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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쥴리' 벽화 논란, 이것이 검증인가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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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졌던 서울 종로구 한 서점 건물 외벽에 30일 문구 부분이 흰색 페인트로 지워져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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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에 대한 일각의 공세가 선을 넘고 있다. 김씨의 위법행위 유무를 가리는 정당한 검증이 아니라 사생활을 들추는 비방이 쏟아졌다. 사실 확인도 없이 결혼 전 사생활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벽화까지 서울 도심에 등장했다.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벽화 문구를 두고 선을 넘는 네거티브일 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이자 여성혐오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증의 대상과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후보 가족 사생활이 검증 ‘대상’인가

대선 국면에서 각 후보자의 윤리와 도덕성 검증은 필수불가결하다. 가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다만 가족 검증은 위법이나 비위 행위에 국한돼야 한다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예를 들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검증대에 올랐다. 실체를 놓고 사생결단식 공방이 벌어졌지만 누구도 후보 가족의 병역비리가 검증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쥴리 벽화’로까지 이어진 김씨를 향한 공세는 가족 검증의 정당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X파일’이라는 일부 지라시를 통해 그가 ‘과거 유흥업소에 종사했다’는 가십거리 의혹이 나왔다. 이후 몇몇 유튜브 채널은 전직 검사와의 동거설을 쏟아냈다. 결혼 전 사생활이 검증이라는 미명하래 사실확인도 없이 쏟아졌다. 합리적 검증 대상인 논문 표절이나 주가 조작 관여 의혹도 제기됐지만 선정적인 사생활 들추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묻혀버렸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유권자한테 더 유용한 정보는 윤 전 총장이 공직자였을 때 그 지위를 이용해서 김씨가 이득을 취한게 있었는지 여부”라며 “윤 전 총장 자체를 검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공직 후보의 권력을 남용한 경우 등을 파헤치는 건 중요한 검증이지만 개인의 (사생활) 문제는 네거티브고 비방”이라고 말했다.

■선을 넘은 비방…여성혐오까지

더욱 문제는 김씨를 향한 일부 공세가 여성혐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인의 유흥업소 종사·동거 의혹을 거론하며 윤 전 총장이 대선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는 정조 관념과 맞닿아 있다. 김씨 사생활을 계속 비방해온 한 유튜브 채널은 ‘검증 보도’라는 명목으로 “밤의 여왕” “‘성상납” 등의 어휘까지 사용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는 “여성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면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벽화는) 남성들의 목록을 나열해 성적 문란함 또는 성을 이용해 남성의 권력에 기대려고 하거나 권력을 획득하려는 여성의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다”며 “이는 그려진 사람이 누구인가와 상관없이 성차별적 행위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비난 방식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사람들의 말초적 감각을 이용해 혐오를 확산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도 이날 출입기자단 문자메시지를 보내 “최근 스포츠계와 정치 영역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성 혐오적 표현이나 인권 침해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생활 비방에 가려진 것들

전문가들은 김씨를 향한 인권침해적 비방으로 정작 중요한 검증이 가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수현 대표는 “(후보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한국 사회에 어떤 구조가 문제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만 교수는 “코로나19 등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이런 ‘사이드’ 문제로 공방하는 게 안타깝다”며 “보통의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이날 “검증이 아니라 인격침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고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최고위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하지만 인격침해의 금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며 지도부의 입장을 전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사실 확인도 안 된 인격살인과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나 악의적 비하는 대한민국 정치가 단호히 배격해야 할 과거로의 회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탁지영·유설희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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