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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프랑스 석학 브뤼노 라투르가 말하는 코로나 시대 지구생활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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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는 어디에 있는가
브뤼노 라투르 지음·김예령 옮김 | 이음 | 212쪽 | 2만원


어느 날 편치 않은 꿈을 꾸고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라는 사내가 거대한 벌레로 변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냉대한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생긴 상처가 악화된 그레고르는 죽은 뒤 내다버려지고, 가족들은 새집으로 이사간다. <변신>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그레고르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다는 감정만큼은 대체로 공유될 것이다.

프랑스의 학자 브뤼노 라투르(74)는 <변신>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바퀴벌레-되기는 내가 내 자리를 탐지하고 현재의 내 위치를 포착하는 데 꽤나 유용한 출발점을 제공”한다고 본다. 바퀴벌레목의 근연종인 흰개미는 흙을 씹어서 소화한 후 점토로 만들어 이를 거대한 둥지의 재료로 사용한다. 집은 흰개미의 내적 환경인 동시에 외부 공간이다. 흰개미는 집에 격리돼 있으면서도 집을 확장해 어딘가로 향한다. 흰개미는 나무, 바람, 비, 가뭄, 바다, 강 등 “존재에 스며들어 있고, 그것들의 궤적과 겹쳐져” 있다. 라투르는 “행복한 그레고르 잠자를 상상해야만 한다”면서, ‘벌레-되기’를 거부한 그레고르의 부모, 여동생이야말로 ‘무정한 비인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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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경험을 자신의 사상 체계와 엮어낸다. | 이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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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는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꼽힌다. 과학과 인문학의 학제적 연구인 과학기술학(STS)의 대가인 그는 자연과 인간을 구분하는 서구식 근대 관점을 재검토해왔다.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ANT)은 기존의 생태주의와도 다른 결을 보인다. 그는 멸종위기의 동식물을 보호하거나 동물권을 강조하는 걸 넘어 석탄, 세균, 이산화탄소도 행위자로 보고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는 지난 1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라투르의 신작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격리를 경험하고 기후위기의 심화를 목격한 뒤 이를 자신의 이론 체계에 접목해 자유롭게 써나간 에세이다. 체계적인 서술이 아니라서 라투르의 사유에 익숙하지 않다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역으로 라투르 사상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도 있다.

라투르는 자연이 섭리적으로 주어졌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더 과격하게 말해 “‘환경’이라는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환경’이란 개념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와 그것을 둘러싼 주변을 분리하는 경계선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등산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폐를 채우는 산소는 무수히 많은 숨은 존재들이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태양으로부터 등산객을 보호하는 오존층 역시 수십억년에 걸친 박테리아 행위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가 벽지의 산을 홀로 오르고 있다 해도, 그는 혼자가 아니다. 라투르는 행위자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바깥을 우주(Univers), 안쪽을 지구(Terre)라고 부른다. 안쪽에 거주하는 걸 받아들이는 자들은 ‘지구생활자’다. 물론 지구생활자에는 인간 행위자뿐 아니라 동식물, 대기, 땅, 바다 등 비-인간 행위자가 포함된다. 라투르의 생각이 지구를 거대한 자동조절 시스템이자 살아 있는 초생명체로 본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 닿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라투르는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홀로바이온트’ 개념도 받아들인다. 안팎의 경계를 명확히 가르는 기존의 ‘유기체’ 개념과 달리, 홀로바이온트란 “윤곽이 구름처럼 모호한 형태를 띤 행위자들의 앙상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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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호주 시드니의 한 아파트에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를 알리는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다. 브뤼노 라투르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격리 경험과 자신의 사상 체계를 연결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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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라는 매력적인 구호는 사람들로부터 구체적인 장소 감각을 조금씩 앗아갔다. 하지만 감염병으로 인한 격리의 경험은 “자신들이 아무 데나가 아니라 어딘가에 거주한다”는 자각을 심어주었다. 위로부터 우리가 사는 곳이 그려지는 추세가 멈추고, 아래로부터 이웃과 더불어 우리의 영토를 묘사할 수 있게 됐다. 가이아 역시 크거나 글로벌하지 않고, 점차로 이어져 접속되는 개념이다. ‘옛날식 진보주의자’는 지구생활자들에게 “초 켜던 시절로 돌아가려느냐”고 비웃겠지만, 지구생활자들은 아랑곳 않는다. 식물이 배설하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그것을 호흡해 종속되고, 동물은 배설해 또 다른 것들을 종속시키는 ‘얽히고설키는 진창’을 이해한다면, 이는 근대화의 검이 끊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다시 묶는 일이 될 것이다.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말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바이러스를 포함한 지구의 여러 행위자들을 인간의 의지대로 쉽게 조종할 수는 없음을 말하는 책이다. 세계 최고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조차 우주에 단 11분간 머문 뒤 돌아왔다. 지구를 떠나 도망갈 곳은 없다. 다만 같은 장소를 다르게 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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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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