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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연재] 헤럴드경제 '골프상식 백과사전'

[골프상식 백과사전 277] 도쿄올림픽 코스 가스미가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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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스미가세키 클럽하우스. [사진=IGF]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2020도쿄올림픽 골프 경기장은 도쿄가 아니라 위성도시인 사이타마(埼玉)현 가와고에(川越)시에 있는 가스미가세키(霞ヶ關) 동코스(파71 7447야드)다.

도쿄올림픽에서 도쿄가 아닌 이 골프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건 왜일까? 도쿄 도내에도 골프장이 있고, 도쿄만을 따라 친환경 퍼블릭 골프장도 몇 년 전에 개장했는데 말이다.

가스미가세키가 일본인들에게 전후 부흥을 상징하는 골프장이기 때문이다. 이 코스는 지난 1957년 10월24~27일간 캐나다컵, 즉 오늘날의 월드컵 무대다. 당시 일본은 급격한 산업화를 이뤄 전후 재건에 성공했지만 세계 2차 대전 패전국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었다.

국민들은 여전히 기를 펴지 못했는데 세계 최고 골퍼들이 모인 가운데 일본의 나카무라 토라키치-오노 코이치가 미국의 샘 스니드-지미 드마렛 조를 무려 9타 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중계된 골프 대회였다. 전승국인 미국을 격파하고 이겼다고 해서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고 우승 카퍼레이드까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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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에는 1957년 캐나다컵 시상식 사진이 걸려 있다.



피터 톰슨이 출전한 호주가 3위, 게리 플레이어의 남아공이 4위였다. 한국에서는 연덕춘-박명출이 출전해 꼴등(28위)했다. 캐나다컵 우승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서 골프장이 증설되고 골프 인구가 급증했다. 최대 2400여 곳에 이르던 일본 골프장의 호황은 이 우승이 도화선이었다.

일본은 1964년 하계 도쿄올림픽을 열면서 세계 스포츠 무대의 중심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그로부터 57년 만에 도쿄에서 올림픽을 열게 됐으니 일본 골프계는 영광의 현장에서 중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이곳을 개최지로 선정했다.

가스미가세키는 후지타 킨야와 일본 제일의 골프선수였던 아카보시 시로가 설계해 1929년 10월6일 개장했다. 하지만 회원들의 계속된 불만 끝에 개장 4년 뒤인 1933년에 영국의 코스 설계자 찰스 H. 알리슨이 초빙되어 개조했고, 그 뒤로는 불평이 쏙 들어갔다.

1930년대에 일본에 머문 알리슨은 일본 최고 코스로 여겨지는 고베의 히로노와 카와나 등 여러 코스를 만들었고 이들은 오늘날 명문 클래식 코스로 여겨진다. 턱이 높게 조성되어 빠져나오기 어려운 그의 벙커 제작 스타일은 ‘아리손 벙커’라는 일반 명사로 오늘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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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3 10번홀은 앞에 알리슨 벙커가 만들어지면서 난도가 높아졌다.



알리슨은 밋밋하던 코스에 여러 벙커를 추가하고 입체감을 높였는데 그중 파3 10번(189야드) 홀이 대표적이다. 호수를 건너 치는 좁은 그린을 가진 홀에 벙커를 신설해 그린을 가로막았다. 단순히 턱에 걸려 요행으로 온그린하는 게 아니라 파3 홀이라도 전략을 써야 하도록 디테일에 신경을 쓴 것이다.

1957년 캐나다컵(월드컵)을 개최한 외에도 이 코스는 내셔널타이틀인 일본오픈을 1933년부터 1956, 1995, 2006년까지 네 번 개최했으며, 1999년에는 일본여자오픈, 2010년에는 아시아아마추어챔피언십(AAC)도 개최했다. 거기서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가 우승해 이듬해 마스터스에 초청 출전했다.

2016년에는 톰 파지오가 아들 로건과 함께 와서 올림픽 개최를 위한 코스 리노베이션을 했다. 그 결과 투그린 시스템이 원그린으로 바뀌었고 현대 토너먼트 경향에 맞춰 코스도 대폭 늘렸다.

파지오는 9번과 14, 18번 홀은 거리를 달리 이용하도록 티잉 구역을 추가했다. 상황에 따라 파5 14번 홀은 596야드가 되기도 하고 632야드로 더 늘어지기도 한다. 요즘 선수들의 늘어나는 비거리를 대비해 선택형 티잉 그라운드를 조성한 것이다. 그린은 벤트그라스지만 티와 페어웨이는 코라이조이시아 잔디여서 국내 골프장과 비슷하다.

코스에 들어가려면 클럽하우스를 나와 높은 단에 오르듯 무사시노 언덕에 올라야 연습 그린을 밟게 된다. 코스는 대체적으로 키 큰 쿠로소나무가 빽빽이 우거진다. 중간에 큰 벙커들이 요소요소에 위치해 잘못된 샷을 막아서며 그린 주변에는 다이내믹한 벙커들이 빗겨나가는 샷을 잡아챈다. 그린은 대체적으로 거북등처럼 볼록한 형태여서 어프로치 샷의 정확성이 부족하면 정규 파온을 놓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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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홀 오른쪽 페어웨이 끝에 아베의 벙커가 있다. [사진=IGF]



1번 홀 오른쪽에는 유명한 ‘아베의 벙커’가 있다. 2017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때 아베 총리, 프로 골퍼 마쓰야마 히데키가 라운드했다. 긴장한 아베 총리의 두 번째 샷이 이 벙커에 빠져버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쓰야마는 두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린 상황이라 총리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샷을 하고 서둘러서 앞으로 나오다가 그만 높은 턱에서 벌러덩 뒤로 굴렀다. 토픽에 난 벙커는 깊이 1.5미터 이상으로 급경사여서 구를 만했다.

원래 310명의 남자 회원으로 시작된 가스미가세키 회원은 지금은 훨씬 많아졌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올림픽을 앞두고 성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관을 바꿔 지금은 남녀 회원 가입 제한이 없다. 시니어 골퍼들을 위해 골프백 택배 서비스가 정착돼 있다. 가와고에선 세이부 신주쿠선 사야마시역까지 보스톤백만 들고 오면 역에서 셔틀버스가 오간다.

바로 옆으로는 일본 황실이 만든 프라이빗 18홀 골프장 도쿄골프클럽이 있다. 회원이 극소수 상류층인 도쿄GC 회원들은 회원수가 많다는 이유로 가스미가세키를 ‘퍼블릭’이라고 놀린다. 하지만 캐나다컵에 이어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한 이들의 시기심에서 나온 푸념 같기도 하다.

세계 골프장 정보사이트인 영국의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m)의 2019~20년 랭킹에 따르면 가스미가세키 동코스는 일본에서 7위, 아시아에서는 14위로 평가했다. 이웃한 서코스는 일본의 최고 설계가로 꼽히는 이노우에 세이치가 3년 뒤인 1931년에 설계했다. 그러면서 일본 최초의 36홀 코스가 됐다. 서코스는 2000년에 카와타 타지오가 코스를 개조했다. 코스 순위에서 일본 18위, 아시아에서는 58위로 평가받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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