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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정이 ‘여서정’ 성공했다… 720도 비틀기로 銅빛 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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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女기계체조 올림픽 사상 첫 메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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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로 인해 불안감이 있었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았는데, 이젠 더 열심히 준비해서 아빠를 이겨보고 싶어요.”

1일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한국 여자 기계체조 최초로 메달을 목에 건 여서정(19·수원시청)은 시상식을 마치고 눈물을 닦아낸 뒤 환하게 웃었다. 자신이 수년간 갈고닦은 고난도 기술 ‘여서정’을 앞세워 동메달을 따낸 그는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은 것 같아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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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1996 애틀랜타올림픽 남자 도마 은메달리스트 여홍철(50) 경희대 교수다. 이날 딸의 경기를 해설한 여 교수는 ‘이제 여서정의 아버지로 불리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물론이죠”라고 답했다. 여서정은 이를 나중에 전해듣고 한 번 더 웃었다. “아마도 제가 아빠의 그늘에 가려지는 게 그동안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아요. 이제 제가 아빠 이길 거예요!”

여서정은 이날 8명 중 5번째로 나섰다. 그가 1차 시기에서 도움닫기를 하고 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두 바퀴 돌아 무사히 착지하자 외신 기자와 조직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제히 탄성이 나왔다. 점수는 15.333점. 여서정이 ‘여서정’ 하며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2차 시기, 여서정이 비교적 쉬운 기술을 시도했다가 착지할 때 휘청거리자 조금 전과 다른 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 교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떠오른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여 교수도 당시 2차 시기에서 비슷하게 착지 실수를 해 은메달로 밀려났다. 여서정은 결국 최종 점수 14.733점을 받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초조하게 다른 선수의 결과를 기다리던 여서정은 마지막 선수의 점수가 공개되고 동메달이 확정되자 이정식 여자 기계체조 감독을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여서정은 “내가 대회를 앞두고 자신 없어 할 때 아빠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해보자’고 해서 힘이 됐다”며 “1차 시기 때 ‘제발’ 하면서 뛴 뒤 착지하는 순간 ‘됐다’ 싶었는데, 2차 때 착지하고선 ‘아차’ 싶었다. 메달이 확정됐을 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여서정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한국 체조 간판이자 ‘부녀 스타’로 떠올랐다. 2019년 6월 제주에서 열린 코리아컵 국제대회에선 국제체조연맹(FIG) 기술집에 ‘Yeo Seojeong’으로 등재된 ‘여서정’을 처음으로 선보이며 우승했다. 공중에서 앞으로 두 바퀴, 옆으로 두 바퀴를 동시에 도는 기술이다. 난도는 6.2. 역대 기술 난이도에서 이번 올림픽 포기를 선언한 시몬 바일스(24·미국)가 개발한 ‘더 바일스’(난도 6.4) 다음으로 어렵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 아웃’이 찾아왔다. 여서정은 “갑자기 커진 대중의 관심이 두려웠다”고 했다. 2019년 10월 세계선수권 결선에서 착지할 때 엉덩방아를 찧어 8위에 그쳤다. 오른쪽 어깨 부상도 심해져 그해 연말부터 석 달간 훈련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올림픽이 작년 3월 코로나 확산으로 1년 연기됐지만, 진천선수촌에서 나온 뒤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해 지난 4월 대표 선발전에서도 착지 때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서정’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코리아컵에서 성공한 뒤 2년간 훈련할 때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여서정’은 몸에 부담이 많이 가 하루에 한두 번만 시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여서정은 2019년 세계선수권 때 실수를 계속 떠올리며 혼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훈련 때 점프가 모자라 자꾸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난달 도쿄로 떠나기 직전에야 실전과 규격이 다른 연습용 기구에서 가까스로 한 번 성공했다.

그러나 여서정은 아리아케 경기장에서 ‘여서정’을 깔끔하게 성공해냈다. 기술 개발을 도운 송주호 충북대 교수는 “훈련 때 성공한 적 없는 기술을 실전에서 거의 무결점으로 성공해냈다”며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홍철 교수는 이날 경기를 해설하며 두 번 환호했다. 여서정이 ‘여서정’에 성공했을 때, 그리고 동메달이 확정됐을 때였다. 3년 전 아시안게임을 중계할 때와 달리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 딸이 시상대에 오르자 이렇게 말했다. “박수 한 번 쳐도 됩니까?”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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