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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덧칠된 '쥴리 벽화'에는 與주변 여성 '조롱'…'여성혐오'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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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 벽화로 소환된 여성성, 여성계의 복잡한 시선

윤석열 부인 풍자로 시작…文대통령, 이재명 비난으로 반격

각 진영 지지자들, '여성성' 매개 비난전

문구 지어진 뒤 낙서로 뒤범벅된 '쥴리 벽화'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에서 '쥴리의 남자들'이란 문구는 지워졌지만, 주말 사이 각각 친여, 친야 성향의 지지자, 유튜버들이 경쟁적으로 낙서를 덧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비난뿐 아니라,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 정치인들의 부인에 대한 조롱이 추가됐습니다. 여성계는 진영 논리에 여성성이 악용되고 있는 점을 주목한 반면, 다른 한쪽에선 당초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여성가족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노컷뉴스

1일 서울 종로구 홍길동중고서점 건물 벽화 모습. 사진 허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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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종로구 홍길동중고서점 건물 벽화 모습. 사진 허지원 기자

정치적 풍자에 '여성성'을 활용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누드화에 이어 최근 윤석열 전 총장 아내의 의혹을 풍자한 벽화가 논란이 됐다.

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종로구 홍길동중고서점 외벽의 '쥴리 그림'은 현재 한 유튜버에 의해 훼손돼 서점 측이 해당 유튜버를 재물손괴죄로 고소한 상태다. 지난달 31일 한 보수 유튜버는 원래 그림을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하고 그 위에 '페미, 여성단체 다 어디 갔냐?' 등의 문구를 써 놨다.

여성 혐오를 여성 혐오로 되받는 방식…불편한 여성계


서점 건물의 벽화는 6월 28일 처음 등장해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윤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금발 여성 그림 밑에는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 옆 하트 그림에는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쥴리'는 김씨가 과거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소문과 함께 언급되는 예명이다.

서점 측은 지난달 30일 논란이 된 문구를 흰색 페인트로 모두 지웠지만 여성 인권 침해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은 해당 벽화가 여성혐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변호사회 등도 잇따라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쥴리 벽화'가 여성혐오적인 이유를 설명하며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라고 하는 문구는 전형적인 꽃뱀 서사, 즉 여성이 자신의 신체 자본을 활용해 권력자 옆에 가는 것이 여성으로서는 가장 성공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암시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허민숙 여성학 박사 또한 "거물 정치인 자체를 겨냥하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여성들을 상대로 정치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며 "전통적인 여성성 틀에 맞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공략해내는 것들이 혐오의 정치"라고 지적했다.

훼손된 벽화에는 또 다른 정치인 주변 여성들의 호칭이 새로 적혔다. '혜경궁'(이재명 경기지사의 부인을 지칭), '부선'(배우 김부선씨를 지칭), '문재인 마누라' 등이다. 윤김 교수는 이에 대해 "상대 진영에 있는 여성들을 똑같이 모욕 주고 공격하는 방식이 마치 제대로 된 대응 방식인 것처럼 여기는 것에서도 전형적인 여성혐오, 성차별적 인식이 반복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윤희숙 의원 등은 지난달 문제의 벽화에 대한 여가부와 여성단체의 대응이 부족하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지워진 벽화 위에 쓰인 '페미, 여성단체 다 어디 갔냐?'라는 문구와 같은 맥락이다. 이에 CBS노컷뉴스가 취재한 여성단체들은 "여성단체를 비판하기 위한 논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여성단체가 그들이 원하는 걸 활동으로 가지고 갈 의무는 없다"며 "그 사안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또한 "여성단체들이 계속해서 목소리 내는 걸 다 보지 않는 것도 있고,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시기에 목소리 내는 것을 요구하는 건 그들이 단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박사는 "(여성단체들도)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어서 딜레마가 있다"며 "타깃인 여성도 가뿐하게 비난하면서 여성인권적 측면에서 돕고자 하는 시민단체도 수렁에 빠뜨리고자 하는 이중의 덫을 쳐놓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적인 행실이나 소문을 근거로 그 여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고 주변인들에게 영향 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가부장적인 문화, 암묵적인 동조를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점 주인 "여성 비하 의도 없었다"면서도…"싹 지울까 생각 중"


노컷뉴스

1일 서울 종로구 홍길동중고서점 건물 벽화 모습. 사진 허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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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종로구 홍길동중고서점 건물 벽화 모습. 사진 허지원 기자
벽화를 보러온 시민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회사가 근처에 있어 지나가다 들렸다는 박모(45)씨는 "여성을 비하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건희씨가 쥴리라는 의혹을 받는데 대권 후보에게는 가족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학원 강사라고 밝힌 40대 여성 곽모씨는 "한국 정치는 사실 양쪽이 파이팅(싸움이) 붙는 것이라 서로 치킨 레이스처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이거 하나도 잡고 늘어지는 것 같다"면서도 "김건희라는 분이 과하게 까발려진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정원 홍길동중고서점 대표는 "'남자', '검사' (문구를) 쓴 것은 성적인 관계를 얘기한 게 전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지 비리가 있다면 한번쯤은 검증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받아들여 줘야 하는데 그걸 여성의 과거로 얘기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처음 벽화 그림을 선택할 때 '쥴리'를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전혀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유튜브에서 계속 쥴리, 쥴리 하길래 마침 하트 그림에 어울려서 '쥴리의 남자들 넣어볼까'하고 즉흥적으로 풍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점 직원들은 유튜버들 카메라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며 뒷문으로 다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50대 남성 직원은 "어떤 사람이 여자 직원과 손님 2명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했다"며 모욕죄로 욕한 사람을 고소했다고 말했다.

서점 주인은 "진보든 보수든 마음껏 표현하라고 플래카드를 걸었더니 나보다 몇십 배 심하게 표현을 한다"면서 "정말 너무한다. 벽화를 싹 다 지워버릴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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