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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흙수저에서 한국 최고 부자에 오른 카카오 '김범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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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제공=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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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업계에서는 그가 흙수저 출신이라는 점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IT산업 초창기 시절 PC방에서 시작한 그가 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가난했던 유년시절 = 김범수 의장은 1966년 3월 서울에서 2남 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할머니를 포함해 총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을 정도로 가난했다.

아버지는 공장노동자로, 어머니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돈을 벌며 생계를 꾸려갈 정도였다.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을 ‘가난’으로 꼽을 정도였지만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냈다.

성인이 된 그는 1년 재수생 생활을 한 뒤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입학했다.

이는 김범수 의장이 향후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됐다.

대학 시절부터 초기 PC 통신 시절 인터넷에서 가능성을 봤던 그는 대학원에서 PC 통신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컴퓨터를 활용해 새로운 세상에서의 성공을 이때부터 예견했다.

1992년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같은 해 삼성SDS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열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서울 행당동 한양대학교 앞에서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 ‘미션 넘버원’을 오픈하기도 했다.

PC방 사업이 성공 가도를 달리자 김범수 의장은 삼성SDS를 퇴사하고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PC방에서 그가 이룬 업적은 모든 컴퓨터를 한 자리에서 관리할 수 있는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 제작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만든 플랫폼은 곧 대박으로 이어졌고, 당시 연령대의 평균치를 웃도는 자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게임 사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서울 테헤란로 뒷길에 작은 사무실을 차려 회사를 설립했다.

1998년 11월 오픈한 이 회사는 현재 NHN의 모태 기업이면서 게임 포털의 부흥을 이끌었던 ‘한게임’이다.

한게임은 설립 1년 6개월 만에 1000만 명의 회원을 모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동시에 수익모델은 없는 상황에 회원 수만 늘어나니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던 김범수 의장은 대학 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 네이버 GIO와 손잡고 한게임과 네이버를 합친 NHN을 탄생시켰다.

한게임은 초창기 NHN의 수익 대부분을 담당하며 국내 포털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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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원동력 ‘카카오톡’ = 2007년 김범수 의장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8년 회사를 떠나면서 벤처기업 ‘아이위랩’을 인수하며 재기를 마련했다. 아이위랩은 현재의 카카오의 모태 회사다.

그는 PC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동영상과 사진 등 콘텐츠 공유가 가능한 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가 현재도 국내 모바일 대표 메신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은 출시하자마자 대박을 기록했다.

회원 수는 반년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고 1년째에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때 김범수 의장은 아이위랩의 사명을 아예 카카오로 변경하며 브랜드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한게임 때처럼 수익모델이 없던 카카오톡은 이내 적자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한 번의 경험이 있던 김범수 의장은 게임업계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방준혁 넷마블ㆍ코웨이 의장 등과 만나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12년 중국 텐센트로부터 720억 원, 위메이드에서 200억 원 등 총 920억 원가량의 투자를 유치하며 자금난을 해결했다. 같은 해에는 70억 원 흑자를 기록하고 이익을 수백억 원 규모까지 늘리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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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 자산가로 올라선 김범수 = 2014년은 김범수 의장은 IT 산업계에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 카카오톡이 경쟁 메신저와 경합을 벌이고, 해외 시장에서는 네이버의 ‘라인’이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 김범수 위기론이 제기됐다. 그는 모바일 인터넷 시대의 가능성을 보고 다음과의 합병을 선택했다. 불과 수년 전 자신이 몸담고 있던 NHN의 최대 경쟁사다.

사명은 ‘다음카카오’로 결정됐다. 본인이 설립한 회사의 이름을 포기한 채 오로지 서비스만을 위한 결정이었다. 법인명은 잃었지만, 다음의 콘텐츠와 카카오의 트래픽을 합쳐 1위였던 네이버를 밀어내기 위한 큰 그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합병 이후 1년 만에 사명을 다시 카카오로 변경했다. 이와 동시에 회사를 임지훈 대표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카카오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하며 다양한 계열사의 성장과 스타트업 인수합병을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카카오는 다양한 자회사들의 유료서비스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큰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현재 카카오는 계열사 118개, 시가총액 66조 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김범수 의장의 개인 자산만 15조4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상장도 예정돼 있다. 이 경우 모회사인 카카오의 몸값도 반사이익을 통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카카오의 주가가 뛰면 김범수 의장의 개인 자산은 20조 원까지 불어나 국내 대표 자산가로 장기간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라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야 말로 그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이투데이/조성준 기자(tiatio@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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