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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박원순 폰 공개 요구에…박원순측 "피해자에 입증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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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족 측이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로 한 것과 관련, 여성계와 유족 측 간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유족 측 대리를 맡은 정철승 변호사는 전날 여성정치네트워크가 “박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를 공개하라”고 한 데 대해 “입증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한 성희롱이 성폭력의 범주에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도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철승, “안 했다는 걸 입증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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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승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사진제공=한국입법학회]



30일 정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날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논평에 대해 “유족에게 휴대전화를 공개해 ‘성폭력 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게 요지”라며 “상식적으로 ‘무엇이 있다(존재)’는 것을 증거를 통해 주장할 수는 있지만 ‘무엇이 없었다(부존재)’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피해를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하는 게 당연하다”며 “피해 여성 측에서 증거를 제시하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거나 증거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식으로 진행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의 주장은 전날 여성정치네트워크 측에서 낸 논평에 대한 응답 성격이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유족과 정 변호사에게 “진실을 밝히고 싶다면 서울시에서 인계받은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를 공개하고, 경찰이 다 발표하지 않은 수사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들을 모두 공개하도록 요구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가진 진실의 열쇠는 보이지 않으면서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와 그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인 기자를 공격하는 것은 사실을 가리기 위한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도 입증책임 있는 건 마찬가지



중앙일보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사건 피해자를 대리했던 김재련 변호사가 29일 올린 페이스북 글.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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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 책임은 소송을 제기해 주장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말은 박 전 시장의 유족 측에도 그대로 돌아갔다. ‘성희롱 사실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고소를 결정한 건 유족 측이어서다. 피해자를 변호했던 김재련 변호사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소송을 제기한 자가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고, 입증에 실패하면 패소하고 소송비용도 부담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글을 올렸다.

김 변호사는 오히려 ‘과거 인권위의 결정이 보수적이었다’는 입장이다. 그는 “인권위에서 수개월에 걸쳐 전문 조사관들이 투입되어 피해자 진술, 참고인 진술(피해자에 대해 적대적 참고인 포함), 객관적 증거자료 확보 등을 토대로 하여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오히려) 사망한 박 시장이 방어권 행사할 수 없음을 고려해 인권위가 최대한 신중하게 조사·판단했고, 그 바람에 실제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최소한만 인정된 아쉬운 결정”이라고 썼다.

반면 유족 측은 지난 1월 인권위의 결정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 변호사는 “성폭력은 형사처벌대상이기 때문에 인권위가 아니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할 일”이라며 “전문적인 조사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인권위와 기자 모두 사건에 대해 단정,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희롱, 넓은 의미의 성폭력”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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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낸 논평. [여성정치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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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의 행위가 성폭력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다. 정 변호사는 “성폭력방지법을 보면 성희롱을 포함하지 않는다”며 “성희롱을 했는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데, 일반인들이 가진 의미나 이해를 넘어서서 성희롱은 성폭력이라고 자의적으로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전날 정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어떤 여성이 ‘남자가 여자를 쳐다보며 음흉한 상상을 하는 행위도 강간’이라고 마음대로 의미를 정한 후, 길 가다가 어떤 남성과 무심코 눈이 마주치자 온 동네에 ‘그 남성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떠드는 것”이라며 여성단체를 비판했다.

그러나 여성정치네트워크는 “성폭력이라는 용어는 강간, 강제추행만을 한정적으로 의미하는 법정 용어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성폭력이란) ‘성을 매개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해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고통을 야기하는 폭력 행위’라는 광의(廣義)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며“사회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가 채택한 ‘성폭력’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협소하게 해석해 고의로 트집 잡은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공방은 지난 28일 정 변호사가 박 전 시장의 유족을 비롯해 일간지 기자 A씨를 고소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유족 측이 지난 4월 인권위를 상대로 권고 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낸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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