보는 개개인의 몫이다.

현장을 지킨 취재진도 허버드의 올림픽 출전기를 비중있게 타전했다. 허버드의 메달 획득이 불발되자 상당 수 취재진이 자리를 떴다. 허버드를 바라보는 전세계의 관심이 그만큼 특별했다.

허버드의 침묵은 여성 선수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굳이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같음을 인정받는 길을 가기 위해 다름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아이러니다. 허버드가 목표한 무게를 들어올리고 활짝 웃으며 두손을 맞잡자 '여자인 척 한다'는 실시간 댓글이 올라왔다. 성전환해 8년여를 여자로 살아온 허버드에게 합당한 평가일까 가혹한 평가일까.

남자였던 허버드의 여자경기 출전은 올림픽 정신의 '공정한 경쟁'에 위배되는 것일까.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다. 그렇다면 허버드의 출전을 막는것은 또 다른 올림픽 정신인 '우정' 그리고 '연대'에는 부합하는가. 이 역시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다. 허버드가 올림픽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던진, 메달 이상의 무게를 가진 질문들이다.

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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