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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Her?헐!]④ '존재를 흔드는 손' 가상인간 신드롬…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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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위협하는 '가상의 존재들'

가짜에 빠진 인간…결국 가상인간은 인간의 '경쟁자'

[편집자주]"OS랑 사귄다고? 어떤 느낌인데?" 2025년을 배경으로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녀(her)' 속 대사다. 이 영화가 2013년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만해도 어느 '상상력' 넘치는 감독의 공상 영화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이 아닌 가상의 her'가 우리 주변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 AI 챗봇 '이루다'가 불쑥 등장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최근엔 가상 CF모델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IT업계는 물론, 정치권에 금융권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열풍'을 외친다.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상계’. 언제 이렇게 인간의 ‘현실계’에 뿌리내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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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간 '로지' (인스타그램 캡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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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존재를 흔드는 손'.

김명주 서울여대 바른AI센터장은 가상 인간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그야말로 '가상 열풍'이다. 열풍이라 부르는 이유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이 모인다. 미국의 가상인간 '릴 미켈라'는 최근 인스타그램 팔로워 300만명을 돌파했다. 둘째, 돈이 모인다. 버추얼 유튜버 '신유야'는 3시간 동안 진행한 생방송에서 16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심지어 지난달 한국 유튜브 시장에서 가장 많은 생방송 후원금을 받은 주인공이다.

즉, 사람과 돈을 모으는 가상의 존재들을 더 이상 '가상'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혁신은 파괴를 전제로 한다.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MP3가 사라졌다. 클라우드 시스템이 상용화 되자 USB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가상인간이라는 혁신 기술은 세상의 어떤 '존재'를 위협하고 있을까.

◇ 존재를 흔드는 손, 가상 인간

최근 한 보험사의 TV광고에 등장한 모델이 단숨에 CF계의 다크호스로 등극했다. 성은 오, 이름은 로지. 나이는 22세, 성별은 여성이다. 직업은 '인플루언서'로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4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위 설명만 보면 사람과 다를바 없지만 사실 로지는 '가상인간'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전문기업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M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3D 합성 기술로 탄생시켰다. 그녀가 출연한 광고의 유튜브 조회수는 170만회. 하루에도 수십 개의 광고 제의가 쏟아진다고 한다.

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대박'이지만, 인류의 입장에서 보면 '충격'이다. 가상인간이 인간의 영역이던 CF모델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 실제로 로지는 다른 연예인들처럼 늙지도 않고, 사고도 안친다. 소비자들이 가상인간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광고주 입장에서는 '모델'로 딱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바른AI센터장은 가상인간에 대해 '존재를 흔드는 손'이라고 표현했다.

김 센터장은 "이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자'와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가수를 예로 들자면, 가수가 되기 위해 10년 이상 노력한 지망생이 이제는 '가상 인간' 'AI 가수'와 경쟁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상인간 로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로지의 등장으로 결국 우리 주변의 쇼호스트, 광고모델은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면서 "가상인간을 '존재를 흔드는 손'이라 표현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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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라이프의 광고에서 춤을 추고 있는 가상인간 '로지' (신한라이프 유튜브 캡처) © 뉴스1



◇ 진화하는 가상인간은 '선순환이자 악순환'


가상인간이 인간의 존재를 흔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미 '미디어' 분야에선 가상인간이 인간의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것을 넘어 한계점까지 극복하고 있다.

가상인간은 인간과 달리 미디어 활용성이 매우 높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모든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모델 활용이 가능하다. 동시에 '위험부담'도 적다. 실제 사람과는 달리 아프지도, 늙지도 않는다. 심지어 모델이 각종 구설에 휘말려 광고가 중단되는 일도 없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상인간에 대해 생산자의 입장에선 '선순환', 소비자의 입장에선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곽 교수는 "기업의 입장에선 실제 사람을 광고 모델로 선정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고 강점이 많다"며 "심지어 가상인간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좋기 때문에 앞으로 광고모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장돼 갈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 나은, 더 멋진 가상인간이 등장할 것인데 우리는 그들과 끝없는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며 "결국 힘들어지는 건 소비자인 우리가 아니겠나"고 지적했다.

◇ '인간소외' 문제 살펴야

결국 가상인간이라는 혁신 기술이 위협하고 있는 건 우리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경쟁 상대를 눈에 보이게 제거하진 않겠지만, 가상인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가상인간들의 종횡무진 활약을 마냥 고운 눈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상인간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며 '인간소외' 문제를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인간소외란, 인간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낸 물질이 결국 인간을 지배하고 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 교수는 "가상세계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가상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다"며 "가상세계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현실세계의 중요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가상 열풍으로 나타나는 현실적인인 문제들을 살펴봐야 한다"며 "대표적인 인간소외 문제가 '현실관계의 단절'이다. 가상인간과 교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현실 속에서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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