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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지게질 지긋지긋" 빵 팔아 학비 낸 '빵돌이'···사진속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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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시작한 후 민주당의 가치와 신념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6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선언에서 한 말이다. 그는 ‘신념’, ‘집념’ 등의 키워드를 즐겨 쓴다. 지난 4월 펴낸 저서 『수상록』에서는 “생긴 건 소프트하지만, 집념이 있다”고 스스로를 묘사했다. 별명이 ‘미스터 스마일’일 정도로 늘 웃는 인상이지만, 옛 사진엔 집념의 형성 과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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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과 함께. 전북 진안 산골에서 태어난 정 전 총리는 어머니를 도와 산에 화전을 일구며 자랐다. 그는 "불타고 남은 나무 뿌리들을 캐내느라 손목이 얼얼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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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전북 진안 산골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해 “대부분의 기억은 배고픔을 참아내는 고통과 지긋지긋한 지게질이었다”고 회상한다. 형제들에 비해 키가 덜 자랄 정도로 나뭇짐을 자주 졌고, 마을에 흉년이라도 닥치면 밀기울(밀을 빻은 뒤 남은 찌꺼기) 수제비나 고구마 하나로 주린 배를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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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초등학교 시절(둘째줄 맨 왼쪽이 정 전 총리). 그는 초등학교에서 월반해 1년 일찍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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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선친은 입버릇처럼 “반드시 가문을 빛내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5대 민의원 선거가 열렸던 1960년 10살 정세균은 읍내에서 본 선거 벽보 앞에서 “나중에 크면 저 벽에 내 얼굴이 그려진 벽보를 붙여야겠다”고 다짐했다. 36년 뒤 15대 총선에서 ‘벽보의 꿈’을 이룰 때까지 인생은 산 넘어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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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에서 일해 '빵돌이'라 불리면서도 학생회장을 지냈던 고교 시절 정세균 전 국무총리(왼쪽 아래가 정 전 총리). 그는 "교내의 작은 불합리에 저항해본 당시 행동은 집단적 궐기의 가치에 대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고 회고한다.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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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정식 중학교가 없어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고등공민학교’에서 공부하며 검정고시로 ‘중졸’이 됐다. 고등학교는 두 번을 옮겼다. 처음 다닌 무주 안성고는 배울 게 많지 않다는 생각에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전주 공업고등학교로 옮겼지만,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쉽던 터에 “절대 바로 취직하지 말고, 대학에 가라”는 은사(故 한기창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얻어 전주 시내 인문계 고교인 신흥고 교장실을 무작정 찾아갔다.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영어·수학 모의고사를 치러 입학 허락을 받았다. 학교 매점에서 빵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다 ‘빵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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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될 당시.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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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법대 졸업식에서의 정세균 전 국무총리.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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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끝에 고려대 법대(71학번)에 진학했고 1973년 총학생회장이 됐다. 정치로 입문에 앞서 인권변호사가 되겠다는 계획은 “민주헌법이 아닌 유신헌법을 공부해 합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친구의 말에 접었다고 한다. 기자의 길도 생각했지만 “긴급 조치로 언론도 재갈이 물려 있던 시절”이라 접었다. 결국 사회 첫발은 1978년 종합무역상사인 쌍용에 취직해 샐러리맨으로 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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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 군복무 시절 모습. 정 전 총리는 경북 안동에 있던 육군 제36사단에서 3년 복무 끝에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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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최혜경 여사와는 대학교 3학년 때 미팅에서 만났다. 정세균은 군대 3년을 기다린 최 여사와 신입사원 시절 결혼했다.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출신인 최 여사의 부친은 훈장까지 받은 독립운동가였다. 장인은 딸이 호남의 가난한 집 아들과 혼인하는 걸 마땅찮아 했지만 이화여대를 졸업한 ‘신여성’ 장모의 후원 덕에 결혼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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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쌍용 미국 주재원 시절 가족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찍은 사진. 정 전 총리는 ″미국 주재원 생활은 참 좋았다″면서도 ″그렇다고 눌러 살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들을 강제로 미국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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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1990년까지 쌍용의 미국 주재원 시절을 그는 “나빴던 위장까지 좋아질 정도로 좋았던 때”로 기억한다. 미국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꿈을 포기하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거야”라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들이 미국에 살게 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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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쌍용 미국 주재원 시절. 1988년 미국 롱비치항에 입항한 쌍용 시멘트 수출선에 올라 하역 작업을 주관하는 모습.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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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입문 결심을 굳힌 데는 선거공영제를 확대한 1994년 ‘통합선거법’ 제정의 영향이 컸다. “이제 돈 안 드는 선거가 보장됐구나”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1995년 DJ가 영국에서 돌아올 무렵 회사에는 사표를, 당에는 입당 원서를 냈다. ‘DJ키즈’ 정세균은 이듬해 고향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이른바 ‘무진장’)에서 처음 당선된 뒤 내리 4선했다. 19대 총선 때 ‘정치1번지’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긴 건 대선 도전의 발판을 만든 승부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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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처음 출마한 총선인 1996년 제15대 총선 당시 벽보와 공보물 표지. 그는 고향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이른바 '무진장')에 출마해 당선된 뒤 그곳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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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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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2002년 그의 대선 캠프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깊어졌다.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지며 당 안팎에서 후보 교체 요구가 거세지던 국면서도 그는 캠프를 지켰고, 2004년엔 탄핵소추안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의장석을 점거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 28일 TV토론의 ‘그때 그 시절’ 코너에 점거 농성 3일째 새벽에 찍힌 한 장면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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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정세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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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막기 위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의장석을 지키고 있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 정세균 캠프



2016년 6선이 된 정세균은 국회의장이 돼 의장석에 ‘합법적’으로 앉았다. 그 사이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2008년 통합민주당 대표 등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까지 지낸 뒤 그의 별명은 ‘대통령 빼곤 다 해본 사람’이다. “대통령까지 하려는 건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니냐” 물음에 정 전 총리는 “대통령은 ‘벼슬’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지난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는 “세 분의 대통령을 모시면서 대통령은 고통스럽고 헌신을 요하는 자리란 걸 잘 알게 됐다”며 “그분들께 배운 것을 국민들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데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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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당시 국회의장)가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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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 3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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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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