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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금메달 건 쇼플리…증조할아버지·아버지의 '올림픽 恨'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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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잰더 쇼플리가 아버지 스테판이 제켜보는 가운데 연습을 하고 있다.<사진 출처=잰더 쇼플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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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2020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최종일 4라운드 경기가 펼쳐진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 위치한 가스미가세키 골프클럽 18번홀 그린. 금메달을 결정짓는 '골든 퍼팅'을 성공시킨 잰더 쇼플리(미국)가 그의 아버지 스테판 쇼플리와 함께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지독한 '가문의 올림픽 불운' 역사를 한번에 날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쇼플리는 합계 18언더파 266타. 이날 무려 10타를 줄이며 합계 17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로리 사바티니(슬로바키아)를 1타차로 제치고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도쿄올림픽 무대에서 뛴 것 만으로도 쇼플리는 증조할아버지 리쳐드와 아버지 스테판의 아쉬움을 풀었다. 하지만 내친김에 쇼플리는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에서 완벽한 아이언샷을 앞세워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쇼플리가 시상대 맨 위에 선 순간 아버지 스테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다. 독일 10종경기 대표로 올림픽을 준비하던 스테판은 1986년 11월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해 2년간 6번의 수술에도 왼쪽 눈 실명을 피하지 못했고 그의 올림픽 꿈도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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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플리의 아버지 스테판의 사고 소식을 다룬 독일 신문 기사.<사진=잰더쇼플리 홈페이지>


사실 '쇼플리 집안의 올림픽 도전사'는 쇼플리의 증조할아버지 리쳐드부터 시작됐다. 스테판은 한때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지만 그의 할아버지이자 쇼플리의 증조부인 리쳐드의 한을 풀기 위해 육상 10종경기 선수가 됐다. 셔펠레의 증조할아버지인 리쳐드는 전 독일 올림픽 국가대표로 VFB슈트트가르트에서 수준급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육상 선수로 1935년 독일 육상 챔피언에 오르는 등 40개 이상의 육상 타이틀을 거머쥔 스타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올림픽 대표로 뽑히고도 출전하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실명 이후 새출발을 위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스테판은 가장 무리가 없는 골프를 선택해 수준급 실력을 갖추게 됐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클럽 프로로 활동하며 아들 셔펠레를 최고의 선수로 키워냈다. 그리고 도쿄올림픽에서 셔펠레는 자신의 유일한 스윙 코치이자 아버지인 스테판과 힘을 모아 결국 시상대 맨 위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셔펠레는 "아버지의 올림픽 꿈은 1986년 음주운전자가 아버지의 차를 들이받으면서 짧게 끝났지만 도쿄올림픽에서 함께 한 순간은 정말 특별했다"고 돌아봤다. 슈테판은 앞서 "어떤 종목이든 최고가 된다는 건 우리 부자의 공통된 꿈"이라면서 "나는 사고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들이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한 바 있다.

셔펠레의 금메달은 일본에도 의미가 있다. 쇼플리의 어머니는 대만에서 태어난 뒤 2살 때부터 일본에서 자랐고 외조부모는 여전히 고모, 삼촌들과 함께 도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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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못이룬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룬 잰더 쇼플리가 스테판과 함께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 위치한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잰더 쇼플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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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을 따낸 로리 사바티니(슬로바키아)의 스토리도 감격스럽다. 이날 사바티니는 샷이글을 포함해 무려 10타를 줄였다. 올림픽 18홀 최저타 신기록. 합계 17언더파 167타를 기록한 사바티니는 순위를 15계단이나 끌어올리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적까지 바꿔가며 올림픽 출전의 의지를 보인 사바티니의 '인간 승리' 순간이다.

원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을 지닌 사바티니는 지난 2018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아내 마틴 스토파니코바의 국적을 취득했다. 세계랭킹이 낮아 남아공 대표로 뽑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유명한 프로골퍼들이 없는 슬로바키아의 상황에 따라 사바티니는 슬로바키아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최종일 무려 10타를 줄이는 '슈퍼샷'을 선보이며 꿈에 그리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다.

[가와고에 =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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