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中, 한국 게임 판호 발급의 흑역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올여름 들어 게임 업계가 기대감으로 들썩이고 있다. 야외 활동이 많은 여름은 겨울에 비해 게임사의 매출이 비교적 적은 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가 될 수 있던 배경에는 중국에서 들려온 소식이 있었다. 바로 국내 게임사 펄어비스의 대표작인 ‘검은사막 모바일’이 6월 28일 중국의 판호(版號) 발급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업계와 언론에서는 이제 슬슬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물론, 지나치게 일찍 샴페인을 터트려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판호를 받을 때마다 화제가 된다는 것은 판호가 그만큼이나 한국 게임업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증명한다. 중국 내에서 신규 게임의 유통을 허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판호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해졌을까.

또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판호, 누구냐 넌

결론부터 말해보자. 해외의 제도를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접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우선은 상황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은 대처를 해야 한다. 직접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판호라는 제도의 변화에는 적응해야 한다.

판호는 중국에서 서적 등 출판물에 사업 허가를 내주는 일종의 고유 번호다. 추후 게임도 출판물로 분류되어서 판호를 받아야 하는 분야가 됐다. 중국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게임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고 이에 따른 규제의 일환으로서 판호를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판호의 기준이 복잡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판호는 앱스토어 등지에 출시한 뒤 중국 당국에 출시 사실을 고지만 하면 되는 ‘신고제’였지만 중국 정부의 심사를 받는 ‘허가제’로 변환됐고, 처음에는 PC 게임에만 적용됐지만 이어 모바일 게임도 지난 2016년부터 마찬가지 규제를 받게 됐다. 제도 변경이 이뤄지는 과도기의 행정 절차상 빈틈을 노려 우선 출시부터 하고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이조차도 일부 중소 업체들에 국한된 얘기였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작 게임들에게까지 허용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한국 게임들이 중국에서 출시되기까지 판호는 점차 넘기 쉽지 않은 벽이 되어갔다.

한국게임학회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산 게임에 발급한 판호는 지난 9년간 겨우 158건에 그쳤다. 2009년 13건, 2010년 11건, 2011년 19건, 2012년 19건, 2013년 25건, 2014년 17건, 2015년 9건이었다.

매일경제

2016년 무더기 출시를 시도하면서 이례적으로 34건이 판호를 받기는 했으나 2017년 들어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국내 배치 사태 이후 중국 정부가 이른바 ‘한한령’을 암암리에, 그러나 확실하게 내리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중국은 일부 한류 연예인들의 출연을 금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로 한국 게임의 출시까지 막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2월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모바일’을 마지막으로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중단했다. 판호 발급이 중단된 기간 동안 한국 게임의 매출은 최소 10조원, 최대 17조5000억원 규모가 증발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긴 암흑기가 마침내 끝날지도 모른다는 신호가 온 것은 2020년 12월이었다. 컴투스의 대표작인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가 판호 발급을 받았고, 이어 핸드메이드게임즈의 ‘룸즈: 불가능한 퍼즐’도 판호를 획득했다. 잠시 또 잠잠하던 중국 정부는 6월 ‘검은사막 모바일’에 3번째 판호를 주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앞서 판호를 받은 두 게임이 출시된 지 시일이 좀 지났거나,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인디 게임사의 작품이라면 ‘검은사막 모바일’은 2018년 출시돼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 2800만 건을 기록하는 등 지금도 한창 잘나가는 게임이라서 더욱 희망적인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업계의 반응 자체도 이전보다 한 발 나아간 모습이긴 하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이전에는 소규모 게임에 판호가 나와 정말 판호가 제대로 나오는 시기가 된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이젠 가능해지지 않았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알려진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역시 “판호 상황은 계속 좋아질 것이고, 우리나라 게임들의 판호 발급도 가능해지리라 본다”며 밝은 미래를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판호를 받은 게임은 왜 받을 수 있었는지, 받지 못한 게임도 왜 실패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깜깜이 심사’가 이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단 기준은 존재하고,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9년 판호 승인 게임의 총량을 제한하며 새로워진 판호 규정을 발표한 바 있고 올해도 이를 또 다시 업데이트했다. 관념 지향, 원조 창작, 제작 품질, 문화적 의미, 개발 정도 등 5개 항목에서 평균 3점을 받아야 하고, 단 한 항목에서라도 0점을 받으면 떨어진다. 한 게임으로 판호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도 총 3번으로 제한되었으니 점점 어려워지는 셈이다.

종교와 미신에 대한 내용을 제외한다, 싸우는 종류의 게임에서는 유혈 묘사를 금지한다는 세부적인 내용들도 있고, 나아가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실명인증제와 과몰입 방지 장치 도입까지 의무화됐다. 판호 관련 업무도 신문출판광전총국에서 공산당 중앙선전부로 이관되며 더욱 강력한 규제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세부적인 기준까지 마련해가며 판호에 신경을 쓰다보니 현재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애초에 게임에 대한 전체 판호 허용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에 9368건, 2018년에 2064건, 2019년에는 1570건으로 중국 시장에서 선보일 수 있는 게임 수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 와중에 한한령 이후 일본과 미국이 받은 판호 수는 각각 100개가 넘어가는 반면 한국은 고작 3개에 그치는 만큼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일경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판호는 문제가 아니다?

