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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부모 100명이 상복 입고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 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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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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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27일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부모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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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상복을 입은 100여명이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 섰다. 그들은 정부가 자신과 자녀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장애인집단거주시설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이다.

복지부 청사 앞에 모인 100명 부모들은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탈시설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또 시설이용 장애당사자와 그 가족의 결정권·선택권을 보장하고, 시설 신규입소 허용을 요구했다. 중증발달장애인의 국가책임제 실시도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장애인탈시설’ 계획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발의안에는 ‘장애인거주시설과 정신요양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10년 이내에 폐쇄하고, 입소정원을 축소하는 시설에 대하여 필요한 지원을 할 것’이라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2000년대부터 장애인집단거주시설 장애인들의 ‘탈시설’은 장애계의 화두였다. 집단거주시설 내 각종 학대 및 방임 행위는 끊이지 않았고, ‘그 어떤 인간도 거주의 자유를 제한받아서는 않는다’는 명제는 탈시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됐다. 탈시설을 꾸준히 주장하는 장애인과 관련 단체들은 ‘장애인 스스로의 의지로 시설에 들어가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탈시설은 장애인의 인권회복을 위한 당연한 작업이라는 당위가 세워져 있는 작업이었다.

■자녀 시설에 보낸 부모들 “시설폐쇄 반대”

그런데 장애인을 시설로 보낸 부모들이 “시설폐쇄는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자녀를 헌법이 보장한 ‘거주 이전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도록 부모가 탈시설을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시설입소만이 장애자녀와 나머지 가족이 살아갈 방법이라고도 했다.

왜 이들은 장애 자녀를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27년간 중증발달장애 아들을 돌보고 있는 김명순씨(57·가명)는 3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부의 탈시설 정책에 찬성하지만 나는 그 부모들을 욕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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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27일 집회에 들고 온 피켓들.  부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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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조차도 우리 준호(가명)를 시설로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해요. 내 몸무게가 47㎏인데 준호 몸무게가 80㎏이 넘어. 키도 엄청 크지. 우리 애는 얌전한 편이지만 가끔 돌발행동을 하면 안방 문을 닫고 조용할 때까지 기다려야 돼. 화를 주체하질 못하니까 주먹으로 치면 온 몸에 피멍이 들어서 피하는 거야. 나도 언제까지 우리 애를 (집에서) 돌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요.”
“시설폐쇄는 살인”이라는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의 주장은 그들이 매일 맞닿아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얘기다. 실제 2017년 기준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한 중증장애 중 50% 이상이 19~39세(남성 52.4%, 여성 51.1%)였다. 중증발달장애 자녀를 가정에서 양육하던 부모들이 고령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입소가 늘어나는 셈이다.

탈시설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이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지체장애인들과 자신의 자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통상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수반하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끊임없이 도전적 행동(상대방을 공격하는 행동)을 제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지체장애인과는 ‘돌봄’의 종류가 다른 셈이다. 2017년 기준 장애인거주시설 입소자의 장애유형별 현황을 살펴보면 지적장애인이 1만2008명(39.1%)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부모연대 “왜 자녀를 시설에 보냈을까 생각해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의 국민청원이 지난 14일 게시됐다.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제목의 탈시설정책 반대청원글에서 작성자는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 2만9700명 중 2만3700명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이다. 다시 말해 거주시설 이용의 79%가 중증발달장애인”이라며 “(탈시설 운동을 하는) 단체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장애인이다. 그들은 사실 탈시설을 외쳐야 할 당사자가 아니다.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지역에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분들이다”라고 적었다. 이어 “시설의 도움없이 살아가는 것이 힘든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무조건적인 탈시설 요구는 명백한 폭력이며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해당 글은 1만7132명이 동의했다.

그러나 탈시설 운동이 중증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무시한 무리한 정책이라는 이들의 주장 역시 탈시설 작업을 멈출 명분이 되기도 어렵다. 인간은 장애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애인집단거주시설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 단체생활을 전제로 하며, 정해진 식사시간에 맞춰 정해진 양을 먹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잠들어야 하며, 일어나야 한다. 적절한 보살핌은 가능하더라도 그곳에서 ‘자유’를 언급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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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의 날인 지난해 12월 1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발의 환영 및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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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의 집회가 열린 27일 반대 성명서를 내놓으면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만약 지역사회에 하루 최대 24시간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면 부모가 자신의 소중한 자녀를 시설에 보냈을까.”(성명서 中)

부모의 보살핌 없이 자녀가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국가지원체계가 구축돼 있었다면 자녀를 시설에 보낸 부모들이 시설폐쇄를 반대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 중 하나다. 부모연대는 성명서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면 부모는 자녀보다 하루 더 살기를 소망하지 않으며, 또한 부모는 자녀가 생활하는 거주시설이 폐쇄되지 않기를 소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주시설에 나오더라도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해 장애인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이 포함된 진정한 탈시설 정책을 지금 당장 수립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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