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신선이 사랑한 서해의 보석… 내 마음까지 붉게 물들이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여행이야기]최치원의 고군산군도

동아일보

고군산군도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서해낙조. 명사십리로 유명한 선유도 바다와 하늘이 온통 불바다를 이루고 있다.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유 8경’ 중 첫 번째로 거론되는 명소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산 앞바다에 둥둥 뜬 섬들인 고군산군도로 간다.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km)가 있는 곳이자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대장도 등 여러 섬이 다리로 연결돼 한 몸처럼 된 곳이다. 임진·정유 전쟁 당시 이순신 장군이 머문 수군 진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수군 진지가 지금의 군산으로 옮긴 이후 이 섬들은 ‘옛 군산도’, 즉 고군산군도가 됐다. 자금은 개벽 천지가 된 고군산군도로의 여행은 이곳과 인연이 깊은 역사적 인물과 함께한다. 동행하는 ‘스토리 여행’의 주인공은 유선(儒仙·유학자 신선)으로 추앙받는 고운 최치원(857∼?). 우리나라 각지에는 1000여 년 전 통일신라 말기의 인물인 최치원이 남긴 흔적이 적잖게 있다. 그런데 유독 군산과 고군산군도 일대에서 그의 탄생 설화를 비롯해 진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온다.》

○자천대에 숨겨진 최치원 문서

동아일보

군산시 하제포구(옥서면 선연리)에 있다가 옥구향교(옥구읍 상평리)로 이전된 자천대. 정치개혁안인 시무 10여 조 등으로 신라를 개혁하려다가 좌절한 최치원이 독서로 시름을 달래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치원의 자취를 좇아 처음 찾은 곳은 자천대(紫泉臺). 최치원이 노닐던 정자로 소개한 조선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서해안에 있으며, 지세(地勢)가 평평하고 넓으며, 샘과 돌을 즐길 만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고군산군도가 눈앞에 보이는 하제포구(군산시 옥서면 선연리)가 바로 그곳이다. 원래는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대규모 간척공사(1920∼1923년)로 육지로 변한 후, 1934년 일본군이 군산비행장을 건설하면서 하제포구 바위산에 있던 자천대는 옥구향교로 이전했다. 원봉연 군산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일대에 아직도 남아 있는 한 바위산을 가리키며 “원래의 자천대와 비슷한 형태”라며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택리지’(1751년)의 저자 이중환도 자천대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작은 산기슭 한 줄기가 바닷가로 뻗어 들어가는데 그 위에 두 개의 돌함이 있었다. 신라 때 최치원이 태수가 돼 함 속에 비밀문서를 감춰두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최치원이 자천대 돌함에 숨겨놓았다는 문서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최인학의 ‘조선전설집’(1977년)에서는 석룡(石龍)으로 불리는 이 돌함은 가뭄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구경하러 왔다고 전한다. 유학자이면서도 신선의 면모를 강하게 풍긴 최치원이기에 가능한 설화인 듯하다.

동아일보

옥구향교 내 문창서원에 봉안한 최치원 영정 앞에서 제례를 올리는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경주 출신 6두품 집안, 당나라에서 성공한 중국 유학파, 부패한 신라를 개혁하려던 정치인, 필력으로 ‘황소의 난’을 물리친 대문장가 등 이력이 화려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교, 불교, 도교에 통달해 3교 모두에서 두루 흠모하는 선각자라는 점,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났던 시대의 풍류가라는 점이 그의 진짜 매력일 것이다. 그는 ‘난랑비서’(화랑 난랑을 위해 세운 비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이른다. 이는 3교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고 했다. 삼교의 핵심적 가르침이 이미 우리 고유의 풍류도(風流道)에 담겨 있다는 파천황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최치원 당대의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백성들을 잘살게 하고 싶었던 그의 노력은 부패한 정치권력에 의해 좌절됐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을 노니는 풍류 생활이 시작됐다. ‘옥구구지(沃溝舊誌)’에서는 “최치원이 모국에 돌아왔을 때 세상이 극도로 어지러워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홀로 자천대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독서삼매로 시름을 달랬다”고 전한다.

최치원은 망해가는 신라를 보면서 “계림(鷄林·신라)은 황엽(黃葉·누런 잎)이고, 곡령(鵠嶺·고려)은 청송(靑松·푸른 솔)”이라고 말했다고 한다(‘삼국사기’).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가 지은 도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망국의 길을 가던 당나라를 현장에서 목격한 바 있는 최치원이 시대의 변화를 모를 리 없었다.