판호 때문에 그렇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한국 게임사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애를 써온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중국 시장의 규모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게임 시장 규모도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해 2786억8700만위안(약 47조5300억원)으로 5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고, 한국(약 15조원)의 3배가 넘는다. 게임을 즐기는 인구만 해도 6억7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서 중국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한 게임사들의 성공이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매출로 증명하고 있다. 2005년 나온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와 2007년 선보인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게임으로 꼽히고 있고, 이들 게임사들의 연간 매출에서 여전히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당연히 후발 주자들 역시 중국 시장을 욕심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고민 끝에 우회로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배틀그라운드’로 글로벌 흥행을 일궈낸 크래프톤이 대표적이다. 크래프톤은 지난 2018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글로벌 출시했지만 중국에서는 제대로 서비스를 할 수 없어 이듬해 종료한 바 있다. 그런데 이후 텐센트가 출시한 ‘화평정영’은 똑같은 게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심지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업데이트하면 ‘화평정영’으로 바뀌고, 이용자 데이터도 그대로 승계됐다. 그럼에도 크래프톤은 “화평정영은 크래프톤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게임으로 로열티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해오다가 IPO를 준비하게 되면서 결국 “중국 텐센트가 개발·서비스하고 있는 화평정영에 대한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배분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제대로 판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 텐센트와 한국 크래프톤이라는 두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중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려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 정부가 점점 판호 규정을 강화하는 분위기에서 이런 ‘우회로 판호’마저도 앞으로는 가능할지 미지수다.

매일경제

원신 모바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설령 판호를 받아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출시와 매출 확보까지 이어지기까지 넘어야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한령이 본격화되기 전 이미 판호 발급을 해뒀던 넥슨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원래 지난해 8월 출시 예정이었고 사전예약자만 60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지만, 미성년자 게임 의존 방지 시스템 적용을 이유로 1년 가까이 출시가 미뤄지고 있다. 판호 재개의 상징처럼 보였던 컴투스 ‘서머너즈워: 천공의 아레나’ 역시 구글을 대신해 게임을 유통하는 중국 현지의 안드로이드 기반 앱장터에도 올리지 못하고 애플 앱스토어 위주로 제한적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중국 게임업계의 역량이 올라오면서 한국 게임사들이 판호를 받아도 과거처럼 중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중국 게임공작위원회(GPC)는 ‘2020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중국 게임이 전 세계에서 올린 매출이 154억5000만달러(약 16조8000억원)라고 발표했는데 이 중 한국에서 올린 매출이 13억6115만달러(약 1조4800억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

검은사막 모바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한국이 중국에서 벌어오는 매출 규모가 더욱 크지만 이제 게임 분야에서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해서 외면 받을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신(영어 이름 Genshin Impact)’ 같은 게임이 좋은 예시다. 중국 미호요가 만든 ‘원신’은 닌텐도 스위치의 인기 게임인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표절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첫 주 모바일에서만 6000만달러(약 690억원)를 벌어들일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게임사 임원은 “PC와 콘솔 플랫폼까지 글로벌 원빌드로 만들어 서구권 이용자까지 끌어들일 정도라면 게임 개발 경쟁력도 인정해줘야 한다”며 “이제 우리가 중국에 진출한다 해도 이미 인기를 끌고 있는 기존 IP가 아닌 이상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 시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 게임사들은 동남아시아·인도·북미 등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동남아 BIG 6(태국·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인도 등은 인구수도 많고, 스마트폰 보급률 등 통신 환경도 개선되고 있어 앞으로 주목할 만한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평이다.

예를 들어 크래프톤의 경우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를 출시하고, 현지 IT 업체에 올해만 800억원 투자를 이어가는 등 인도 시장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당장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인도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지난 2015년 3억6000만달러(약 4095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8억8500만달러(약 1조66억원)로 5년 새 2배가 넘는 고속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 정부가 판호를 어떻게 운영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 게임에게 판호를 드문드문 발급하는 것은 외교 분쟁은 피하면서도 최대한 자국 시장을 안 내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선 공개된 판호 기준에 맞춰 게임을 제작하며 다양한 시장으로 진출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 정부 역시 외교적인 방안을 동원해서 중국의 불필요한 보복을 받는 일만은 줄여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다.

구본국 컴투스 사업운영센터장은 한 게임 행사에서 “하얼빈 공과대학에서 산학협력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중국 유소년 골프 유망주 지원, 컴투스컵 대학생 게임개발대회 개최 등 중국 현지법인이 공격적으로 투자한 결과 판호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도 노력해야 한다. 한국게임학회는 “지난 4년간 한국, 일본, 미국, 유럽의 판호 누적 발급 건수를 근거로 구체적인 요구를 정부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익 매일경제신문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