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자국 기업에 칼 휘두르는 中… 美 투자자들 “늦기전에 돈 빼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진핑, 빅테크와 사교육 이어 부동산까지 초토화 조짐

미 “베이징이 외국 투자자 농락” “중국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아니었다”

조선일보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8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사이버 안보 담당 기관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 청사 앞으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미국 등 외국에서 기업을 공개하려는 자국 기업들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 중단을 권고하는 권한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알리바바와 텐센트, 디디추싱 등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빅테크들은 모두 주가가 폭락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시진핑 체제가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며 자국 민간 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를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예측 불가능하고 극단적인 ‘반(反)시장적’ 행태를 이어가면서 미 뉴욕 증시 등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고, 중국 기업에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최근 해외 증시에서 증발한 중국 기업의 가치가 1조달러(1152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에 ‘중국 투자 위험 주의보’가 내려지면서 중국과 세계경제의 관계도 급속 냉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우한시는 지난달 28일 시민들이 부동산을 구입할 때 사전에 정부에서 구매 허가증인 ‘부동산 구입표(房票·방표)’를 받아야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 내에선 이 방표가 과거 계획 경제 시대의 부동산 분배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향후 중국이 부동산 규제에 한층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증시에선 중국 부동산 관련 주식 종목들이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23일 중국 정부는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초·중·고교생의 학업 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예체능 외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업체 설립을 금지하고 기존 업체는 모두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토록 했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세계 증시에선 신둥팡교육 등 중국 사교육 관련주 투매 패닉에 빠졌다. 지난달 30일 현재 뉴욕 증시에서 신둥팡교육은 이달 초보다 66% 폭락하고, TAL 교육그룹은 70% 폭락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홍콩과 뉴욕 증시에서 중국 사교육 섹터는 피바다(bloodbath)가 됐다”며 “중국 당국이 한두 기업이 아니라 한 산업 분야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30일엔 자국의 대표 정보 통신(IT) 기업들을 줄줄이 불러들여 군기를 잡았다. 공업정보화부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트댄스, 바이두, 징둥, 화웨이, 디디추싱 등 기업 25개를 소집해 ‘데이터 안보 위협과 시장 질서 교란, 이용자 권익 침해’를 조사하겠다며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으라”고 요구했다.

이미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은 공산당에서 반독점 조사 등을 당하면서 7월 중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14% 이상 폭락했고, ‘중국판 우버’로 관심을 모았던 디디추싱은 뉴욕 증시 상장 한 달 만에 주가가 반 토막 나면서 상장폐지설이 나올 정도다.

중국이 연일 자국 기업을 세계 시장에서 주저앉게 만들 정도로 사정(司正)·규제책을 계속 꺼내 드는 건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에 돌입하면서 국내 서민층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차원이 크다는 분석이다. 중국에선 최근 집과 사교육, 의료 분야 빈부 격차를 젊은이들이 ‘3대 불평등’으로 꼽고 있다.

최근 이어진 공산당발 규제에 따른 주가 폭락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는 싸늘하게 식고 있다. 미국에선 10여 년 전부터 중국 직접 투자는 물론,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뮤추얼 펀드 등을 통해 대다수 국민이 중국에 어떤 식으로든 투자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에서 어떻게 돈을 빼야 하나’ 공포에 휩싸여있다. 지난달 말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 퇴직연금이 중국 사교육 시장 철퇴 소식에 “중국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고, 자산운용사 윌리엄 블래어 앤드 코도 “중국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고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부터 뉴욕 증시에 진출한 루이싱 커피 같은 일부 중국 기업의 회계 부정 문제가 불거졌고, 미국 정부가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들어 오는 2일부터 중국의 방산·기술 기업 59곳에 대한 주식 투자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는 등 ‘중국 리스크’는 계속 있었다. 그러나 최근처럼 공산당이 별 문제가 없어 보이던 민간 기업까지 대대적으로 때려잡으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식 자본주의’는 결국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는 충격적 교훈을 얻었다”며 “베이징이 외국 투자자들을 완전히 농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투자 정보 회사 뉴컨스트럭츠는 “최근 중국의 잇따른 규제는 끝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통제와 지휘 강화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중국 규제 정책에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며 “당분간 중국 주식에서 일본과 호주, 인도 성장주로 자금을 돌리라”고 조언했다.

지난 30일 미 증권거래소(SEC)가 중국 기업의 신규 기업공개(IPO) 절차를 중단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SEC는 중국 기업이 지배구조를 제대로 설명하고 중국 당국이 기업 활동에 간섭할 위험을 공개하지 않는 한 IPO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