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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바늘공포에 백신 못맞는 그들···진짜 더 절박한건 이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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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북부 블랙클리의 브랜든 존스(33)는 지난 5월 중순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가 됐다. 곧장 달려가 주사를 맞고 싶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설 생각만 하면 두려움이 밀려와서다. 일종의 ‘광장공포증(Agoraphob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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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이 담긴 주사기.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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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피하려고 하는 증상인 ‘공포증(Phobia)’이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접종 목표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데일리메일은 존스가 겪고 있는 광장공포증을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이는 특정 장소나 상황에 대해 과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불안 장애다. 불안을 느끼면 현기증 등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한 번 불안을 느꼈던 장소나 그와 유사한 장소에 가는 것을 회피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18년간 광장공포증을 앓아온 존스도 그랬다. 오랜 치료와 상담으로 증상이 나아졌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 우려에 증상이 다시 악화했다. 백신 접종을 위해 몇 차례 용기를 내 현관 앞까지 갔지만, 결국 문을 열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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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영국 런던 거리. 광장공포증을 겪으면 인파가 오가는 공공장소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 한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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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6월 말 가족들이 줄줄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고, 존스도 감염 증상을 보였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존스의 부모는 경미한 증상을 보였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존스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검사도 못 받고,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결국 일주일을 집에서 앓다가 정신을 잃고서야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틀 뒤 숨을 거뒀다.

존스의 어머니 하이레이는 “내 아들은 백신을 신뢰했고, 백신에 의지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게 광장공포증이었다”면서 “존스와 같이 정신적·심리적으로 외출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더 쉽게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성인들도 주사 앞에만 서면 '얼음'…졸도하기도



백신 접종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가 ‘바늘 공포증(Needle phobia)’이다. ‘주사 공포증(Trypano phobia)’으로도 불리는데 심리적인 이유로 바늘을 보거나 상상만 해도 두려움을 느낀다. 심각할 경우 현기증 등 신체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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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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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의 신경과학자 사만다 얌마인도 최근 백신 접종 센터에서 기억을 잃었다. 어릴 때부터 바늘 공포증을 앓아온 그는 접종 예약 전부터 심리 상담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정작 주사 앞에서 얼어붙었고, 울다가 졸도했다. 그는 “백신의 효능을 전적으로 믿지만, 극복할 수 없는 공포증 때문에 주사를 맞는 게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캐나다 캘거리대 케이티 버니 박사에 따르면 이처럼 백신 접종을 피할 정도로 주삿바늘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각국 성인 인구의 10%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치료할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공포증이 심리적 불안에서 비롯되는 만큼 불안의 원인을 자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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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공포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주사 전 접종 장소에 머물며 환경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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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가 주사를 맞기 전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방법이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의 줄리에 리에스크 사회과학 교수는 “주삿바늘을 보고 긴장하게 되면 불안은 더 커진다”면서 “어린이들에게 치과 치료 중 장난감을 쥐어주듯 주사를 맞기 전 옆에 사람과 이야기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캐나다 정신건강센터 CAMH의 데이빗 그라처 정신과 의사는 “집에서부터 병원에 도착해 주사를 맞기까지의 과정을 미리 상상하면 주사 맞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제안했다. 그는 “주사 맞기 전 접종 환경과 익숙해지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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