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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법정B컷]"편히 눈 감을 수 없어서"…다시 '피고인'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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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핵심요약
어릴 때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에게 학자금과 편지를 받았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리고 옥살이까지 한 대학생이 50년 만에 일흔의 노인이 돼 재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최근 재판부는 당시 수사가 위법했다며 재심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는데요. 그토록 두려웠던 법정을 다시 찾은 사연을 그가 직접 법정에서 생생하게 진술했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변호인 "1970년 4월 5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동대문서 경찰관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죠?"
A씨 "네 있습니다."
변호인 "50년도 더 된 일인데 체포된 날까지 기억하는 이유가 있나요?"
A씨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0년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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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도 더 지난 일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70대 노인 A씨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습니다. 그의 재심 청구를 도운 변호인의 질문에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했을 검사나 판사의 심문에도 마치 어제 일을 말하듯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가장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가 보낸 학자금 몇 푼과 편지에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가 졸지에 '간첩'으로 몰리고 모진 고문 후 옥살이까지 한 A씨.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던 아버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통신하고 자금을 수수한 것이 돼 유죄까지 선고됐는데요. 이 억울함을 혼자 간직해오다 5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A씨의 사연을 첫 심문기일 내용과 함께 지난 [법정B컷]에서 한 차례 자세히 소개해드렸었죠.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3월 14일자 [법정B컷]父 편지 한 통에 '옥살이'…50년 만에 법정 선 노인]

재심을 열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심문에서에서는 수사 과정의 위법성을 입증하는 변호인의 변론이 있었고 두 번째 심문기일에서는 당사자인 A씨가 진술하는 순서가 진행됐습니다. 어떻게 수사를 받았고 왜 자신이 경험한 사실과 전혀 다른 말들을 수사기관 그리고 법정에서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당시 경찰 수사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부족하나마 수사기록이라는 물증이 남았지만 A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입증해줄 증거는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사실상 그의 경험과 기억 뿐인 상황. 그렇기에 검사도 판사도 모두 그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이는 가운데 A씨는 변호인의 질문에 따라 과거의 아픈 기억을 하나하나 차례로 꺼내 놓았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A씨 "지금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날 아무 다른 얘기는 묻지도 않고 며칠 전 조사에서 부인했던 걸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때 주변에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했냐'거나 '아버지의 활동이 자랑스러운 듯 말을 했다고 한 적이 있냐'고 해서 그런 일은 없으니 계속 부인했는데 두 번 물어보지도 않고 양 팔목에 수건을 감고 포승줄로 저를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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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따르면 수사관들이 A씨에게 듣고 싶은 답은 단 한 가지, "북(북한)을 찬양했다"라는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혹시나 아버지가 친북단체에 가입한 것이 자신에게 혹여 불이익을 줄까 오히려 늘 비밀처럼 숨기고 살았습니다. 이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답을 정한 경찰의 수사는 무자비했습니다.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폭언과 구타 심지어 도구를 이용한 고문까지 했다고 A씨는 말했는데요. 이 대목에서 A씨는 어떤 고문을 어떻게 했는지 자신의 손과 발을 써가며 표현했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그리고는 두 다리를 팔 안으로 집어넣으라고 해서 했더니 겨드랑이에 파이프를 집어서 들었습니다. 수사관 두 사람이 드니 마치 짐승이 묶여 가듯 거꾸로 매달린 상태가 됐는데 하… 그런 상태로 책상 두 개 사이에 저를 걸쳐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얼굴에 큰 수건을 덮고 물을 부으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 죽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숨이 넘어갈라 하면 잠시 수건을 들어주더라고요. 잠시 헉헉 숨을 쉬면 이제 시인하라고 안 하면 다시 (고문을) 시작했습니다. 버텨봤지만 견딜 수준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하겠다'고 하니 묶은 상태로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 순간에도 너무 억울해서 그런 일이 없다고 사정을 하니까 아까 한 그대로 다시 고문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도저히 안 되겠구나 생각해 억지로 시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내용은 스스로도 "기억하면서도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잔혹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동물을 끌고 가듯 사람을 막대기에 매달아 진술을 강요하고 이도 모자라 물에 젖은 수건을 얼굴에 올렸다가 숨이 멎을만하면 잠시 걷어주는 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억울함보다 죽음의 공포가 커지며 있지도 않은 내용을 사실이라고 시인했다는 A씨. 그동안 침착하게 듣고 있던 판사들도 이 대목에서는 몸을 한층 더 앞으로 기울여 A씨의 진술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변호인 "경찰 조사 때 그렇게 고문과 폭행을 당했는데 경찰 조사 후에 검찰 조사로 넘어가잖아요. 그때라도 폭행이나 고문을 알리려 했었나요?"