○황금돼지와 하늘 별자리 규성(奎星)

동아일보

고군산군도 가장 핵심 자리에 서 있는 망주봉. 젊은 부부가 천년왕국의 새 지도자를 기다리다가 바위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치원은 자천대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미래의 고군산군도를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고군산군도에는 최치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최치원은 뗏목 같은 풍선(風船)을 타고 섬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새만금방조제 도로를 쭉 따라가면 야미도를 거쳐 신시도로 바로 이어진다.

신시도는 최치원이 한때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진 섬이다. 그는 신시도에서 우뚝 솟아 있는 월영봉(198m)을 명산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산 정상 부근에 돌담으로 거처를 만들어 월영대라 이름 짓고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월영봉은 고군산군도 ‘선유 8경’ 중 하나로 가을 단풍이 장관을 이루는 명승지이기도 하다. 최근 신시도에는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이 개관했다. 고군산군도에서 유일하게 대형 숙박시설을 갖춘 이곳에 묵으면 휴양과 함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전동 스쿠터 등을 이용해 최치원 관련 설화가 담긴 고군산군도 곳곳을 찾아다녀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신시도에는 월영대 외에도 최치원이 크게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고 하는 대각산(大覺山)과 지풍금 마을 뒷산의 최치원 신당 터가 있다. 신시도 주민들은 최치원 신당에서 매년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 신당의 존재를 기록한(‘조선무속고’) 이능화는 “섬사람들이 선생의 인격을 사모해 사당을 세우고 천신(天神)처럼 받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최치원을 신으로 받든 전국 유일의 신당인 것이다. 아쉽게도 신당은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건설로 인해 쪼개진 절개지 위에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신시도에서 섬 연결도로를 이용해 무녀도를 거쳐 선유도로 들어가면 최치원의 탄생 설화가 담긴 금도치굴이 있다. 이곳은 군산 내륙의 내초도(섬이었으나 육지로 변함) 금돈시굴(金豚始窟)과 함께 최치원을 시조로 받드는 경주 최씨가 ‘돼지 최씨’로 불리게 된 설화와 연결된다. 최치원이 황금빛 돼지가 사는 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사람이 돼지 어미에게서 태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는 최치원이 동양의 별자리 중 하나인 규성(奎星·안드로메다 별자리)의 기운을 이곳에서 받아 태어난 것을 비유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16개 별로 구성된 규성은 ‘하늘 돼지(天豕)’로 불리는데 문장과 문인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취급됐다. 결국 최치원이 돼지 어미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은 최치원이 문장가의 기운을 타고났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미래의 희망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다

동아일보

선유도 바닷가에서 갯벌체험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풍수에도 밝았던 최치원은 고군산군도의 특이한 배치에 주목했을 수도 있다. 고군산군도는 선유도 망주봉을 중심으로 여러 섬이 빙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선유도와 연결된 대장도 대장봉(142.8m) 정상에서 굽어보면 이런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선유도 망주봉이 연꽃 봉우리이고 주위 섬들이 연잎으로 감싸고 있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암벽으로 된 암·수 봉우리가 치솟아 있는 망주봉에는 천년 도읍을 건설할 왕을 기다린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새 나라를 건설할 왕이 북쪽에서 선유도로 온다는 말에 젊은 부부가 나란히 서서 기다리다 지쳐 바위로 굳어졌다는 전설이다. 또 망주봉을 중심으로 천년왕국의 궁궐이 들어선다는 예언은 이곳 사람들에겐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새 궁궐의 서문(西門)은 관리도 쇠코바우가 되고, 북문(北門)은 방축도 구녕바위, 동문(東門)은 선유도 나매기(남악리)의 금도치굴, 남문(南門)은 신시도의 구녕바위로 설정됐다.

그러나 섬이 왕국의 도읍지가 되기는 어렵다. 이곳이 육지가 돼야 한다. 조선시대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1754∼1825)는 이 일대가 앞으로 뭍으로 변한다고 예언했다. 그는 “수저(水低) 30장(丈)이요, 지고(地高) 30장(丈)이라”고 했다. 군산과 변산의 앞바다가 30장(약 90m) 깊이로 물이 빠지고 해저의 땅이 30장 위로 솟구친다는 뜻이다. 전북 사람들은 새만금방조제가 놓인 바다가 육지(서울 면적의 3분의 2 크기)로 변하게 됨으로써 이서구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놀라워들 한다.

동아일보

고군산군도 대장도의 대장봉에서 내려다본 전경. 선유도(왼쪽)를 중심으로 주위 섬들이 빙 둘러싸듯 배치된 모습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선유 8경 중 제1경인 낙조를 감상하면서, 이 일대가 육지로 변신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천년왕국 전설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다가 땅으로 개벽되는 새 세상을 최치원은 미리 보았던 걸까.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글·사진 군산=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