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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인건비 7명 받아 2명 일해" 노동자 죽어도 업체 조사 못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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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⑩서울시 산하기관 간접고용 노동자 사망사건
한국일보

올해 1월 회사원 김민수(가명)씨가 추락사 한 서울 여의도의 쇼핑몰 전경. 그는 심각한 중간착취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관련 법이 없어 소속업체는 어떤 조사나 제재도 받지 않았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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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사망했다. 아직 신년의 설렘이 채 가시지 않은 2021년 1월의 어느 날,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쇼핑몰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내와 5세 딸을 둔 36세의 직장인 김민수(가명)씨의 추락사를 두고 극단적 선택으로 보인다면서 보도가 나왔다.
"남편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려 이 글을 올립니다."

유서조차 없이 갑작스레 벌어진 이 사건은 김씨의 아내와 지인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호소에 나서면서, 이 비극에 중간착취라는 하청 노동자 쥐어짜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알 수 있었다.

김씨의 아내는 "남편의 회사는 7명분의 인건비를 원청으로부터 받았으나 전담 인원은 2명으로 진행, 인건비를 남겨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였다"라고 주장했다. 노동자 인건비의 거의 대부분을 떼이는 극단적인 중간착취, 거기에 동반될 수밖에 없는 초과노동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원청은 서울시 산하기관이다. 김씨 소속 회사가 심각한 중간착취를 자행하고 수익을 챙겼다면, 그 돈은 서울시민이 낸 세금이다. 경찰이나 지방자체단체는 이 사건의 내막을 면밀히 파헤치고 책임질 사람을 책임지게 했을까.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6개월이 지난 이 사건을 추척해봤고, 악랄한 중간착취 의혹이 제기된 업체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채 끝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행법상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가 불법이 아니니, 업체는 중간착취 문제에 대해 어떤 조사도, 행정처분도 받지 않았다.

또 어딘가에서 중간착취에 신음하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사망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엔 이를 제어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그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다.

원청도 중간착취 눈치챘을 가능성

한국일보

회사원 김민수(가명)씨의 아내는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남편이 회사의 비합리적인 업무 구조, 즉 중간착취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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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및 지인의 국민청원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창업·취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사망하기 약 4개월 전 이직했다. 새 회사에서 서울시 산하기관의 사업 용역을 맡아 "7명분의 업무량을 메우고, 마감기한을 맞추기 위해 하루 2~3시간의 쪽잠을 자며 프로젝트를 완성하려 발버둥 쳤다"라는 것이 김씨 아내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상사의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에도 시달렸다고 알려졌다.

김씨의 아내는 원청인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인력 부족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내놓았다. 사망한 남편의 휴대폰 속에 산하기관 담당자와 "프로젝트 진행 인원이 부족하다고 회사에 이야기하고 시정해달라. 직접 이야기 못 하겠다면 우리가 회사 측에 이야기해보겠다"라고 통화한 음성녹음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김씨의 아내가 청와대 청원에서 주장한 내용들이다. 즉, 서울시 산하기관은 업체에 보내는 노무비가 임금으로 쓰이지 않고 상당 부분 착복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김씨의 아내를 만나보고자 했으나 유족은 간접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고 실제 녹음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떤 자료도 내놓지 않은 하청업체


7월 16일, 서울 영등포구에 김씨가 다녔던 회사를 찾아갔다. 본사에서 만난 관계자는 이 사건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들을 수 있는 말은 "회사의 입장이 정해진 바 없어 대답을 드릴 수 없다"라는 원론적인 말뿐이었다.

소득 없이 돌아온 뒤, 전화로 다시 취재를 시도했다. "입장의 변화는 없다."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다만 "유족이 국민청원을 통해 제기한 의혹은 모두 오해에서 불거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7명의 인건비를 받아 2명의 인력만 투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당시 일했던 인력 등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렇게 할 순 없다"는 거부의 답변이 또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국민청원 내용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유족과는 충분한 설명을 통해 오해를 풀었다"라고 전했다. 또 유족과 회사 측의 합의도 이미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저 증거도 내놓지 않고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만 하면 되는 현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를 자행했다고 해도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자세였다.

