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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코로나 백신 예약 먹통사태 해결도 클라우드, 이제는 선택 아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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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의 혁신탐구생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한겨레

클라우드 MSP 스타트업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강남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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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발생한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먹통 사태’.

2000년대 초반에 구축돼 동시 접속 인원이 최대 30만명에 불과한 서버에 50~60대 접종 대상자와 자녀, 대리인 등 1천만명이 한꺼번에 몰린 게 원인이었다. 거센 불만이 일자 정부는 서둘러 몇몇 기업에 도움을 청하고 ‘클라우드’로 문제를 풀기로 했다. 18∼49세 1770만명의 접종 예약이 시작되는 8월 초까지 접종예약 누리집 접속의 길목인 본인인증 페이지에 클라우드 기술을 적용해 시스템을 개선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 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3월 온라인 개학에 이어 두번째로 클라우드가 해결사로 나서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두 번의 공공클라우드 도입에 모두 참여한 업체가 있다. 2015년 창업한 베스핀글로벌이다.

원격수업과 재택근무 등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클라우드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클라우드 엠에스피(MSP, managed service provider) 기업인 베스핀글로벌의 일도 함께 늘어나는 중이다. 베스핀글로벌은 이한주 대표(49)의 세 번째 사업이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웹 호스팅, 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다 매각해 본 경험이 있고, 국내에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을 운영하면서 벤처 투자와 사업 멘토링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보기술(IT) 분야의 미래는 클라우드라고 보고 베스핀글로벌을 창업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역 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만나 그가 꿈꾸는 미래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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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MSP 스타트업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강남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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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붐 때 창업한 호스트웨이…5천억원에 매각한 계기는 아마존웹서비스


이 대표는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3년, 아버지인 이해민 전 삼성전자 사장(현 베스핀글로벌 회장)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1998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며 선택한 길이 아이티 기업 창업이었다. “‘닷컴붐’이라고 하죠.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던 당시엔 전공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했어요. 지금의 스타트업붐보다 더 뜨거운 열기였어요. 당시 유전자 치료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연구에 필요한 기술들이 부족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때 한 선배의 제안으로 무작정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생물학에서 아이티 분야로, 그것도 취업이 아닌 창업을 하겠다고 선뜻 결심한 이유는 “인터넷이 앞으로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단다. 하지만 첫 창업은 쉽지 않았다. 비디오테이프를 벌금 없이 무제한으로 빌려보는 서비스를 구상했지만 사업모델을 구축하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나 첫 아이템을 구상하면서 눈에 들어왔던 ‘웹호스팅’ 기술로 ‘호스트웨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인터넷을 활용한 비디오 대여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려거든 웹사이트는 기본으로 만들어야 하겠더라고요. 그렇다면 각 사업자가 구축한 웹사이트를 인터넷과 연결해주는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호스팅에 필요한 데이터센터도 제공해주면 어떨까 생각한거죠.”

호스트웨이는 전 세계 11개 나라에 14개 데이터센터를 두고 고객사 100만 곳을 둘 정도로 순항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2012년 미국의 사모펀드에 5천억원을 받고 회사를 넘겼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계기였다. “호스트웨이 고객사들이 기존 경쟁사가 아닌 아마존과 데이터센터 계약했다는 보고가 영업 부서에서 올라왔어요. 책을 파는 회사와 무슨 데이터센터 계약을 하나, 들여다봤더니 아마존이 클라우드 사업을 한다더군요. 그 때 처음 클라우드라는 세계에 눈을 떴어요. 데이터센터의 다음 단계가 클라우드더라고요. 앞으로 커질 분야 같아서 호스트웨이도 클라우드에 1천억원 정도 투자를 했고 2008년엔 클라우드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어요. 하지만 매년 1조 넘는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는 아마존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죠. 클라우드 산업이 지금처럼 커질 줄도 몰랐습니다. 아마존만큼 투자를 해서 아마존과 같은 형태의 사업으로 직접 경쟁해서 아마존을 이기기 어렵다면, 데이터센터 사업은 큰 매력이 없겠다는 판단에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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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MSP 스타트업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강남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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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라우드 초창기에 뛰어들어…삼성전자 직계약하며 주목


