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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코로나19 감염력의 비밀은 섬모세포 ‘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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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강 섬모상피세포 이용해 증식 뒤

섬모 잘라내고 기도 안쪽으로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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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 섬모세포에 침투한 코로나19 바이러스(노란색). 파스퇴르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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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강에서 후두, 기관지에 이르는 호흡기 기도 표면에는 미세한 털들이 나 있는 섬모세포가 두루 분포해 있다. 기도 상피세포의 절반 이상이 섬모세포다. 평균 길이가 7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1미터)인 이 섬모들은 상시적으로 나풀거리면서 외부 병원체가 더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우리 몸의 첫번째 방어체계다. 세포 1개당 약 200개의 섬모가 있다. 섬모세포가 제 기능을 못 하면 인체는 쉽게 병원체에 감염된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오히려 면역체계의 일원인 이 섬모세포를 이용해 인체 내 감염을 완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연구진이 바이러스 초기 감염과 증식이 비강(코 안) 섬모상피세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이어, 최근 프랑스 연구진은 바이러스에 의한 섬모 손상이 중증 폐렴으로 가는 시발점 역할을 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 연구 성과에 따르면 몸 안에 들어간 코로나 바이러스는 코 안 섬모세포의 단백질과 결합해 증식하면서 세를 불린 뒤, 방어벽 역할을 하는 섬모 가닥을 잘라내 기도 안쪽으로 진입하면서 폐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해 요긴하게 써먹다가, 쓸모가 다하면 버리는 ‘토사구팽’을 연상케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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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모 운동 능력 5분의1 수준으로 둔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과학자들은 7월16일 공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도를 덮고 있는 섬모세포들을 마치 벌목하듯 잘라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섬모상피세포는 병원체가 묻어 있는 점액을 기도에서 목구멍쪽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외부 병원체가 폐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병원체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목구멍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력한 위산이 바이러스가 도착하는 대로 파괴해 버린다.

연구진은 그러나 실험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섬모세포 표면에 솟아 있는 섬모 가닥들을 잘라내, 이 면역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섬모가 없으면 그만큼 더 쉽게 바이러스가 폐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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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잘라낸 섬모 가닥(왼쪽). 오른쪽은 네모 부위를 확대한 사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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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바이러스가 폐로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기도 내벽을 모방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세포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시켰다. 그런 다음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감염세포의 표면에 있는 섬모가 감염 이전보다 짧고 뭉툭해진 것을 알아냈다. 일부는 초승달처럼 모양이 바뀌었다.

연구진은 이어 감염된 세포 표면에 바이러스를 대신해 아주 미세한 구슬을 투입했다. 그러자 섬모의 운동에 따라 움직여야 할 구슬이 대부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정상 세포에 넣은 구슬은 1초당 8.9마이크로미터의 속도로 움직였으나, 감염 세포에 넣은 구슬의 이동 속도는 1초당 1.5마이크로미터로 움직임이 5분의 1 수준으로 둔화됐다. 연구진은 시리아 햄스터 동물 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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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관 내 상피세포 중 ACE2 수용체 단백질(녹색)이 가장 많은 곳은 비강 상피세포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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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강 섬모세포에 몰려 있는 바이러스 결합 단백질


앞서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은 지난 5월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임상연구저널’(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표지논문을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과 증식이 시작되는 곳은 비강 섬모상피세포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 감염은 바이러스 표면에 솟아 있는 돌기단백질이 인체 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 단백질과 결합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인체 세포의 수용체 단백질에는 에이시이2(ACE2=안지오텐신전환효소2), 템프리스2((TMPRSS2=막관통 세린 프로테아제2), 퓨린(Furin) 세 가지가 있다. 연구진은 환자들한테서 얻은 검체를 분석한 결과, 수용체 단백질이 호흡기 상피세포층을 이루는 다양한 세포 중 비강 섬모세포에만 유독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점액분비세포나 구강 상피세포엔 수용체 단백질이 없었다. 수용체 단백질은 특히 공기와 접촉하는 면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이는 비말과 공기를 통해 전파된 바이러스가 코 안의 섬모세포 공기 접촉면에 결합해 세포 안으로 들어가고, 이 세포의 소기관들을 이용해 증식한다는 걸 뜻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의 성과는 코로나19 감염의 시작점이 비강 내 상피세포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두 연구에서 드러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존법은 숲(섬모세포)에 숨어 힘을 키운 뒤, 나무(섬모)를 베어 길을 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파스퇴르연구소 연구진은 인터페론 등 기도 상피 내의 다른 병원체 방어 메카니즘은 섬모 손상이라는 피해를 막기에는 너무 늦게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또 코로나 바이러스의 섬모세포 이용 방식은 다른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와도 다르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섬모를 손상시키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섬모세포 자체를 공격하고, 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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