A씨 "경찰에서 '검사에게 한번 더 조사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는 '검사님은 배운 것도 많으시니 억울함을 알아주시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처음 조사받는 날 검사님에게 "저 참 억울합니다"라고 말하니까 (손으로 길이를 표현하며) 이만한 몽둥이를 갖고 저를 툭툭 치는 겁니다. 정수리랑 어깻죽지 이런 곳을요. 그리고는 조서 내용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서명 날인하라고 그랬습니다."

변호인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출석하셨잖아요. 고문이나 폭행 사실을 알리려 해보지 않으셨나요?"

A씨 "법정에서 검사님이 있는데 고문을 받았다고 말하면 죄가 더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이 우선 됐고요. 실제로 맞은 거라던가 고문을 정확히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더 얘기하기 힘든 그런 심리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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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면 이 억울함을 경찰을 떠나 검찰 그리고 법원에서는 말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드는 의문을 변호인이 A씨에게 물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별로 다를 게 없어서 따질 수가 없었다는 게 그의 답입니다. 그래도 '더 배우신 검사님이니 내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수위만 다를 뿐 모욕과 무시라는 또다른 폭력. 그런 검사가 서 있는 법정에서도 "고문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말하는 것도 당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변호인 "재심청구인(A씨)는 조부(할아버지), 누이 모두 함께 기소된 걸 언제 알았죠?"
A씨 "저는 제 조사만 받았지 가족들도 재판받고 있다는 건 1심 재판이 시작된 날 법정에서 알았습니다."

변호인 "가족들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 알게 됐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A씨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죠. 조부님은 제가 두, 세살 때 아버지랑 떨어져 살게 된 후로 부모님보다 더 성의를 가지고 저를 키워주고 공부도 시켜준 그런 분입니다. 그런 소중한 분이, 70 넘은 노인네가 손자 때문에 법정에 끌려왔다는 게 가슴이 아파 대성통곡을 하니 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오히려 법정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더 큰 '고통'이었는데요. 그는 첫 재판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보살폈던 할아버지마저 재판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경찰에 체포된 후 줄곧 구속 상태였기 때문이죠. 일찍이 일본으로 아버지가 건너간 후 늘 자신을 보살펴주고 대학까지 보내줬던 할아버지였기에 여느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관계와 달랐는데요. A씨는 "일흔도 넘은 할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법정에 섰다고 생각하자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했다"고 회상하며 말을 잠시 이어가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검사 "1970년에 이런 일을 겪으셨다고 하셨는데요. 1998년에 문민정부가 선출되면서 재심 청구 기회는 많았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2020년에서야 재심 청구를 결정한 계기가 있습니까?"

A씨 "사실 재심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니 감수하고 없는 일처럼 묻고 가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제 주변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처에게도 아들에게도 자세히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 재판에 나오는 것도 멀리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서서히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혼자 이것을 묻고 가려니 그 억울함이…이 억울함을 묻고 가기에는 눈이 안 감길 것 같아서 재심 청구를 하게 됐습니다. 소란을 떨어 굉장히 죄송합니다."

