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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정시행의 뉴욕 드라이브] 뉴욕 관광명소가 ‘죽음의 계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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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뉴욕 맨해튼의 새 관광 명소인 허드슨 야드의 상징물 베슬(Vessel)이 29일 14세 소년 투신 사고 직후 폐쇄되며 폴리스 라인이 쳐진 모습. /뉴욕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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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의 관광 명소인 허드슨 야드 베슬(Vessel). 높이 45m의 황동색 벌집 모양 예술 건축물로, 정글짐처럼 얽히고설킨 계단 2500개를 올라가며 맨해튼과 허드슨강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전망탑이다. 2019년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드윅 설계로 2억달러(약 2400억원)를 들여 세웠으며 ‘뉴욕의 에펠탑’으로 불린다.

이달 초 입장료 25달러(약 2만8000원)를 내고 16층까지 올라가는데 오금이 저렸다. 채광과 조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계단 난간이 투명 유리로 돼있는 데다, 난간 높이도 기자의 명치쯤 올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다섯 살 아이가 발꿈치를 들면 정수리가 난간 위로 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용돌이 치는 계단이 비현실적인 깊이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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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야드 베슬의 내부 모습. 계단을 굽이굽이 올라가며 맨해튼과 허드슨강 등을 조망할 수 있기도 하지만, 건물 자체의 독특함을 즐기려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연이은 투신 사고 때문에 혼자서는 방문할 수 없게 돼있었는데, 가족과 함께 방문한 14세 소년이 갑자기 뛰어내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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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허드슨 야드 베슬의 유리 난간에 기대어 사진 찍는 관광객들. 높이 1.2미터 정도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뛰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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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고가 터졌다. 지난 29일 낮(현지 시각) 14세 소년이 베슬 8층 난간에서 몸을 던져 사망했다. 그의 부모와 할머니, 누나가 곁에 있었지만 손쓸 새 없이 갑자기 뛰어내렸다고 한다. 소년의 신원과 투신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장은 사람들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베슬 측은 “사고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한다”며 즉각 건물을 폐쇄했다. 뉴욕시는 베슬의 대중 개방을 영구 불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완공 2년 된 베슬의 투신 사고는 벌써 네 번째다. 2020년 2월 19세 남성이 처음 투신한 이래 2020년 12월 24세 남성, 2021년 1월 살인 혐의로 수배를 받던 21세 남성이 잇따라 뛰어내려 숨졌다. 공교롭게 모두 젊은 남성이었다. 이 때문에 베슬은 1월 폐쇄됐다가 4개월 만인 5월 다시 개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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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층 꼭대기에서 안쪽으로 내려다본 허드슨 야드의 베슬. 독특하고 비현실적인 구조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베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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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슬 개발사와 건물주는 “방문객을 들이려면 난간을 높이는 보강 공사를 해야 한다”는 시민과 전문가의 요구를 “미관을 해칠 수 있다”며 거부했다. 대신 혼자 온 방문객의 입장을 허용하지 않고, 보안 요원을 3배 증원해 배치했다. 하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아름다움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킨 결과는 참혹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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