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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국방부 지뢰 해제 '헛돈'···20년 동안 224억 쓰고도 1%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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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매년 지뢰 사고로 인한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최근 20년간 해제된 지뢰지대는 단 한 곳도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방부가 20년간 224억원을 투입하고도 전체 지뢰지대의 1%도 해제하지 못한 만큼 이제는 국민 안전에 있어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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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의 지뢰지대.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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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억원 들였지만 후방 지뢰지대 해제 ‘전무’

녹색연합은 이달 현재까지 후방지역 지뢰지대 36개소 가운데 지뢰지대에서 해제된 곳이 없다고 30일 밝혔다. 후방지역 지뢰지대는 국방부가 2001년 군사적 목적이 사라진 곳으로 선언하고 지뢰 제거작업을 시작했던 곳이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부산 해운대구 장산과 영도구 중리산, 대구 달성군 최정산, 인천 미추홀구 문학산, 울산 북구 무룡산 등이 후방지역에 남아있는 지뢰지대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도록 이들 지뢰지대는 단 한 곳도 해제되지 않았다. 총 224억원 예산이 투입됐지만, 국방부가 현재까지 제거한 지뢰는 3690발 정도다. 녹색연합은 사실상 지뢰 한 발당 평균 600만원이 투입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의 지뢰 제거 속도를 감안하면 후방지역의 지뢰 전체를 제거하는 데는 약 400년이 걸릴 것이라고도 했다.

국방부의 지뢰 제거 실적은 지뢰 오염국인 캄보디아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라고 녹색연합은 비판했다. 캄보디아는 2019년에만 130㎢ 지뢰지대를 해제했는데 이는 국내 지뢰지대의 전체 면적인 128㎢보다 넓다. 국방부가 군사적 목적을 상실했다고 선언한 후방지역 지뢰지대는 0.27㎢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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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민간인 피해, 약 63%가 어린이·청소년

지뢰 제거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면서 후방 지뢰지대에서는 민간인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만 민간인 30여명이 지뢰·불발탄 사고를 당했다. 2020년에는 김포대교 인근에서 한 시민이 낚시 도중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같은해 수해복구 중 한 부사관이 발목 부상을 당했고 지뢰제거작전 중 병사 2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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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 장릉산의 지뢰지대.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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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장항습지에서 정화작업을 하던 50대가 지뢰사고로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쪽을 모두 잃었다. 녹색연합은 “이런 사고에도 국방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며 “지뢰 등 특정 재래식무기 사용 및 이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지뢰로 인해 민간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군부대의 장은 그 지뢰를 설치한 지역 또는 지뢰지역 주위에 별표 요건을 갖춘 경계표지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현장에는 지뢰와 관련된 어떠한 경고문과 지뢰지대를 구분하는 휀스 등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휴전 이후부터 지난달 현재 국내 지뢰·불발탄 피해자는 6428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가 43.7%를 차지한다. 여기에 청소년까지 합하면 전체 피해자의 62.9%가 미성년인 셈이다.

그러나 지뢰피해자 보상은 사고 당시의 임금으로 상정돼 있어 신체의 일부를 잃더라도 터무니 없이 적다. 불발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법조차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다. 녹색연합은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국가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지뢰사고가 계속되고 있다”며 “무고한 국민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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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지뢰지대 현황.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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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지뢰지대, 주민 거주지역 인근에 다수

군사적 필요가 사라진 후방지역 중 지뢰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경남 양산 천성산이 꼽혔다. 천성산은 일출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2002년과 2003년, 2004년, 2012년, 2020년에 걸쳐 올해에도 지뢰제거 작전이 진행됐지만 아직까지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뢰는 제거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지역으로의 유실 범위도 확대된다.

국내에는 미확인 지뢰지대도 202곳 존재한다. 면적은 107㎢에 달한다. 이는 전체 지뢰지대 면적의 약 84%에 해당한다. 미확인 지뢰지대는 군사적 목적이 사라졌으나 군이 지뢰 매설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곳이다. 어디에 얼마나 많은 지뢰가 매설돼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미확인 지뢰지대 202곳 중 15곳은 비무장지대에 있으나 나머지 187개소(민통선 이북 176개소, 민통선 이남 11개소)는 민가나 농경지 등 주민 주거 공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은 물론 지뢰유실 사고 발생 시 출입이 전면 통제돼 경제활동까지 직접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인명피해와 직결되는 폭발물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지뢰지대를 구분짓는 구조물에 대한 규격 및 관리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정한 규칙 없이 철사와 윤형 철조망, 약 2m 높이 휀스 등 중구난방으로 경계 표시가 설치돼있다. 그마저도 관리되지 않아 훼손된 경고판이나 끊어진 철조망 등으로 방치돼있다. 관리 부실로 유실된 지뢰는 2020년에만 305발에 달했다.

■시민사회 “국민 안전 총괄하는 행안부가 나서야”…정치권도 공감

국방부가 지뢰 제거에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행안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안부가 국민 안전을 총괄 책임지는 부처라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군사적 필요가 사라진 지뢰지대는 국가 안보와 상관이 없는 지역”이라며 “지뢰 제거 활동의 총괄은 군이 아니라 안전을 담당하는 행안부가 담당하는 게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조직법은 행안부 장관이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비상대비, 민방위 및 방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도록 명시되어 있다”며 “행안부는 지뢰지대를 국민 안전과 재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도 호응하고 있다. 30일 국회에서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새로운 지뢰제거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현재 ‘지뢰 등 제거에 관한 법률’은 지뢰제거 활동을 지뢰 제거에 관한 사항만으로 국한하고 있지만 이는 국제 표준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국제 표준에서 지뢰제거는 ‘지뢰행동’의 한 부분이며, 지뢰행동은 폭발물로 인한 사회·경제·환경적 영향을 감소시키는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지뢰행동에는 환경경영, 비기술조사, 기술조사, 지뢰제거, 토지해제, 지뢰제거 사후문서화, 지뢰제거사건 보고 및 조사, 피해자 보상, 모니터링, 안전, 의료지원, 폭발물 보관·운반 및 취급, 위험교육, 성 및 다양성, 위험관리, 정보관리, 훈련관리, 위험표지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녹색연합은 “지뢰제거에 관한 법으로는 부족하며 지뢰행동에 관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군은 필요시 지뢰제거 활동에 참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색연합은 “20년간 지뢰제거 역량이 미숙하다는 점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 지뢰제거 역할을 계속 두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지뢰행동은 군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안부 중심의 범부처협력, 국제협력, 민간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녹색연합 이지수 활동가는 “지뢰지대를 해제할 수 있는 어떠한 과정과 경험도 국방부에 축적돼 있지 않다”며 “군은 지뢰행동에 나설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지뢰제거에 전적인 자원을 투입할 여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답이 있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1차 책임이 있는 행안부는 더 이상 지뢰 제거를 국토부에 떠넘기지 말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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