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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쥴리 벽화’ 알고보니…테일러 스위프트 향한 ‘여성 혐오’ 본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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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유력 대권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이른바 ‘쥴리 벽화’가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건물 외벽에 그려져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벽화가 2016년 호주 멜버른에 그려진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그린 벽화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1일 제기됐다.

멜버른 벽화는 테일러를 향한 ‘여성 혐오’ 사건을 계기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윤 전 총장 아내를 비방할 목적으로 해당 벽화를 따라 그렸다는 지적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풍자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 범주 내에 있다는 줄리 벽화 제작을 지시한 사람의 주장과 달리,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과 흡사한 그림과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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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서점 외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 중 일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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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 벽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금발에 푸른 색 눈동자를 갖고 있다. 그 왼쪽에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이어서, 왜 여성이 한국인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나왔다.

그런데 이 그림과 매우 비슷한 벽화가 2016년 7월 호주 멜버른에 그려진 사실이 인터넷 등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호주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러시석스(Lushsux)는 당시 한 건물 외벽에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성을 그려 놓고 ‘테일러 스위프트 1989~2016 : 사랑의 기억에서(In Loving Memory of… Taylor Swift 1989-2016)’이라는 글귀를 적었다. 살아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죽었다고 한 것이다. 이는 ‘테일러 스네이크(snake) 사건’ 때 발생했다.

◇칸예 웨스트 ‘페이머스’ 곡 비판받자 테일러 ‘뱀’으로 매도

이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MTV 뮤직 어워드에서 당시 신인 가수였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여자 뮤직비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런데 테일러가 수상 소감을 밝힐 때 유명 래퍼 칸예 웨스트가 무대에 난입해 “테일러, 네가 이 상을 받아서 기쁘긴 해”라면서 “근데 있잖아, 비욘세의 비디오가 역대 최고 비디오 중 하나야. 최고의 비디오라고”라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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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그래피티 작가 러시석스가 2016년 7월 20일 멜버른 한 건물 외벽에 그린 테일러 스위프트 벽화. '쥴리 벽화'와 상의 색상을 제외하고 사실상 같다.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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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와 칸예의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2016년 칸예는 ‘페이머스(Famous)’라는 곡을 발표한다. 가사엔 “테일러랑 섹스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그 X(bitch)를 유명하게 만들어줬거든”이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칸예는 뮤직비디오에 테일러를 본뜬 밀랍 인형을 알몸 상태로 내보내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상식 밖의 가사였고, 칸예는 ‘테일러와 사전에 통화를 하면서 동의를 얻었고, 아내 킴 카다시안에게도 허락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테일러는 “이 가사(bitch)는 나에게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 나를 비하하는 가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킴 카다시안이 나서 “테일러가 분명히 허락했다”며 해명 영상을 SNS(스냅챗)에 올렸다. 앨범 발매 이전 테일러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칸예를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가사를 듣고 “멋진 것 같다”고 호응하는 테일러의 음성이 나온다. 킴 카다시안은 트위터에 테일러를 ‘뱀’으로 모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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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오투(O2) 아레나에서 열린 영국 대중음악상 '브릿 어워즈' 시상식에서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29)가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글로벌 아이콘 어워드' 트로피를 들고 있다. 그는 영국 출신이 아닌 여성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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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뱀(snake)’ ‘거짓말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칸예 콘서트장에서 ‘페이머스’ 노래 중간 팬들이 “테일러 스위프트와 성교해(Fuck Taylor Swift)”를 연호하는 영상도 퍼졌다.

하지만 지난해 통화 영상이 편집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뒤바뀌었다. 원본에선 칸예가 ‘비치(bitch)’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칸예가 테일러에게 들려준 문구는 실제 가사보다 순화된 내용이었다. 테일러는 가사를 듣자마자 “가사 내용이 나쁘지 않지만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멋진 것 같다”라는 반응은 일부 가사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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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래퍼 칸예 웨스트.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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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그래피티 작가 러시석스가 멜버른 한 건물 외벽에 테일러에 대한 해당 벽화를 그린 것은 칸예와 테일러가 ‘페이머스’ 가사로 충돌하고, 테일러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을 때 나왔다.

당시 러시석스는 인스타그램에 해당 벽화를 올리고 “최근 테일러의 죽음은 가슴 아프다. (벽화에) 와서 그녀의 기억을 기리는 기념관에 꽃을 남겨두고 촛불을 켜라”고 썼다. 테일러의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벽화 앞에 꽃을 놓고 초를 켜는 영상도 찍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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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그래피티 작가 러시석스가 2016년 7월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성조기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있는 벽화를 그렸다. 지역 당국이 성평등 정책 위반이라며 지우라고 하자, 검은색 페인트를 덧칠해 이슬람 의상인 니캅과 부르카를 입고 있는 벽화로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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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러시석스, 벽화 그리고 “멍청하고 섹시한 힐러리”

러시석스는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성조기 무늬의 수영복(모노키니)을 입은 벽화를 그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벽화 사진을 올리고 ‘멍청하고 섹시한 힐러리’라고 썼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멜버른의 지역 당국은 벽화가 성평등 정책을 위반했다면서, 벽화를 지우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러시석스는 벽화를 지우는 대신 검은색 칠을 하고 클린턴의 눈만 남겨뒀다. 클린턴이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무슬림 여성들의 의상인 니캅과 부르카를 입은 벽화를 그린 셈이다.

◇빨간 색 하트 벽화도 멜버른에 원본 있어

‘쥴리 벽화’의 오른쪽에는 빨간 색 하트에 칼이 꽂혀 있고, 그 하트에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 오른 쪽에는 ‘아무개 의사’ ‘조 회장’ 등이 쓰여 있다.

빨간 색 하트에 칼이 꽂혀 있는 그림도 멜버른에 있는 벽화다. 2013년 멜버른은 100명 이상의 지역 예술가들에게 호시어 레인(Hosier Lane) 골목의 그래피티 작품을 새롭게 그리는 프로젝트를 벌였다. 그 중 한 작품이 빨간 색 하트에 칼이 꽂혀 있고, 하트 가운데에 ‘멜버른(MELBOURNE)’이라고 적힌 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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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서점 외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 중 일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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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에 있는 벽화.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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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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