“아마존과 경쟁이 어렵다면 협업을 하자.” 베스핀글로벌은 클라우드 산업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전략으로 시작한 클라우드 MSP 회사다. 클라우드 시장은 직접 거대 규모의 클라우드 서버를 구축하고 제공하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CSP기업과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버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컨설팅과 유지, 관리를 해주는 MSP 기업을 두 축으로 한다. 베스핀글로벌이 생겨난 2015년만 해도 한국에선 클라우드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초기 사업자로서 베스핀글로벌이 직접 CSP 기업으로 클라우드 센터를 제공할 수도 있었지만, 이 대표는 MSP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희는 처음부터 고객사들이 멀티클라우드를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B2B 아이티 인프라 서비스는 고객들이 여러 벤더를 원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객과 여러 CSP 사업자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큰 사업이 될 것이라고 봤죠.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제조가 아닌, 자동차 전문 보험 사업만으로도 큰 시장이 형성된 것과 비슷하게 MSP 분야만으로도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베스핀글로벌은 창업 직후, 삼성전자의 클라우드 전환 사업을 직계약으로 수주하면서 단숨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삼성 계열사의 아이티 인프라는 삼성에스디에스(SDS)가 맡아서 구축하거나, 외부 업체가 납품하더라도 삼성에스디에스를 통해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생 업체가 삼성전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해서였다. “당시에 한국의 아이티 생태계를 잘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직계약은 제가 한국의 아이티 업계를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몰랐으니까 삼성전자에 직접 가서 영업을 한 거죠. 한편으론 국내 아이티 업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대기업 SI 계열사들이 대기업 안에서 ‘온실 속의 화초’로 존재하면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삼성전자는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컸지만, 삼성에스디에스는 신기술 도입 등에 소극적인 편이었죠. 그러다보니 신생기업에게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엔 영업 대상인 기업들에게 클라우드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했다. “굳이 써야하냐?”고 되묻거나 클라우드의 위험성을 먼저 고려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클라우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지 기업들에게 물어보면 15~30% 정도가 “고민한다”고 답했을 뿐, 나머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1년 반인데…지난해 온라인 개학 사태가 백신예약에도 반복


하지만 지난해 초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클라우드 산업은 변곡점을 맞았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일상화되면서 기업과 공공기관, 학교 등 전 사회가 갑작스럽게 디지털 전환을 해야했다. 비대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클라우드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코로나19 전후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낍니다. 이젠 클라우드를 도입해야할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클라우드 도입은 상수이고, 언제 어떤식으로 도입할지를 고민하죠. 가장 보수적이었던 금융사와 공공기관은 마지막까지 클라우드에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활발히 클라우드 전환이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고객사 유치가 한결 수월해졌죠.”

지난해 3월에는 초중고 온라인 개학에 사용된 클라우드 운영에도 참여했다. 교육방송(EBS) 온라인클래스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이(e)학습터의 클라우드 서버 제공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네이버로 각각 달랐지만, 양쪽의 운영은 모두 베스핀글로벌이 맡았다. 지난달 먹통 사태가 발생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사전예약시스템의 문제 진단, 해결에도 투입됐다. 베스핀글로벌의 클라우드 전문가 20여 명은 지난달 27일부터 퇴근을 반납하고 ‘워룸’(war room, 상황실)에서 본인인증 클라우드 서버를 개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이 더 적극적으로 클라우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티 기술은 갈수록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 것입니다. 백신 예약 시스템 먹통 사태를 보면, 아이티 인프라를 튼튼하게 갖추는 것은 이제 삶을 좌우하는 문제가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신 먹통 사태는 씁쓸한 일이죠. 지난해 온라인 개학으로 클라우드 서버를 잘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 겪었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으니까요. 정부가 더는 지체하지 말고, 클라우드라는 혁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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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MSP 스타트업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강남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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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도 영향력도 커진 스타트업, 사회적 책임도 고민해야


베스핀글로벌은 지난 2월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단에도 합류했다. 당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가 부회장단에 들어가서 화제가 됐는데, 아이티, 게임업계 인사가 상의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이 대표가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됐다. 이 대표와 최 회장은 시카고대학교 동문이다.

“아이티와 미디어, 콘텐츠, 신기술을 다루는 기업들이 크게 성장했고, 제조업 기반의 전통 대기업에게도 이런 요소가 중요하니 함께 교류하자고 최 회장님이 제안했습니다. 이 생각에 100퍼센트 동의해서 들어갔어요. 한편으론 스타트업도 이젠 하나 둘 대기업이 되고 있으니 사회적 책임도 고민해야죠. 아이티 기업들은 기존 기업과 어떻게 달라야 할까? 고민할 시점입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벌기업들도 처음 시작할 땐 한국의 산업화라는 사명감이 있었지만 어느 시점 이후부턴 시들해졌죠. 그러지 않으려면 늘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잡아야 합니다. 모든 기업은 더 크고,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절대로 져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새로운 산업에서 새로운 사업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지금은 “클라우드 사업에 더 집중해서 미래를 선점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큰 실패를 한 적은 없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저는 항상 ‘지금은 작더라도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잘 정비된 곳은 지루해보였어요. 험하고 역동적인 곳을 항상 좋아했죠. 자연스럽게 미래에 성장할 사업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미래가 클라우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전세계를 주름잡는 넘버원 소프트웨어 회사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 회사가 베스핀글로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클라우드라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통해서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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