당시 겪은 일들을 묻는 변호인의 심문을 마친 뒤 이어진 검사의 심문 차례. 남북 갈등이 첨예했던 군부 시절이 끝난 지도 한참 지난 지금 재심을 청구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는데요. 그에 대한 A씨의 '당연한 대답'이 인상 깊었습니다. "끝이 다가오는 인생에 억울함을 그냥 마음에 묻고 가기에는 눈이 안 감길 것 같아서" 스스로 밝힌 재심 청구의 이유입니다.

이 사건은 그간 엄혹했던 군부 시절을 지나 국가권력의 과오가 바로 잡힌 역사적 사건들과 달리 지극히 개인적이고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실을 말해도 누가 믿어줄지 어떻게 입증할지 늘 A씨는 막막했습니다. 혹여나 더 큰 고초를 겪지 않을지 늘 우려했기에 인생의 여정을 마무리해가는 지금까지도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편히 말할 수 없었다는 게 A씨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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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국가 권력으로부터 입은 피해를 '왜 이제야 말하냐'는 검사의 추궁에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A씨. 그는 억울함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 이유만큼 긴 시간 그를 억눌러온 국가 권력 그리고 이 법정에 대한 여전한 두려움이 그의 재심 청구를 늦춘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심문기일이 종료된 지 3개월 만에 재판부는 다시 재판할 필요성을 인정하며 재심을 결정했습니다. 재심 청구 과정에서 검사는 A씨 진술이 시간이 오래됐고 믿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했지만 재판부는 당시 수사기록과 A씨의 구체적인 진술에 비춰보면 재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21.7.15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개시 결정 中
이 사건 기록과 심문 결과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에 의하면 피고인이 1970년 4월 5일 또는 4월 6일 수사기관에 연행된 것은 피고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임의동행이 아닌 강제처분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이러한 동행 등에 앞서 수사관으로부터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고지 받았다는 등의 사정이 드러나 있지 않다. (중략) 이 사건 기록과 심문 결과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사정에 의하면 피고인에 대한 강제 연행은 긴급 구속의 적법성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은 강제 연행된 때인 1970년 4월 5일 또는 6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4월 8일에야 발부됐다. (중략) 이 사건 기록을 통해 인정되는 사정들에 비추어보면 동대문경찰서 소속 사법경찰관리들이 수사보고 등의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행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 사건 재심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재심대상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에 관하여 재심을 개시하기로 한다.

재판부는 △불법체포 및 구금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 수사보고(허위공문서작성) △당사자 참관 없는 압수수색(직권남용)이 있었다며 당시 수사가 위법했다는 A씨 측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습니다. A씨 진술 외에 기록이나 물적 증거가 없는 폭행 및 고문이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한 부분만 제외하고는 말이죠. 이 결정에 대해서는 검사도 불복하는 절차를 밟지 않으면서 A씨에 대한 재심 개시가 확정됐습니다. 처음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한 지 11개월 만입니다.

재심 개시는 결정됐지만 긴 시간이 흐르며 남은 물적 증거와 관련자의 진술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 이에 대해 A씨를 도와 재심 개시를 이끈 서채완 변호사는 "과거사 재심 사건은 당연히 긴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가해자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물적 증거가 없어진 상황에서 진행되는 게 대부분인 만큼 더욱 증거로서 가치가 있는 건 당사자의 진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과오를 수 십년 만에 바로 잡는 재판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사법부가 피해자의 권리를 보다 중점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재심 과정이 되도록 재심에서 부각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51년 전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그 장소에서 다시 법의 판단을 받게 된 A씨. 그 때는 꿈 많은 청춘이었을 대학생 A씨는 영문도 모른 채 법정에 끌려왔지만 이제 칠십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되어 '피고인'을 자청해 법정에 섰습니다. 두려움을 넘어 이제 그 속의 한을 풀기 위해 51년 만에 시작되는 A씨의 재심. 그의 긴 기다림에 대해 법원이 이번에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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