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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죽인 힘으로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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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간은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인 힘으로 산다.” <절멸>에서 옮겨 적은 문장이다. 정확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의 입장에서 쓰인 글의 일부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는 방금 사용한 ‘박쥐의 입장에서’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운다. 감히 어떻게 대변할 수 있겠는가. 박쥐의 입장을 말이다. 동물을 의인화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유치한 실패로 돌아간다. 동물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꽝스러운 내레이션처럼 의인화 뒤에 남는 건 동물의 분위기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드러낸 인간의 욕망, 더 정확히는 자본의 욕망뿐이다. 이야기에 동물을 등장시킬수록 동물이 아니라 착취의 구조만이 명확해진다. 우리 중 동물을 침범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과 수산의 소비자이거나 거대한 동물산업의 관계자이거나 최소한 구경꾼이다.

경향신문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그중에는 의인화의 한계를 알면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지 묻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웃음기 없이 동물의 자리에 선다. 의인화를 실패한 곳에서 시작되는 ‘의동물화’도 있다는 걸 그들이 쓴 글을 보고 배웠다. 도입부에 인용한 문장은 작가 정혜윤이 자신을 박쥐로 의동물화한 시도다. 의동물화 역시 필연적으로 실패다. 그러나 적어도 의인화보다는 멀리 간 실패다. 올여름 워크룸프레스에서 출간한 책 <절멸>은 의인화를 넘어선 의동물화를 향해 움직인다. 동물이 최대한 덜 죽는 세계를 마련하고 싶어서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동물의 자리에 선 35명의 작가가 이 책에 참여했다. 정세랑, 홍은전, 김하나, 요조, 김한민, 현희진 등이 같은 주제로 글을 썼으며 창작 집단 이동시가 쓰고 엮었다.

전염병이 돌면 축산업의 동물들은 빠르게 살처분 당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밀집 사육 시스템 속에서 키워지고, 도살 당해 고기나 사료나 의류가 되고, 때때로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히는 게 소, 돼지, 닭, 그리고 오리의 삶이다. <절멸> 집필에 함께한 소설가 정세랑은 오리의 자리에서 서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20년을 살 수 있습니다. 20년이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애정을 알고 포옹을 좋아합니다. 우정은 종종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착취가 이 세계의 보편입니다. (…) 우리는 사료가 됩니다. 우리를 죽여 먹이는 개와 고양이에게, 당신들은 더 나은 친구입니까? 그 우정마저도 굴절과 왜곡이 아닌지 우리는 죽어가며 궁금해합니다. (…) 구덩이를 향해 걷는 우리를 보고 울던 사람들은 마음을 다치고, 마음을 다치지 않는 사람들은 다음 해에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나는 마음을 다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이가 몹시 그리워진다.

동물을 덜 죽일 방법 찾아야
결국 인간도 덜 죽을 수 있다
재난지원금·경제 등뿐만 아니라
둘의 관계도 새롭게 고민해야
이젠 살린 힘으로 살고 싶다

공장식 축산과 전염병뿐 아니라 기후위기로 죽는 동물도 무수하다. 코알라의 개체수 역시 30%나 줄었다. 기후위기로 잦아진 초대형 산불 때문이다. 김하나 작가는 코알라의 자리에 서서 다음과 같이 썼다. “코알라는 ‘노 워터’라는 뜻이다. 물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당신들은 산불 속에 검게 그을린 우리 코알라들이 인간이 건넨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당신들은 그 코알라를 목마름으로부터 구해주었다며 안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에 불을 지른 것은 애초에 당신들이다. 당신들은 나의 귀여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 김하나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동물의 귀여움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서식지를 어떻게 사라지게 했는지 정확히 아는 자는 드물다.

<절멸>에는 감염병과 관계된 동물들 또한 주연으로 등장한다. 인간에게 병을 옮기는 매개자 동물, 감염병 때문에 살처분 당하는 동물, 감염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희생 당한 동물 등 팬데믹 시대에 특히 고난을 겪는 종에 집중한다. 코로나19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자는 제안은 동물에게 주목한다는 의미다. 알려졌다시피 이 바이러스는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에 침투하여 감염 접점을 확대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전염병이 그랬듯 다가올 질병 X 역시 동물에게서 나올 확률이 높다. 동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병 X의 예방을 바랄 수는 없다. 동물을 덜 죽일 방법을 찾아야 인간도 덜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고민해야 할 것은 재난지원금과 공공의료 확충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맺는 관계를 재검토하지 않고 살던 대로 산다면 사라지게 될 것들이 눈에 선하다. 그 풍경에는 당연히 우리 인간동물의 모습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세 가지 단어이면서도 하나의 의미라고 이동시는 말한다. 동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니까. 이야기 그 자체인 동물의 자리에 서보았다가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마음을 크게 다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겠다.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 힘으로 살고 싶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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