서울시 산하기관 "가이드라인 지켰는데…"

한국일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바라본 서울시청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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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사고가 있은 뒤, 서울시는 산하기관과 연관이 있는지 등 경위 파악에 나서겠다고 했었다. 서울시 측에 그 조사 결과를 물었다. "통상적인 절차이며 따로 시 단위에서 진상 조사단을 꾸리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일감을 준 해당 산하기관에 문의하세요." 그렇다면 대체 애초 무슨 경위 파악을 하겠다고 한 것일까.

원청이었던 서울시 산하기관을 찾았다. 김씨가 맡았던 용역사업에서 서류나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산하기관 관계자는 "노무비 전용계좌를 운영하진 않지만 용역계약 체결 시 투입 인력의 명단을 받았고, 이들에 대한 임금 지급 명세서나 계좌이체 확인증 등을 통해 (임금 지급 여부를)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2019년 마련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서류상 문제가 없었다는데, 그 서류대로 했다면 김씨가 과연 사망했을까. 원청이 임금 지급 내역을 서류상 봤더라도 실제로 투입된 인력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이 관계자는 "용역회사 내부에서 인력을 어떻게 조정했는지는 관련 교육이나 행사가 진행되는 경우 몇 명이 일하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 외엔 우리 쪽에서 면밀히 체크하기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민간위탁 관련 가이드라인을 지키더라도 중간착취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이 산하기관이 확인했다는 서류를 기자도 확인해보고 싶어서 서울시와 산하재단을 상대로 김씨가 담당했던 프로젝트의 제안서, 가격입찰서, 참여인력 등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산하기관 측에서는 "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노동자 사망을 부른 중간착취의 실체에 다가가기 너무 어렵게 돼 있었다.

범죄 아닌 중간착취, 경찰 수사 종결

한국일보

서울 영등포경찰서.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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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사망 관련 수사에 들어갔던 경찰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약 6개월간의 수사 끝에 김씨의 사망에 대해 '범죄 혐의점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중간착취에 대해) 정식으로 이를 수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바 없다"면서 "김씨 죽음에서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해 종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건비 중간착취'는 현행법상 범죄가 아니다. 범죄도 아니니 경찰에 조사해달라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조사 결과 계약서상의 인력 투입 관련 내용을 어겼더라도 임금 체불 등 법 위반 사항은 아니다.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원청이 재계약 시 불이익을 주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서울시 산하기관에서는 서류 등에서 하자가 없었던 만큼 "경찰 조사에서 근로자 권익에 위배되는 내용이 있다고 확인되지 않았다면 따로 조치할 계획은 없다"라고 했다. 김씨의 회사와 서울시 산하기관의 용역계약은 기간 만료로 종료됐다.

중간착취는 행정제재도 받지 않아


현행 법(직업안정법 19조)상 직업소개소가 구직자에게 받을 수 있는 수수료(최대 3개월간 월급의 1%, 구인자에게는 임금의 10%)를 초과해서 받으면 과태료 등의 처분을 받게 돼 있다. 거의 감시가 안 되고는 있지만 노동자들의 중간착취를 제재하는 거의 유일한 법이다.

만약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중간착취 금지법이 있다면 7명의 인건비를 받아 2명만 일하게 하고 나머지를 착복하는 것도 분명 행정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형사 처벌까지는 보장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김씨의 죽음을 둘러싼 중간착취 의혹은 어떤 제재도 불가능하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김씨 사망의 경우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영향을 줘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산업재해(산재) 신청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유족은 산재 입증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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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씨의 지인도 올해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친구의 죽음이 투신 자살인지 업무적 스트레스로 인한 실족사인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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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 이후 국민청원에 나선 김씨의 지인은 "관계 당국과 고인이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황을 명확히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것이 어린 딸과 육아에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불철주야 뛰어다닌 고인의 마지막 명예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처벌받는 이도 없다. 아무도 잘못이 없다고 한다. 중간착취를 방조하는 제도의 허점 앞에서, 진실규명조차 어려운 것이 김씨의 죽음을 둘러싼 답답한 현실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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